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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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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인간이 쓰는 언어와 인간의 생각을 따지는 철학, 그 생각이 유형화 된 종교학,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미학이나 기호 체계의 형식적 절차를 따지는 논리학, 인간의 마음을 행동으로 파악하는 심리학... 이런 것들을 통틀어 이름인데... 이런 것들은 위기에 빠질 리가 없다.

인문학도의 위기나, 인문대학의 위기가 되겠지.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강대국도 미국이지만, 반면 가장 비참한 계층이 사는 나라도 미국이다. 다른 나라의 빈곤 계층은 식민지를 거쳤거나 종교적 계층 의식 등으로 생긴 계층이지만, 미국은 원주민을 학살하고 노예를 아프리카에서 잡아왔으며, 공업 입국의 체제에서 숱한 노동자들을 양산해 냈다. 술과 마약에 찌든 사람으로 가득하며, 갈곳 없는 아이들이 득시글거리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몰려든 라틴계도 이제 흑인 세력을 앞선다고 하는데, 그들은 대개 빈민층이다. 헐리우드 영화에 '아스타 마냐나'같은 스페인어가 뒤섞이는 일은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 빈민층이 각종 전쟁에 총알받이로 들러리를 선다.

그 미국의 빈곤 계층이 가난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도적 잘못으로? 게을러서? 구조적 모순... 이런 것들은 아무 해결책이 없는 망언들이다.
10년 쯤 전, 인생에 아무 비전이라곤 없는 사람들을 모아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하고 플라톤을 들먹이는 대학 교수들의 수업을 시작했다. 그것을 클레멘트 코스라고 한다. 이건 무슨 운동 차원도 아니고, 그냥 빈곤 계층에게 인문학 수업을 한 것이다. 그 수업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하버드 대학생들도 들을 법한 그런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교학상장이라고...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들은 클레멘트 코스를 통하여 서로 배웠다. 그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못배우고 못사는 사람들의 특성은 <즉자성>이다. 어떤 일에 맞닥뜨리면 '단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욕설이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문학이란 부를 소유했을 때, 부산물로써, <성찰>의 공적인 삶으로 승화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설이기도 하고, 결론이기도 하다. 클레멘트 코스의 근본 목적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것. 이 코스의 가치는 도저히 잴 수 없는 것.

비니스라는 여성 재소자에게서 길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해줄 것으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제안받고 이 코스는 태동되었다.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 애들을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에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러면 그 애들은 그런 곳에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배우게 될 겁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2년을 얼마나 반성했는지 모른다.
중학교나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그저 무시하면 되는 거였다. 알량한 교사의 양심을 가지고 그 아이들에게 몇 푼의 동정심을 던져 주면 만족한 거였다. 고등학교 입학금이 없다는 녀석에게 내 통장에서 돈을 꺼내주고는 좋은 일을 했다고 만족하고 말면 그만이었다. 그녀석이 등록을 했든 말았든. 학부모가 주는 촌지로 공부방이 제대로 없어서 집에선 공부가 안 되는 아이에게 독서실 끊을 돈을 주었더니 녀석은 성적이 엄청 올랐다. 그게 다 내 덕이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실업계 아이들에게는 일말의 동정심을 던져 주기도 어려웠다.
아이들은 대부분 수업에 흥미가 없으며, 도대체 남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보였다. 이 아이들에게 도대체 난 무얼 해줄 수 있는지, 그닥 고민도 해보지 않았지만,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일이든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에 다른 이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궁리도 해 봤지만 선뜻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슨 일이 이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고 성찰의 힘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길일까?

희망의 인문학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인문학이란 것을 깨달았다.
인문 고등학교와 똑같은 수업인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비해 질은 떨어지지만,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학교는 더이상 실업계 고등학교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고 수업을 일반계처럼 진행하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가난해서 공부를 못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올해는 특별활동 시간이 토요일에 잡혀 있으니, 특활 시간을 이용해서 '수능진학반'을 1학년에 개설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기는 가지만, 공부도 안하고 그저 내신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렇지만 우리 아이들도 3년간 노력해서 한양 공대정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내팽개쳐두는 것과는 차이가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이들의 공부를 돌봐줄 수는 없지만, 의욕을 주고 계획을 관리해 주며 무엇보다도 언어영역의 <인문학적 소양>을 같이 공부하면서 아이들이 할수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독서 지도를 체계적으로 하기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올해는 수업 시간을 이용해서는 재량활동과 연계하여 쓰기 수업을 적극적으로 해볼 것이고, 특활을 1학년부와 의논해서 수능준비반으로 운영해볼 욕심을 가져볼까 한다. 1학년 부장님이 마침 모교 출신 실과 선생님이니 반가워하실 일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호응인데, 시작이니 좀 유인책을 마련해서 좋은 아이들을 모집해볼 생각이다.

간혹 일반계에 가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준의 아이가 실업계로 오기도 하지만, 우리 학교엔 그런 아이가 별로 없다. 개천에서 용나지 않는 시대라 하지만, 개천에 지렁이도 없다고 여기지 않도록, 도랑도 자주 치고 가재도 잡는 움직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비하자면, 얼마간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훨씬 앞서간 거라고 생각하고...

이 책에서 힘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사회가 억압하는 무력을 force라고 했고, 거기 저항하는 폭력을 violence라고 하며, 정신적으로 자신감을 갖는 것을 power라고 했다.

포스로 찍어누르는 교사에게는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반항하는 바이얼런스가 생기게 마련이다.
교사의 할 일은, 포스의 권위를 갖추는 일이 아니라, 아이들이 파워를 갖추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아이들이 파워를 가질 때, 교사는 비로소 권위가 서는 것이라 믿고 올 한해를 살 힘을 이 책에서 얻는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볼 법 하다. 사회학도도 마찬가지다.
빈곤이나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해 본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하던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를 떠올리니 무심하게 제 좋은 책만 읽었던 내 뒷모습이 왜 이리도 낯뜨겁게 비춰지는지...

가난한 사랑 노래 (부제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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