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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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이 아니고, 연작소설이라고?
처음에는 읽어나가노라니, 그저 서로 무관한 14편의 단편처럼 보입니다.
강에서 목욕하는 여자들,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아이들,
여러 명의 ‘나’,
희귀해진 남자들,
초능력을 지닌 존재들….

그런데 이야기를 건널수록 흩어진 조각들이 서로 얼기설기 이어지며, 이 소설이 그저 단편소설집이 아님을,
아득한 미래의 인류사를 그린 하나의 거대한 연작소설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는 장면들이 하나의 느슨하지만 분명한 또아리를 트는 장면이 머리 속에 그리게 됩니다.
그렇게 그 순간부터 이 기묘한 소설의 진짜 매력이 시작됩니다.

작가는 ‘존재’와 ‘소멸’이라는 두 개의 렌즈를 장착한 안경으로, 때로는 쌍안경으로는  인간을 바라보는 듯합니다.
한쪽 렌즈로 보면 인간은 지구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질 하나의 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다른 렌즈를 들여다보면 사랑하고 미워하고,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밀어내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려는 애처로운 생명체가 보입니다.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상상력의 비거리를 절감한다.”(p.419)라는 해설의 문장처럼 그 각기 다른 렌즈들이 보여주는 시간과 공간은 실로 아득합니다.

더 섬뜩한 것은 이 소설의 종말이 요란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인류는 거대한 재앙 한 번으로 ‘절멸’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이어가며 조금씩 스스로를 ‘소멸’시킵니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시점이 미래인 SF인데도 읽는 내내 자꾸 지금의 우리, 지구별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인류가 만든 인공지능마저 인간을 돕고, 인간은 다시 인류를 만들며 인류의 역사는 론도처럼 반복됩니다.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p.289, <사랑> 中

그럼에도, 가와카미 히로미 작가는 인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p.426)
결국 그 ‘다른 길’은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경계를 넓혀가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멸망을 이야기하면서 이토록 고요하고, 쓸쓸하면서도 따뜻할 수 있다니.
연작소설집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의 끝을 상상함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먼 곳에서 되비추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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