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노아 > 사랑이 내게 온 날...
생일 -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장영희의 영미시산책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비채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영희씨를 떠올리면 서강대 교수님... 보다 칼럼니스트, 번역가란 이름으로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내게는 선생님으로 만난 적이 없으니 그녀의 책을 먼저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그녀의 수업은 충실하고 멋질 테지만, 내게는 이렇게 책을 통해서 만나는 것도 몹시 좋은 만남이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생일인가 했더니, 부제로 이유를 설명한다. "사랑이 내게 온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라고.

진정한 생일은 지상에서 생명을 얻은 날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더 어릴 때에는 아마 몰랐을 테지만, 삼십 년 가까이 살아보니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그녀가 신문에 실은 칼럼 중 사랑에 관한 시를 모아봤다.  여러 나라의, 여러 시대의 시인들의 목소리가 이 책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

표지 그림에서 느껴지듯이 순백의 하얀 바탕 위에 거친 느낌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매 시마다 영어 원문과, 한글 번역, 그리고 장영희씨의 에세이와 그림이 같이 실려 있다.  하나의 책 안에 여러 매체가 섞여 있어 다양하고 다채로운 느낌을 전달해 준다.

나로서는 영어 원문의 진맛을 느낄 재량이 없어서 순전히 한근 번역에만 의존했지만, 영시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이 책을 보았더라면 아마 더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때로 시가 좋을 때가 있고, 때로 그 시인의 삶을 표현해 준 짧은 정리글이 좋고, 때로 장영희씨의 에세이가 더 좋을 때도 있었다.  참 예쁘고 고운 책이었고, 우아한 독서였다. ^^

여러 시 중 유독 내 마음에 닿은 시 한편을 옮겨 본다.

 

당신의 아이들은

칼릴 지브란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을 거쳐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지만

생각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아이들에게 육체의 집을 줄 수는 있어도

영혼의 집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고 당신은 그 집을

결코, 꿈속에서도 찾아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이들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아이들을 당신처럼 만들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삶이란 뒷걸음쳐 가는 법이 없으며,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마노아 > 선인장의 입장으로 말하기
그린빌에서 만나요 3
유시진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품절


퍽퍽한 흙이 담긴 조그만 화분 속에서 물 몇 방울로 살아가는, 작은 선인장.
부족한 물을 뺏기지 않으려고 잎은 퇴화해서 뾰족하고 볼품없는 가시가 되어 버렸고-
다른 화초들만큼 물을 받으면, 감당 못하고 뿌리가 썩어 버리지.
물론 선인장이라고 크게 다를 건 없어.
경제적으로 돌아가는 소심한 순환 구조지만, 필요한 만큼의 물은 반드시 있어야 해.
그렇지만 옆에 있는 다른 화초들-
흠뻑 물을 마시고 기운차게 몸 안에 휘둘리고
남는 수분은 커다랗고 넓은 잎사귀로 대기에 돌려주는 그들을 바라보면 말이지...
뭐, 조금 뻘쭘해져서 입을 다물게도 되는 거지. 무슨 소릴 할 수 있겠어?
이 가시는 누굴 찌르려는 게 아니야.
그냥 살기 위해 환경에 적응한 거야.
난 더디게 자라지만, 자라기는 해.
비료가 싫은 건 아니지만, 옅어야만 해.
이건 그저 나야.
나는 내가 선인장인 게 부끄럽진 않아.
그렇지만...
너희들을 보면 조금 아득하게 슬퍼질 때도 있어.
-150-15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글샘 > 빈곤한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인문학...
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인간이 쓰는 언어와 인간의 생각을 따지는 철학, 그 생각이 유형화 된 종교학,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미학이나 기호 체계의 형식적 절차를 따지는 논리학, 인간의 마음을 행동으로 파악하는 심리학... 이런 것들을 통틀어 이름인데... 이런 것들은 위기에 빠질 리가 없다.

인문학도의 위기나, 인문대학의 위기가 되겠지.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강대국도 미국이지만, 반면 가장 비참한 계층이 사는 나라도 미국이다. 다른 나라의 빈곤 계층은 식민지를 거쳤거나 종교적 계층 의식 등으로 생긴 계층이지만, 미국은 원주민을 학살하고 노예를 아프리카에서 잡아왔으며, 공업 입국의 체제에서 숱한 노동자들을 양산해 냈다. 술과 마약에 찌든 사람으로 가득하며, 갈곳 없는 아이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몰려든 라틴계도 이제 흑인 세력을 앞선다고 하는데, 그들은 대개 빈민층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아스타 마냐나'같은 스페인어가 뒤섞이는 일은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 빈민층이 각종 전쟁에 총알받이로 들러리를 선다.

그 미국의 빈곤 계층이 가난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도적 잘못으로? 게을러서? 구조적 모순... 이런 것들은 아무 해결책이 없는 망언들이다.
10년 쯤 전, 인생에 아무 비전이라곤 없는 사람들을 모아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고 플라톤을 들먹이는 대학 교수들의 수업을 시작했다. 그것을 클레멘트 코스라고 한다. 이건 무슨 운동 차원도 아니고, 그냥 빈곤 계층에게 인문학 수업을 한 것이다. 그 수업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버드 대학생들도 들을 법한 그런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교학상장이라고...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들은 클레멘트 코스를 통하여 서로 배웠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못배우고 못사는 사람들의 특성은 <즉자성>이다. 어떤 일에 맞닥뜨리면 '단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욕설이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란 부를 소유했을 때, 부산물로써, <성찰>의 공적인 삶으로 승화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설이기도 하고, 결론이기도 하다. 클레멘트 코스의 근본 목적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것. 이 코스의 가치는 도저히 잴 수 없는 것.

비니스라는 여성 재소자에게서 길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해줄 것으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제안받고 이 코스는 태동되었다.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 애들을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에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러면 그 애들은 그런 곳에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배우게 될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2년을 얼마나 반성했는지 모른다.
중학교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그저 무시하면 되는 거였다. 알량한 교사의 양심을 가지고 그 아이들에게 몇 푼의 동정심을 던져 주면 만족한 거였다. 고등학교 입학금이 없다는 녀석에게 내 통장에서 돈을 꺼내주고는 좋은 일을 했다고 만족하고 말면 그만이었다. 그녀석이 등록을 했든 말았든. 학부모가 주는 촌지로 공부방이 제대로 없어서 집에선 공부가 안 되는 아이에게 독서실 끊을 돈을 주었더니 녀석은 성적이 엄청 올랐다. 그게 다 내 덕이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실업계 아이들에게는 일말의 동정심을 던져 주기도 어려웠다.
아이들은 대부분 수업에 흥미가 없으며, 도대체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보였다. 이 아이들에게 도대체 난 무얼 해줄 수 있는지, 그닥 고민도 해보지 않았지만,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일이든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에 다른 이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궁리도 해 봤지만 선뜻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이 이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고 성찰의 힘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길일까?

희망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인문학이란 것을 깨달았다.
인문 고등학교와 똑같은 수업인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비해 질은 떨어지지만,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학교는 더이상 실업계 고등학교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수업을 일반계처럼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해서 공부를 못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올해는 특별활동 시간이 토요일에 잡혀 있으니, 특활 시간을 이용해서 '수능진학반'을 1학년에 개설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기는 가지만, 공부도 안하고 그저 내신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도 3년간 노력해서 한양 공대정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내팽개쳐두는 것과는 차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들의 공부를 돌봐줄 수는 없지만, 의욕을 주고 계획을 관리해 주며 무엇보다도 언어영역의 <인문학적 소양>을 같이 공부하면서 아이들이 할수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독서 지도를 체계적으로 하기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올해는 수업 시간을 이용해서는 재량활동과 연계하여 쓰기 수업을 적극적으로 해볼 것이고, 특활을 1학년부와 의논해서 수능준비반으로 운영해볼 욕심을 가져볼까 한다. 1학년 부장님이 마침 모교 출신 실과 선생님이니 반가워하실 일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호응인데, 시작이니 좀 유인책을 마련해서 좋은 아이들을 모집해볼 생각이다.

간혹 일반계에 가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준의 아이가 실업계로 오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엔 그런 아이가 별로 없다.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라 하지만, 개천에 지렁이도 없다고 여기지 않도록, 도랑도 자주 치고 가재도 잡는 움직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비하자면, 얼마간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훨씬 앞서간 거라고 생각하고...

이 책에서 힘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사회가 억압하는 무력을 force라고 했고, 거기 저항하는 폭력을 violence라고 하며, 정신적으로 자신감을 갖는 것을 power라고 했다.

포스로 찍어누르는 교사에게는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반항하는 바이얼런스가 생기게 마련이다.
교사의 할 일은, 포스의 권위를 갖추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이 파워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아이들이 파워를 가질 때, 교사는 비로소 권위가 서는 것이라 믿고 올 한해를 살 힘을 이 책에서 얻는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볼 법 하다. 사회학도도 마찬가지다.
빈곤이나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해 본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하던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떠올리니 무심하게 제 좋은 책만 읽었던 내 뒷모습이 왜 이리도 낯뜨겁게 비춰지는지...

가난한 사랑 노래 (부제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글샘 > 진정 뜨거웠던 혁명가, 체 게바라 평전을 읽다.
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 시절, 날마다 길거리에서 최루 가스 냄새를 가득 묻혀오곤 했을 때 체 게바라를 처음 읽었던 것 같다. 그 때는 '교수대로부터의 레포트'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같은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죽음과 혁명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과대망상에 휩싸여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던 때였다. 길거리의 최루가스에는 혁명의 냄새가 묻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좌절은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체 게바라를 평가한 말들은 무진장 많다.

'그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사르트르)'이란 평가가 가장 유명한 평가가 아닐까 싶다.
타임지에서는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의 얼굴이자 목소리이며 정신이고, 라울은 혁명을 위한 단검이고, 게바라는 두뇌이다. 그는 이 삼두마차에서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인물이다. 여자들을 홀리기에 딱 좋은 우수가 묻어나는 미소를 입꼬리에 흘리면서 체 게바라는 냉정하고도 치밀한 방식으로 쿠바를 이끌고 있다. 놀라운 능력과 지성, 그리고 세련된 유머로서." 라고 평가한다. 미국놈들 입장에서 잘도 보고 있다.

그의 가장 훌륭한 동지였던 피델 카스트로는 고인이 된 그를 두고 이렇게 평한다.
"그는 무척이나 대담한 사람이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므로 가장 어렵고 위험한 순간에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들을 해내곤 했다. ... 그는 순결하고, 용감하고, 모든 것에 초연하고, 욕심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간이었다. 체의 삶을 그를 맹렬하게 반대하는 이념상의 적까지도 감명을 받고 찬사를 할 정도로 위대했다. 그의 죽음은 이 시대의 현실에 경종을 울린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평가는 "에르네스토는 진실에 열광적이었다. 진실은 그의 환상이었다. 전투할 때는 냉정했고, 혁명과 관련된 모든 일에서는 굽힐 줄 몰랐던 만큼 그 아이는 더할 나위없이 부드럽고 유머가 넘치는 아이"였다고 이어진다. 그에 대한 평가들은 일관되면서도 이상적인 인간상을 부조로 빚고있단 생각이 들게 한다.

미국 놈들이 쿠바에 행한 짓거리를 보면, 구역질이 난다.
"만약 거기에 미사일이 없다면 그러지 않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정면 대결할 생각"이란 말은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다. 이라크에 부시가 했던 말의 복사판 아닌가?

이 책을 조금씩 읽던 중에, 체 게바라 자서전을 만나서 먼저 읽었다. 그 책은 훨씬 내용은 빈약하지만, 체의 사진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총에 맞는 순간, 잭 런던의 책에서 읽었던 <가장 멋지게 죽는 방법>이 떠오를 만큼, 그는 독서광이었다. 그리고 늘 고결한 죽음을 생각했으리라. 시인의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천식이란 결정적인 병을 품은 이였지만, 의지로 이겨내고야 말았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는 속담도 있는데, 지독한 인종이다.

마오 쩌뚱이 홍군이 위대한 장정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 엄격한 규율이었듯, 그의 성품도 깨끗하고 특권을 누리려 하지 않았다. 늘 소탈하면서도 유머를 지닌 사람, 그러면서도 항상 옳은 길을 이마의 별처럼 지향했던 사람. 그의 이전 역사에서 '게릴라'란 강력한 정규 군대에 대항하는 소수 과격파만을 일컬었지만, 비로소 체에 와서는 <압제자에 대항하는 전체 민중의 싸움>이라는 세계 시민으로서의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  위대한 인물은 르네상스적인 통찰력을 가졌다는 말은 헛된 말이 아니다. 그를 읽읽는 일은 사르트르의 헌사가 헛된 것이 아님을 거듭 확인하는 과정인 것이다.

"젊은 공산주의자의 의무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입니다.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이라는 말은 최고의 인간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최고의 인간은 노동과 학문, 이 세계 모든 민중과의 부단한 연대를 통하여 정제된 인간입니다. 이 지구상 어디선가 무고한 목숨이 꺼져갈 때 함께 고통을 느낄 수 있으리만치 감성이 계발되어 있으며, 자유라는 깃발 아래 분연히 일어설 줄 아는 인간입니다."
그는 스스로 '해방자'임을 부정한다. '해방자들'이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민중을 해방시키는 건 그들 자신이라고 강조한다.(434) 그는 진정한 혁명가였기에 '인간이 권력의 자비에 매달려 사는 사회가 아니라, 공적인 생활의 중심에 있게 되는 사회' 건설을 꿈꾸었고, 그래서 '테러리즘은 어떤 방식으로든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결정된 혁명 운동에 대해 반감을 품게 할 수 있는 부정적인 형식'(709)으로 확신을 표한다.

그의 말을 들으면, 게오르그 루카치가 '소설의 이론' 앞머리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고 은행 총재와 산업부 장관을 역임하면서도 그는 "영달과 권세라, 정말 지겨운 것들이오!"하는 말을 툭 던지고는 다시 총을 잡고 아프리카의 콩고로 건너간다. 베네룩스 삼국이라는 벨기에란 작은 나라가 아직도 엄청 잘 사는 이유는 콩고 공화국 같은 나라를 착취하는 구조가 완성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 시기에도 벨기에의 수탈은 극에 달했고 체는 아프리카의 동포들과 함께 했다. 다시 그는 남미의 볼리비아 정글로 뛰어들고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게 된 채 살해 당하고 마는 운명에 처한다.

그는 쿠바에서 고위 관료로 재직하던 당시 세계의 공산주의 국가들과 약소국들을 많이 순방하게 되는데, 사다트, 티토, 마오쩌뚱과 같은 인물들로부터 많은 시사를 얻어 각국의 혁명은 각국의 상황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는데, <소련과 동부 유럽 정권들의 부패>를 목도한 그는 '사회주의 진영의 열세'를 확신하게 되었다. 그가 사회주의 국가의 정착에 더욱 박차를 가하지 않고 총을 들고 영원한 게릴라의 별로 산화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분노하지 않는 민족은 야수같은 적에게 승리할 수 없다.(586)'는 말에서 그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란 이념이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류 공동의 적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체는 '인간은 태양을 향해 당당하게 가슴을 펼 수 있어야 한다. 태양은 인간을 불타오르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 준다. 고개를 숙인다면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라는 신념과 용기를 우리 머리 위에 뚜렷한 <별>로 각인시킨, 단순한 게릴라의 경지를 넘어선 또 한 사람의 성자라고 생각한다.

역자가 마지막에 기록한 체의 한마디는 그 <별>을 잊지않도록 하는 경구의 역할을 한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글샘 > 정말 특별한 내 아이에게, 부모는 책을 써야할 것 같다...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필립 체스터필드 지음, 문은실 옮김 / 뜨란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많다. 그러나 맘에 들지 않는 구석들은 저자가 18세기 사람이라서 지금과는 삶의 양식이 다르기 때문인 듯 하다.

21세기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부모들은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보통 잔소리를 하게 된다.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힘들때, 도움이 필요할 때, 좌절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필요한 것이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 구실을 완벽하게 할 수는 도저히 없다.

그러면... 이 책과 같은 책을 부모가 쓰는 것이다.

나는 한국 수준의 부모들이라면 자녀들에게 책 한 권 쯤은 남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드시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리는 후진국일 때처럼, 자녀에게 밥상머리 교육, 공동체 교육을 할 기회를 놓쳐 버렸고,
우리는 선진국 아이들처럼, 사회와 학교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없으며,
우리 아이들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단순 무제한 <경쟁>에 놓여 있으며,
5지 선다형 수능 중심 교육으로, 자기 생각이 없는 아이들로 자라나기 때문이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일기장 하나에 편지를 써도 좋고,
개인 출판의 형태로 책을 내 주는 업체를 이용해도 좋다.

아무튼, 자기 아이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포-옥 쉴 때, 가방에서 꺼내볼 수 있는 책을 하나 부모가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아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지나치게 서양 중심이고, 외교적인 시선이 두드러진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사 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이다.

부모라면 알 것이다. 우리 아이가 얼마나 특이한 아이인지를... 일반적인 삶의 지침서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음을...

정말 특별한 내 아이에게, 세상에 한 권뿐인 책을 만들어 주자.

책을 만들 때, 이 책의 목록들을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듯 하다.

난 예전에 육아 일기를 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육아 일기를 적어 둔다면, 아이가 자라면서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지를 실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제 아이가 중학생이 될 만큼 자란 시점에서, 아이의 삶에 개입할 수 없으면서, 아이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은 내 마음을 적어 책을 하나 쓰고 있다. (좋은 생각) 홈페이지에 가면 자작나무 기르기란 코너가 있는데, 100일을 이어 적으면 10,000원에 책을 한 권 낼 수 있다. 이제 한 달 썼는데, 매일 챙기는 것이 좀 어렵기도 하지만, 말이 책이지 잔소리를 매일 적는 것도 재미있기도 하다.

부모라면, 꼭 한 번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프롤로그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너에게


1 젊음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그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이 중요하다 /자신을 믿고 따라라


2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누구나 노력한 만큼 이룰 수 있다 /게으른 사람의 변명들 /사소한 일에도 관심을 쏟아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해라 /남을 무시하면 평생의 적이 생긴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아라 /절제할 줄 모르면 바보가 된다


3 네 인생의 최고 경영자가 되라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라 /순서를 정하고 체계적으로 일해라 /겉멋에 빠지지 마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즐겨라 /일할 때와 놀 때를 명확히 구분해라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라 /적은 돈도 가치 있게 써라 /자기 능력에 맞게 행동해라


4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라

인간이란 변화무쌍한 존재이다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늘 책을 가까이해라 /여행을 통해 시각을 넓혀라 /로마에 가면 이탈리아 사람이 되라


5 아무도 네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관점을 가져라 /독선과 편견에 얽매이지 마라 /자만의 함정에 빠지지 마라 /이론과 현실의 차이를 인식해라 /매력적인 화술을 익혀라 /당황하지 말고 침착해라


6 최선의 만남을 위하여

진정한 우정을 맺어라 /너보다 나은 친구를 사귀어라 /아래를 보지 말고 위를 봐라 /자신감을 가져라 /허영심도 약이 된다 /의지와 끈기만 있으면 길은 열린다


7 성공적인 인간 관계를 위하여

입보다 귀를 먼저 열어라 /자기 자랑을 일삼지 마라 /떳떳한 능력과 주관을 갖춰라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배려해라 /친구가 많은 이가 가장 강한 사람이다


8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몇 가지 비결

남의 장점을 네 것으로 만들어라 /호감을 주는 생활 습관들 /좋은 표정을 가꿔라 /상황에 맞게 예의를 지켜라 /오만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9 지혜로운 삶의 기술

부드러운 언행과 강한 의지를 겸비해라 /못된 사람한테 희생당하지 마라 /속마음을 함부로 드러내지 마라 /시치미를 뗄 줄도 알아야 한다 /경쟁자 앞에서는 끝까지 냉철해라


에필로그 : 너의 미래를 위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