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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의 세계 - 저울과 자를 든 인류의 숨겨진 역사
제임스 빈센트 지음, 장혜인 옮김 / 까치 / 2023년 12월
평점 :
어제 잠들기 전 설정해둔 알람에 맞춰 아침에 눈을 뜨고 체중계 어플을 켜고 전자 체중계 위에 올라섭니다. 욕실에서 씻고 나와서는 미리 끓여둔 90도씨의 물을 30g의 원두를 드립용으로 갈아 부어둔 드리퍼에 동심원을 그리며 200ml의 커피를 내려 마십니다. 거래처 주소를 입력하면 네비게이터 어플이 최적의 경로와 거리, 시간을 실시간으로 표시해주고, 오늘의 기온 추이와 강수율과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며 주어진 30분에 맞춰 배분된 프리젠테이션 페이지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측정은 이렇게나 우리의 일상 매순간 순간에서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그야마로 생활 밀착형 소재입니다. 너무 흔하고 가까이 있어서 그 소중함을 몰랐다 싶은 이야기를 차곡차곡 품고 있는 책을 만났습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제임스 빈센트의 첫 책 <측정의 세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측정할 수 없다면 우리는 주변 세계를 관찰할 수 없다. 실험하거나 배울 수도 없다. 측정은 과거를 기록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도움이 될 규칙을 밝힌다. 결국 측정은 개인의 노력을 통합하여 부분의 합을 넘어 더 큰 무엇인가를 이루도록 하며 사회를 결속하는 동시에 통제하는 도구이다. 측정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 동시에 우리도 만든다.”
<p.15. 서론 ‘측정은 왜 중요할까’ 중>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 동시에 우리도 만드는 것이 바로 ‘측정’이라고 저자는 퉁쳐서 정의내립니다. 그저 고개가 끄덕여지는 정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인류의 전영역에 필수불가결한 측정을, 저자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굽이굽이에 우뚝 세워진 혁혁한 측정의 금자탑들을 오롯이 드러내보이며 상세하고도 친절하게 측정의 역사를 아우릅니다. 너무 각잡고 강의톤의 문장들이라 딱딱하거나 지루할 듯 하다는 첫 인상은 장을 넘기고 나아갈수록 괜한 기우였음이 밝혀집니다.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의 주기적 범람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된 ‘나일로미터’,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에서 사용된 블라와 물표들 그리고... 생소하지만 신기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측정의 세계를 소개하며 빌더업을 이어가는 저자의 완급조절 덕분에 독서를 통한 지식 습득의 재미는 치사량(?)에 이를 정도입니다.
“현대 생활에서 측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단연 표준 땅콩버터일 것이다. (중략) 표준 땅콩버터는 냉동, 가열, 증발, 감화 과정을 거치면서 다각도로 측정된다. 그 결과 표준 땅콩버터를 구매한 사람은 한 숟가락에 담긴 탄수화물, 단백질, 당, 섬유질의 비율뿐만 아니라 수십 가지 유기 분자의 미량 원소의 함유량을 밀리그램 단위까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p.345. ‘10장. 관리되는 삶’ 중>
고대의 수위 측정이나 부의 수치화 등의 측정은, 현대사회에 와서는 다양하고도 세심, 세밀하며 더욱 정확함을 요구하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그 활약상을 뽐내고 있습니다. 매일 접하는 가공식품의 영양성분표와 만보기, 산소포화도, 심박수 등. 그 끊임없는 정량화와 표준화를 통해 우리에게 있어서 측정은, 세상의 복잡성과 인간 삶의 예측 불가능성을 단순하고도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 있도록 해주었다 설파합니다. 모든 것이 측정 덕분이었다고 말입니다. 이렇게나 집요한 저작물은 책의 말미에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참고문헌들의 리스트로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의 조사와 이를 맛있게 모아서 문장으로 요리해낸 작가의 힘이다 싶습니다. 가끔 여기저기를 들춰가며 읽어봐도 좋을 지식 창고 하나 들여놓으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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