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때가 오면 - 존엄사에 대한 스물세 번의 대화
다이앤 렘 지음, 황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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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죽기 전에 죽고 싶어요. 엄마가 없으면 살기 싫어요.”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어머니가 건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고, 남겨지는 게 두려웠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아주 오랫동안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죽을 권리에 대한 열정적인 믿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p.9>

 

책의 시작은, 그러니까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시간을 공유합니다. 그 고통으로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어머니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는 무기력함과 의사들에 대한 분노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 어떤 믿음에 대해 말을 겁니다. 그리고 말기 환자, 의사, 간호사, 윤리학자 그리고 남겨진 이들과의 스물 세 번의 인터뷰로 책을 빼곡히 채워냅니다. ‘의료조력사망이라는 자신의 고통을 언제 끝낼지 선택할 권리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들이 있고 그 감정과 생각을 듣고 나눕니다. 저자인 다이앤 렘은 그렇게 전문 방송인다운 감각으로 준비된 좋은 질문들로 인터뷰이들의 기억과 체험과 생각과 의견을 술술 이끌어냅니다.

 

제가 7년 넘는 세월 동안 수천 번은 봤던 브리트니가 잠드는 모습과 다를게 없었죠. 저는 아내의 호흡을 계속 확인했는데 30분 후쯤에는 호흡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멎었어요. 임종은 그렇게 이루어졌죠.”

<p.29>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인터뷰이로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곁에서 임종을 맞이했던 가족들의 이야기가 더 와닿았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과 죽음으로 향하는 길의 고단함이 그 말들 속에 켜켜이 배어있어서 몇 번이나 울컥하기도 하고 나의 경우로 상상을 해보기도 하며 페이지를 넘겨갔습니다. 나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도 때때로 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명치료거부 신청을 해두긴 했으나 이 또한 그 결정의 순간에 보호자의 결정을 따르게 되는, 어찌 보면 모순적인 시스템을 지나고 있는 중으로 압니다. 그러기에 가족들에게 가끔씩 나의 의사를 분명히 이야기해두려고 하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죽음을 말하기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죽음을 밀쳐내고 마치 죽음이 삶의 일부가 아닌 척하고 싶어 하죠.”

<p.179>

 

오늘보다 내일, 우리는 언제일지 어떤 죽음일지 모를 그 결국에 하루 더 다가서게 된다는 분명한 진리를 모른 척하거나 혹은 아닌 척하면서 살아가려 합니다. 죽음에 대한 막연함과 언제일지 모르는 이유가 주는 두려움 때문일 터인데, 그런다고 없어지거나 미뤄지는 건 아니란 것 또한 모두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죽음을 대하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존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그러기에 분명한 자신의 생각이 존재하지만 인터뷰이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문들을 열어나가는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또 시도합니다. 물론 결론도 없고 정답도 없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과 감정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말을 겁니다.

 

내 가족, 주치의, 병원에 전합니다. 제가 정신적 또는 육체적 장애에서 회복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 인위적인 방법과 거추장스러운 수단들을 동원해 제 목숨을 연장하지 말고 죽음을 허락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최후의 시련을 다스릴 수 있는 약물을 자비롭게 투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제 임종 순간을 앞당기더라도 말입니다. 저를 아끼는 여러분들이 이 절박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도덕적으로도 올바른 일이라고 느끼면 좋겠습니다.”

<p.320-321>

 

회사 일로 좌심실보조장치 (Left Ventricular Assist System) 이라는 의료기기를 취급한 적이 있습니다. 말기 심부전으로 심장이식 외에는 회복할 수 없는 환자의 심장에 전기로 구동되는 펌프를 심장에 이식하는 것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일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건강보험 적용이 되는 치료였는데, 해당 환자들의 바람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시간을 또렷한 정신으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마무리할 수 있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삶의 질 (Quality of Life) 그것이었습니다. 연장을 하고 단축하는 것의 합법성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더 깊고 진지한 이야기가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싶은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간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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