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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는 미술사
이지호 지음 / 한경arte / 2026년 7월
평점 :
가끔 찾아봤던 한경아르떼의 칼럼들이 하나의 물리적 형태를 갖춘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선 반가웠습니다. 어떤 내적 친밀감이랄까?
언젠가부터, 국내나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출장 일정 전 혹은 후에 미술관, 박물관 등을 방문하는 일정을 꼭 잡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쉽지 않게 혹은 다시 못올지도 모를 그 지역, 국가의 인상적인 추억을 남기는데 이만한게 없다는 판단이었고, 꽤나 의미있고 즐거운 일탈이 되어주었던 기억입니다.
그렇게 그저 일정이 맞아서 찾아간 미술관. 언제나 그림을 먼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 <선 넘는 미술사>를 읽고 나니, 이제는 그림보다 먼저 그 시대나 화가의 삶을 미리 예습하거나 챙겨 보면서, 작품이 어떻게 예술가의 손끝에서 탄생하며 또 어떻게 세상과 충돌하는지 생각해보게 될 듯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명화를 소개하는 미술 교양서는 아닙니다.
'왜 어떤 예술은 외설이 되고, 어떤 예술은 걸작이 되는가'라는 질문을 따라가며 예술과 검열의 경계가 시대마다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풀어낸 미술 인문학 책입니다. 스토리텔링이 함께 하는.
저자인 이지호는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와 USC에서 미술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과 국내외 전시 프로젝트를 경험한 독특한 이력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사를 연대기처럼 나열하지 않고, 큐레이터가 전시의 기획의도를 안내하듯 혹은 도슨트가 작품과 시대, 사회와 인간을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며 관람객에게 이야기하듯 독자를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이끕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이전 여행에서 직접 만났던 그림들이 다시 떠올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비엔나의 미술관에서 마주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황금빛 세계와 에곤 실레의 불안하고도 도발적인 선, 뉴욕과 스위스의 전시장에서 감상했던 마네와 로트레크, 그리고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이 이 책 안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당시에는 교과서에서만 봤던 화가들, 그들의 아름다운 명화로만 보였던 작품들이, 사실은 외설과 검열, 사회적 금기와 치열하게 맞섰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의 기억과 책 속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작품은 더 이상 미술관의 전시품이 아니라, 시대를 바꾸려 했던 예술가들의 선언으로도 읽혔습니다.
책은 시작부터 강렬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술가를 억압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이는 움트는 생명을 살해하는 것입니다."(p.14)라는 에곤 실레의 말은 예술이 왜 자유로워야 하는지를 단번에 보여줍니다. 또 "예술의 역할은 의무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다."(p.38)라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문장은 아름다움은 때로 저항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책의 말미에 남겨진 작가의 에필로그는 마침표가 아니라, 제게는 어떤 접속부사 같았습니다.
저자는 예술과 포르노의 경계는 시대마다 달랐지만, 결국 그 기준을 세우고 허무는 주체는 언제나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검열받았던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더 자유롭게 인간과 예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들이 열어놓은 공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p.263
미술사를 다시 쓰는 책이 아니라, 미술을 바라보는 시선을 다시 그리는 책으로, <선 넘는 미술사>는 명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예술과 사회가 어떻게 서로를 변화시켜 왔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도 썩 괜찮은 애피타이져가 될 수 있겠다 싶습니다. 메인디쉬는 미술관을 찾아 예술가들과 그들의 예술을 만나는 것이 될테지요.
그렇게 이 책은, 그림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 아닌, '보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같은 책이 되어 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