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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론 - 리더는 일하는 사람이다
이한우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군자(君子)는 원래 신분적 등급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유교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이르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며, 성품이 어질고 학식이 높은 지성인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군자가 유교적 덕성과 교양을 두루 겸비한 인격자, 또는 이상적인 인간상의 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공자 이후부터라 할 수 있는데, 공자는 출신 배경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그 행위가 규범적이고 도덕적이라면 군자라고 지칭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사숙(私淑)을 통해 제자들에게 '군자학'을 가르쳤고 <논어>의 내용도 '군자론'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성인(聖人)을 최고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꼽았지만, <논어>에는 성인이란 단어보다 군자란 단어가 훨씬 많이(총 106번) 언급되었다 한다.
성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완성된 절대적인 인격을 통해 유교의 이상을 정립했다면, 군자는 스스로 노력하고 만들어가는 인격으로 현실적인 인간상을 제시한다 할 수 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문(文), 행(行). 충(忠), 신(信) 네 가지를 가르쳤다.
- 가장 중요한 것이 문(文)과 행(行)으로 애쓰는 태도와 일을 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리고 충(忠)과 신(信)으로 거짓 없는 마음과 믿음직함을 포괄하는 인간의 근본 바탕, 즉 질(質)이다. '문'이 그냥 글로 해설될 수 없고, '예(악)'로 해설될 수 없다. 일을 하는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 스스로 거짓 없는 마음을 가지며, 믿음직한 사람이 되려면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문(文)이 '정성을 다해 표출하려는 노력(애씀 = 文)'이 되는 이유다.
<자한>에서 공자의 수제가 안회는 이렇게 말한다. (42p)
공자는 혼탁한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가며 그 시대의 문제점이 지배계층에 있음을 직시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투쟁하며 지배계층의 솔선수범과 각 계층의 합당한 임무 수행을 위해 정명(正名) 사상을 강조하기도 했다.
공자 이후의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군주들은 이런 공자의 철학을 '치국의 교본'으로 삼기도 했다.
<군자론>의 저자 이한우는 일이 중심이 되는 군자학 연구에 독보적인 성과를 낸 국내 최고의 권위자이자 저술가로 10여 년에 걸쳐 <조선왕조실록>을 탐독하며 조선 군주의 리더십 연구에 몰두해오고 있으며, <논어> 읽기 강좌와 강의를 통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군자 리더십을 설파하고 있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공자의 철학을 도덕 철학으로만 인식하고, '안빈낙도', '안분지족'이라는 허상에 공자를 가둠으로써 공자가 말하는 '군자다움'의 진면목을 오독해왔다고 말한다.
오히려 공자는 신중하고, 지혜롭고, 현명하게 일이 될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 일이 되게끔 하는 사람을 군자로 칭송했으며, 누구보다도 실용적인 가치를 우선에 두고 일을 제대로 해내는 리더로서 군자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말한다.
이 책 <군자론>의 주제는 '공자의 말을 통해 일하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라며, 공자의 행동과 말속에서 일이 되게 하는 말(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며, 군자와 소인배를 구분하는 법과 제대로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분별하는 법을 알려준다.
- 선비가 꼬장꼬장하다면 군자는 유연하다.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일이 풀려가는 것을 앞세운다. 우리 주변에는 일이야 어떻게 되건 자기주장에 급급한 선비형 인물들이 너무 많다. 시국 토론회를 보면 말은 넘쳐나지만, 일이 되게 하려는 토론인지 의심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은 실은 선비형 인물들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양보할 줄도 알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토론 주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토론의 본래 목적인데. 이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한 줌도 안 되는 알량한 지식과 도덕을 과시하려는 것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의 화합과 공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263p)
오늘날의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직의 성과로 평가를 받고 있어 '일이 되게 하는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된다.
저자는 <군자론>를 통해 공자가 이야기하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말과 역할(리더로서의 자질)을 익히고 배워 제대로 일하는 법을 깨우치길 바라는 마음도 담고 있다.
<논어>, <주역>에 있는 공자의 말들 중 오늘날의 리더십에 활용 가능한 방법들을 그의 제자들과의 질문과 질의를 통해 이해하기 쉽도록 해석해주고 있으며,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 리더들은 어떻게 리더십을 활용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저자는 조선왕조 태종을 일하는 군자의 대표적인 예로 평가한다.
왕위를 위해 아버지 태조를 배반, 형제를 죽이고, 처가마저 멸문지화 시켜버린 장본인이지만 공자가 말하는 군자상에는 가장 부합한 군주였단다.
아버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때 빈틈없는 계책과 판단력으로 두 어머니를 지켜냈고, 정적 정몽주를 제거해 조선 건국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역사상 최대 성군으로 일컫는 세종을 위해 치세에 걸림돌이 되는 이를 모두 제거함으로써 태평성대를 열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 적어도 정치력만 놓고 보면 태종이 세종보다 몇 수 위다. 태종은 신시경종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군주였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양녕을 세자에서 내쫓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은 다음,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나 어린 세종이 임금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4년간 돌보아준 일이다. 세종의 경우에 이 ‘인턴 임금 4년’이 없었더라면 그 후 그렇게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을지 미지수다. 반면 세종은 신시(愼始)했는지는 몰라도 경종(敬終), 즉 일의 끝을 잘 삼갔다고는 할 수 없다. 후계 구도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수양(首陽)과 안평(安平) 두 대군으로 하여금 어려서부터 정치에 관련된 심부름을 시키면서 정치에 관여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양녕이 세자이던 시절 효령(孝寧)이나 충녕(忠寧)이 정치와 관련된 책을 보면 그 자리에서 빼앗았던 태종과는 확연히 대조를 이룬다. 결국 세종 사후에 친형제들 간의 살육전이 벌어진 것도 실은 세종 탓이라고 할 수 있다. (108~109 p)
조선의 대표적인 선비이자 사육신 중 한 명인 성상문은 '절의'는 넘쳤으나 '일은 모르는 선비'였다고 평가한다.
아버지 성승의 계획대로 일을 추진했다면 거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을 텐데, 성상문이 머뭇거리는 탓에 모두가 죽게 되었으니, 일에 관한 한 주도면밀함을 강조하는 공자의 관점에서는 '일을 모르는 사람'인 것이다.
- 사실 당시 사건 현장을 재현하면 성삼문의 경우에는 선조가 지적하는 이런 허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심지어 아버지 성승의 계획대로 일을 추진했다면 거사가 이루어질 수도 있었지만, 결국 성삼문이 머뭇거린 탓에 모두가 죽게 된 측면도 있다. 성삼문은 적어도 일을 아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조의 이 질문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의사(義士)와 열장부(烈丈夫)가 그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선비 정신을 칭할 때 그 선비는 공(公), 경(卿), 대부(大夫), 사(士)라고 할 때의 그런 선비, 즉 아직 벼슬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선비[義士]나 절의가 있는 선비[烈士] 혹은 뜻을 견결하게 지키는 선비[志士]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선조는 성삼문을 비롯한 육신은 의사와 열장부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지금 읽는데도 그 글에서 선조의 노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134 p)
“선비는 말만 일삼고, 군자는 일이 되게 한다.”
공적인 말은 일이 되게 하는 것을 전제한다.
할 말은 반드시 하되, 불필요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 제대로 된 말하기다.
말 대신 글을 집어넣어도 똑같다.
거기에 제대로 된 글쓰기의 정의가 담겨 있다.
할 말은 반드시 쓰고 불필요한 말은 단 한 구절도 쓰지 않는다. (8p)
군주란 그 나라의 규모가 크든 작든 모든 권력을 장악한 사람이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교만이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어설픈 만족감이다.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려 하지 않는다. 귀찮고 번거롭고 지겹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더 이상 나아가려 하지 않는 지도자에게는 새로운 길을 인도해줄 스승과 같은 신하(師臣)가 가까이 갈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어버린 지도자에게 꼬이는 것은 아첨하는 신하(師臣) 뿐이다. 이 같은 기로에서 다시 한번 음미해보기 바란다.
"(옛 뛰어난 이들의 애씀이나 애쓰는 법을) 배워서 시간 나는 대로 그것을 익히니 진실로 기쁘지 않겠는가?" (37p)
나라나 조직에서의 말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직언이다. 그런데 내가 <논어>를 오랫동안 강의하면서 강조하는 말 중 하나가 ‘직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자의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아마도 독자들은 방금 보았던 사례, 즉 염유에 대한 공자의 비판도 결국은 직언을 하라는 뜻이 아니냐고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용상의 직언, 직간과 방식이나 행태로서의 직언, 직간은 다르다. 이 점을 구분하지 못하면 그 말이 광직(狂直)해지고 자칫 자신의 몸만 망치게 된다. (74p)
공자가 자하에게 되지 말라고 했던 소인은 바로 이런 모습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람을 부리면서도 그 그릇에 맞게 부린다"와 "사람을 부리면서도 능력이 완비되기를 요구한"라는 말이다. 이는 둘 다 일(事)과 관련된 언급이다. 즉 아랫사람에게 일을 시킬 때 그릇에 맞게 부리는 것이 바로 공자가 말한 관(寬), 즉 너그러움이다. 공자는 이런 관이 없는 리더는 리더가 아니라고 했다. 마치 효도하지 않는 자식은 자식이 아닌 것과도 같다. 따라서 군자는 아랫사람 한 사람에게 여러 능력이 다 갖춰져 있기를 요구하지 않는다[無求備於一人].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관이고 '그 사람을 그 그릇에 맞게 부리는 것'이다. 즉 공자는 군자를 말할 때 반드시 일을 이치에 맞게 처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주희는 공자를 지웠고 그 탓에 군자 또한 우리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주희를 물리치고 공자를 다시 소환하는 것은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임과 동시에 리더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다. (12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