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를 생각한다
존 코널 지음, 노승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소를 생각한다>의 저자 존 코널은 아일랜드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로 활동 중인 이십 대 청년이다.
유년 시절을 보냈던 시골을 벗어나 광대한 문명 세계라 여겼던 다른 나라에서 이민자,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꿈을 펼쳐보고자 했지만, 하고 싶은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순간순간 실패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에 몸서리치는 날들을 보내다가 가족 농장이 있는 고향 아일랜드 롱퍼트로 돌아온다.
소설을 쓰겠다는 일념으로 돌아와 소 치는 일과 집안일을 도와주며 자신을 내맡겨본다.
완고하고 고집불통인 아버지로부터 "너의 삶은 엉망이야, 넌 실패자야."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시골 목장에 꿋꿋이 발을 딛고 서서 소를 바라보고 소만을 생각하면서 점점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아간다.
농사란 어깨에 죽음을 짊어지고 왼쪽에 질병을, 오른쪽에 정신을, 앞쪽에 새 생명에 대한 기쁨을 데리고서 생존과 함께 걷는 일이다. (22p )
농장에서는 모든 것에 목적과 미래의 쓰임새가 있으며 모든 행위가 순환의 일부이다. ( 28p )
우리가 자신의 덧없음과 연약함을 상기하는 것은 죽음에서뿐이다. (176p)
이 책은 아일랜드 롱퍼드의 한 시골 목장을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저자가 소의 출산을 도와 송아지를 받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송아지를 받아내는데 성공하게 되고, 그날의 일을 통해 무언가 숭고하고 거룩하고 본질적인 것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면서 농장 일에 더욱 애착을 가지게 된다.
농장에서 보내는 하루는 고단하다.
새벽 일찍부터 일어나 소, 양, 닭들의 아침을 챙기고, 배설물을 치우고, 깔짚을 치우고 우리를 재정비해줘야 하며, 들판에서 살고 있는 말들에게도 먹이를 가져다주어야 하고 새끼를 가진 양과 소들을 체크하며 출산을 돕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송아지일 때 소뿔을 잘라주어야 하고, 소꼬리의 털도 깎아주어야 하고, 날씨 변화에 따라 우리를 정비하고, 들판을 관리해야 하고, 기후 변화까지 고려하며 먹이(곤포)를 챙겨두어야 하며, 가장 위험한 전염병 등에 걸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들개로부터 양들을 지켜야 하고 우수한 혈통의 소들은 잘 관리해주어야 한다.
나는 행운아다.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아무 때나 벗어날 수 있다. 예전만큼 세상에 얽매여 있지 않다. 물론 휴대폰은 있지만, 그건 외출했을 때 연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는 기술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는 중이다. 기술이 없는 곳에 자유가 있다. 버치뷰가 나의 월든인지도 모르겠다. 지난해부터 비로소 삶을 진정으로 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다. (97p)
농장 일을 하면서 마음뿐만 아니라 몸속까지 편안해진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평정심을 더욱 깊어져간다.
비로소 삶을 진정으로 살게 되었다고 느끼게 된다.
이제 저자는 농사꾼이자 작가로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다.
몇 해 전까지였다면 농장에서의 삶을 부끄럽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삶이 가장 진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농장 생활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농장의 초지를 걸으며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농장에서 '월든'을, 저자의 생업을 찾게 된 것이다.
농사일이 달라졌다고, 산업화되고 기계화되었다고들 말하지만, 가축이 아플 때 돌봐줄 심성이 농사꾼에게 없으면 가축이 죽는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130p )
녀석들은 소의 탈을 쓴 돈일뿐이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 눈에는 소들이 상품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녀석들은 한갓 고깃 거리가 아니라 동물이다. 녀석들에게는 고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격도 있다. 기억과 감정도 있다. 하지만 이 길로 가면 사업과는 멀어진다. 농사는 무엇보다 사업이라고들 하니까.
소 사육의 진실은 소가 도축당하려고 산다는 것이다. 소가 존재하는 것은 죽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으면 녀석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 농장에 있는 소는 모두 언제 가는 도축당할 팔자이다. 나이를 먹거나 몸무게가 차면 전부 푸주한의 쇠칼 맛을 볼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알아도, 심지어 상업적 농사꾼이라도 이게 오로지 돈 때문은 아니라고, 소를 미래의 소고기로만 보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면 송아지를 받으려고 한밤중에 본능적으로 일어나거나 아픈 새끼 양을 정성스럽게 돌볼 리 없다. 인간에게는 동물을 위하고 돌보는 본성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136 p)
나는 가축을 단순한 짐승이 아닌 훨씬 소중한 존재로 여긴다. 가축은 역사의 피조물이요, 과거를, 우리의 과거를 담는 그릇이다. 나는 가축의 유전자와 몸에서 소뿐 아니라 주인인 농부들의 경주를 본다. 그 속에서 이야기들에 얹힌 이야기들을 본다. 작가와 농사꾼 중 어느 하나를 택할 필요는 없다. 둘 다 될 수 있다. 나는 농사꾼이자 작가이다. (320p )
자연 속에서 생명을 보살피고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순간 저자는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농부가 되면서 모든 기쁨과 슬픔을 담을 수 있는 진정한 작가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의 단순하고 여유로운 글 속에는 생명을 대하는 따뜻한 시선과 생명의 느낌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소를 생각한다>는 오랜만에 독서의 순수한 기쁨을 선사해준 책이었다.
참, 책 속에는 소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들도 틈틈이 소개되어 있는데 또 다른 읽을거리를 제공해주었다.
소는 지난 1만 년 500년 동안 우리 인간과 함께 해온 인류의 동반자다.
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지금은 멸종된 오록스 또는 위르라 불리는 들소가 집소의 기원이란다.
프랑스의 라스코 동물 벽화나 그 이전의 쇼베 동굴 벽화에 있는 그림 속의 소는 오록스다.
이집트의 신성한 동물 중에서도 아피스(소)는 농업에서 힘과 비옥함을 상징했는데, 신성한 소 아피스는 죽어서 가장 큰 영예를 누렸다.
<아피스 파피루스>에는 아피스를 미라로 만들어 매장하는 의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인들로부터 이집트를 되찾는 동안 아피스에게 제사를 올렸다고 할 정도니 소는 가축화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영적 세계에까지 자리를 잡았다.
소는 고대 그리스와 켈트 신화 속에서 등장한 신비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길가메시 서사시>에 처음 등장했고 후일 스페인에서 화려하게 투우로 재탄생한다.
그리고 마침내 공장식 축산 때문에 '제품'으로 전락해버린 소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소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소에 대한 이야기 속에는 우리 인간의 역사, 문화, 삶이 늘 깃들어 있었다며, 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인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소는 오래도록 인간과 관계를 맺으면서 신화적 동물, 신의 수레, 은하수의 기원으로 자리 잡았었는데 이제는 정교하게 관리되는 먹이 사슬 내 '제품'으로 전락했다.
산업적 축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소비를 더는 감각 능력을 가진 동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한때 소는 자연 세계에서 인간의 가장 귀한 동반자이기도 했었은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소를 키우다 보면 소가 인지 능력이 있으며 기억력과 사고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소에 비해 양은 순하지만 멍청한 동물이란다.
오랫동안 돌봐줬는데도 주인이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소들은 성격이 저마다 다르다. 어떤 소는 착하고 어떤 소는 못됐고 어떤 소는 교활하고 어떤 소는 게을러터졌다. 기질도 다르고 기분도 변한다. 가장 순하던 녀석이 동료를 못살게 굴고 가장 다혈질이던 녀석이 송아지들이랑 놀아주기도 한다. 소의 세계에는 인종주의가 없으며 품종과 색깔이 달라도 서로 잘 지낸다. ( 27p )
양을 풀어놓을 때는 신중을 기하고 소규모로 해야 한다. 어미와 새끼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둘 다 헷갈려서 서로를 몰라보는 바람에 새끼 양이 버림받을 우려가 있다. 이 교혼은 뼈져린 대가를 치르고 얻었다. 몇 주 전에 새끼 양과 어미 양 스무 마리를 풀어놓았을 때였다. 어미 양들은 해방된 게 기뻐서 들판으로 내달렸지만 새끼 양들은 양사를 떠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머뭇거렸다. 전부 내보냈을 즈음 어미들은 도랑 쪽으로 가버렸고 새끼들은 자기들끼리 남겨진 채 울고 있었다.
소가 새끼를 몰라보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양보다 더 똑똑하거나 냄새를 잘 맡아서 그런 것 같다. ( 9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