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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평점 :
36명의 현대 미국문학 대표 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하나의 소설을 완성했다는 설정만으로도 <14일>은 무척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각 장을 읽으며 '과연 이 이야기를 쓴 작가는 누구일까'를 추리하는 재미가 또 하나의 독서가 됩니다.
제가 맡은 '여덟째 날'을 읽으며 36명의 가장 먼저 떠올린 작가는 루이스 알베르토 우레아(Luis Alberto Urrea)였습니다. 멕시코 산미겔을 배경으로 현실의 삶과 종교적 신비, 공동체의 온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분위기가 그의 작품과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완독 후 책의 말미에 있는 각 이야기들의 작가들에서 정답(!)을 확인하니, 역시나 바로 그 작가였고, 함께한 작가 ‘찰리 제인 앤더스’까지 여서 놀랐습니다. 100점 만점에 50점!
오히려 한 작가의 문체로 단정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개성이 하나의 세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싶었는데, 역시 두 명의 작가가 지어낸 것이 었습니다. 이또한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싶습니다.
'여덟째 날'은 팬데믹으로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이 옥상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멕시코 출신 여성 요리사가 들려주는 한 노인의 이야기와 '진실'과 '거짓말'을 둘러싼 기묘한 우화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천사를 만난 이야기처럼 시작되지만, 읽을수록 이 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인간의 선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어지는 프래니와 타라의 이야기는 진실은 언제나 선하고 거짓말은 언제나 악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을 뒤흔듭니다. 진실은 사람을 상처 입히기도 하고, 거짓말은 때로 누군가를 지키고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누군가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지녔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14일>은 불과 몇 년 전 우리의 일상이었던, 팬데믹이라는 재난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바이러스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소설이었습니다. 36명의 작가가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모든 이야기는 결국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버티게 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여드는 듯 했습니다.
그 가운데 '여덟째 날'은 가장 따뜻하면서도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이었습니다.
천사는 정말 존재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작은 친절을 베풀며, 살아갈 용기를 건네는 사람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난 뒤 저는 천사를 믿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조금 더 믿게 되었습니다.
<14일>은 팬데믹이 끝난 뒤에도 끝내 우리 곁에 남는 것은 공포가 아니라 서로에게 들려준 이야기라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제법 깊은 울림으로 전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분도 그저 인간이었을 뿐이니까요. 천사가 아니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가치가 작아지는 건 아니죠. - P299
거짓말은 삶의 윤활유예요… 저만 해도 진실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아요.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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