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로비치에 따르면 자연적인 신체는 정치적인 신체보다 하위에 있으며, 그에 속해 있다. ”왕의 인간적인 면이 왕의 신적인 면을, 그리고 필멸성이 불멸성을 압도할 때 왕은 폐위된다.” 영국의 왕실이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한 이유는 어쩌면 두려운 진실 때문일 것이다.’
- p.6 Editorial ‘대통령의 페르소나’ 中
에른스트 칸토로비치 (1895-1963)의 1957년 저작 <왕의 두 신체 (The King’s Two Bodies)>에 등장한 문장을 읽는데, 손바닥에 王자를 쓰고 나와서 꿈을 이룬 그가 자꾸만 어른거립니다.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왜곡되었다고 하는 그의 남은 임기가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집니다.
이번 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7월호>는 현재와 과거, 여기와 저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양하게 담아내려 애쓴 노력들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슈였습니다. 1960년대 미국의 CIA를 통한 정부 감시에 대항했던 신좌파(New Left)와 블랙팬더스(BPP)의 이야기를 통해 실추된 공권력의 사례를 기억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의 법정이 설파한 국정원 문건에 대한 폄훼(?)는, 그 공권력의 케미스트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골똘히 생각해보게도 합니다.
그리고 올 여름에 개최되는 2024 파리올림픽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들이대는 글들은 특히 눈에 뜨였습니다. 벌써부터 국내 언론들에서도 준비과정에서 불거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올림픽과 스포츠를 그닥 즐기지 않는 저 같은 스알못에게도 제법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는 기획기사들의 내용은 더욱 심각한 것들로 보였습니다. 전지구적 행사를 유치하기 위한 각국들의 과잉경쟁과 부풀려진 경제효과 등에 따른 터무니없는 혈세낭비와 양극화 강화, 유치실패에 따른 책임전가 등 눈꼴 사나운 과정과 결과를 우리나라도 이미 경험한 바라 낯설지도 않은 이야기이긴 했습니다.
그러기에 여전히 남아있는 과제들, 특히 인권의 문제와 환경의 문제 등을 아우르는 지구촌 공동의 소리에 더욱 귀 기울일 이유를 발견할 수 있게 해줍니다.
‘콕도는 자신과 결별한 데보르드가 겪은 시련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강렬한 목소리를 발견한다. 이 사랑과 춤과 작별 인사는 언제나 은총과 함께 기록된다. 보네와 샤르뉴에 의해 재평가된 데보르드는, 확실히 이전보다 위대한 모습이 된 것이다.’
- p.100, ‘장 콕도와 그의 연인, 장 데보르드’ 中
예전 우연히 만난 1952년 작 영화 <미녀와 야수>의 감독으로 처음 그 이름을 접해서 그의 다른 영화들과 문학작품들까지 찾아봤던 장 콕도의 60주기를 맞은 프랑스 현지의 스케치와 더불어 그의 연인 장 데보르드 관련한 기사는 우선 반가웠고, 또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자국의 문화를 드러내고 공유하는 방식도 부러웠습니다. 만화 <아편의 시간>이 국내에도 적절한 시점에 소개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무엇보다 말미에 편지 혹은 기행문처럼 자리하고 있는 한국어판 발행인의 세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들의 연례모임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뭉클하게 미소짓게 하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있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공존하지만, 함께 하는 친구로서의 연대가 느껴졌고 그렇게 함께 흥겹게 춤추는 몸과 마음들이 있음에 희망도 품어볼 수 있었습니다. 만나지 못했다곤 했지만, 어쩌면 만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함께 했던 여러 발행인들이 여기저기에 시선을 두고 생각의 유목민인 집시들일지도, 그렇게 독자들의 마음을 들쑤시는 테러리스트들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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