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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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흔적도, 시신도 없는 미스터리한 실종!

흔적이 없이 사라진 딸을 찾기 위한 아빠의 처절한 몸부림은 백야가 시작되면서 해가 지지 않는 스웨덴 북부의 초현실적인 풍경 속에서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실버 로드라 불리는 스웨덴 동부 해안에서 노르웨이 국격으로 이어지는 국도에서 3년 전 렐레의 17살 딸 리나가 버스를 기다리다 감쪽같이 사라져버린다.

딸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아빠인 렐레로 버스가 도착하기 15분 전 버스 정류장에 리나를 내려주었다.

15분 후 버스가 도착했을 땐 이미 리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목격자도 단서도 없이 사건은 미궁에 빠지게 되고, 그때부터 3년 동안 렐레는 딸 리나의 생존을 확신하며 사라진 딸을 찾아 혼자 실버 로드와 인근 지역을 샅샅이 수색하고 다닌다.

밤새 실버 로드를 운전하며 특이사항이 있나를 확인하고, 크고 작은 쓰레기통들도 모두 열어보고, 습지나 폐광도 샅샅이 뒤져본다.

집에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리나의 실종에 관해 써놓은 가설들을 읽어본다.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가설들이었지만 그래도 렐레는 다 읽어 보았다.

그리고 거의 매일 경찰서에 전화를 해 딸을 찾아내라고 소리를 쳤고, 자지도 먹지도 않으며 리나를 찾는 일에만 집중했다.

어둠이 도사린 숲과 안개가 짙게 낀 습지, 인적이 없는 폐가를 샅샅이 수색하며 다니던 렐리에게 수상쩍은 용의자들이 하나씩 포착된다.

딸의 남자친구, 폐가에 숨어사는 퇴역군인, 포르노 수집광인 늙은 남자, 강간 전과자, 밀주를 파는 쌍둥이 형제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서 범죄 혐의점을 찾아내기 위해 한 사람씩 차례로 접근을 시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캠핑장에서 또 다른 17살 소녀가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딸 리나의 실종 때와 같이 목격자도, 단서도 없다.

렐레는 이 사건이 딸의 실종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직감하고 유력한 용의자를 찾아 나선다.

<실버 로드>에는 실종된 딸을 찾아다니는 렐레와 매춘부 엄마로부터 벗어나려는 소녀 메야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메야의 엄마는 인터넷상에서 만난 남자의 집에 얹혀살고자 스웨덴 북부의 적막한 마을로 이주해온다.

딸이 집에 있어도 애인과 거침없이 섹스하는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던 메야에게 인근에 사는 삼 형제가 나타난다.

그의 가족은 기술문명과 교육을 거부하고 숲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간다.

안온한 가정을 갈망했던 메야는 좀 특이하긴 해도 삼 형제 중 막내인 칼 요한에게 빠져들게 되고 마침내는 엄마 곁을 떠나 그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각각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전개되지만 결국 두 사람 사건들은 하나의 접점을 이루게 되고, 새롭게 실종된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되면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운명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서히 섬뜩한 모습을 드려내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날 찾아야지. 날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빠분이야."


<실버 로드> 소설은 저자인 스티나 약손의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2018년 스웨덴 범죄소설상, 2019년 북유럽 최고의 장르문학에 수여하는 ‘유리열쇠상’을 수상한다.

신인 작가가 데뷔작으로 상을 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으며, 이 놀라운 데뷔작은 스웨덴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1위, 전 세계 20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고 한다.


리나와 같은 또래의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실종된 리나를 3년 동안 찾아다니는 렐레와 달리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자식이 살인을 해도 자기 자식만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비르게르같은 부모를 보면서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고 다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참 씁쓸했다.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딸을 찾아 헤매는 렐레의 끊임없는 죄책감이 이해가 되면서도 그저 안타깝기만 했다.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딸을 찾아헤매고, 예전과 변함없이 딸이 있는 듯 대화도 나누는 모습에 미쳤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딸이 실종되어 버린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어느 드라마에 나왔던 대사가 생각났다.

남편이 먼저 죽으면 과부, 부인이 먼저 죽으면 홀아비, 부모가 먼저 죽으면 고아라 부르는데,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고통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부를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실버 로드>를 읽으면서 4월이면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꽃 같은 아이들과 그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님들의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이 자꾸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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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그리워졌다 - 인생이 허기질 때 나를 지켜주는 음식
김용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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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신의 공여(供與)다. 어떤 생명체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나의 생명이 누군가의 생명에 빚진 대가라고 생각하면 음식 앞에서 장엄한 슬픔을 느낀다. 먹고산다는 것이 참 신산스럽기만 하다. 성스럽기만 하다.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으면 지금까지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라. 그것이 당신의 인생이다. (9p)


<밥이 그리워졌다>에는 저자 김용희가 '이번 생에서 기억할 만한 음식 50가지'를 선정하고 그 음식에 담긴 추억을 소환한 음식 에세이다.

저자는 50가지의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그 음식을 소재로 한 시, 소설, 영화, 노래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칼국수에서는 김애란의 소설 <칼국수>, 달걀말이에서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전복죽에서는 서정주의 시 <시론>, 삼겹살에서는 손해성 감독의 영화 <고령화 가족>, 고등어구이에서는 김창완의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 상추쌈에서는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 잔멸치덮밥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닭백숙에서는 김운영의 시 <눈발이 날리는 마당>, 카레라이스에서는 노라조의 노래 <카레>, 빵에서는 미시다 유키코 감독의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조개탕에서는 한재림 감독의 영화 <연애의 목적>, 팝콘에서는 박광현 감독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막걸리에서는 윤종신의 앨범 <행보>에 수록된 노래 <막걸리나>, 커피에서는 김용희의 소설 <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 양푼비빔밥에서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떡볶이에서는 영화 <너의 결혼식>, 스테이크에서는 김애란의 소설 <성탄 특선>, 김치찌개에서는 은야쟁이와 징징돌이의 웹툰 <158동 진상 부부 :참치김치찌개>, 꼬막무침에서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선지해장국에서는 허수경의 시 <폐병쟁이 내 사내>, 라면에서는 악동뮤지션의 노래 <라면인건가>, 치킨에서는 이병헌 감독의 영화 <극한직업>, 햄버거에서는 장정일의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 회전초밥에서는 들개이빨의 웹툰 <먹는 존재 : 회전초밥>, 쌀밥에서는 고전소설 <춘향전>, 전에서는 한목남의 노래 <빈대떡 신사>, 냉면에서는 유종빈 감독의 영화 <공작>, 헛제삿밥에서는 박현수의 시 <헛제삿밥>, 동파육에서는 소동파의 시 <식저육시>, 김밥에서는 가수 자두의 <김밥>, 양배추샌드위치에서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가자미미역국에서는 백석 시인의 시 <선우사>, 와인에서는 아기 다다시의 만화 <신의 물방울>, 짜장면에서는 이해준 감독의 영화 <김 씨 표류기>, 만두에서는 자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팥빙수에서의 윤종신의 앨범 <그늘>에 수록된 <팥빙수>, 차에서는 정지용의 시 <인동차>, 초콜릿에서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김치볶음밥에서는 변진섭의 노래 <희망사항>, 생일케이크에서는 이장훈 감독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설렁탕에서는 함민복의 산문 <눈물은 왜 짠가>와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 육개장에서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 3 : 소고기 전쟁>, 풀빵에서는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메밀묵에서는 박목월의 시 <적막한 식욕>, 간장게장에서는 안도현의 시 <스며든다는 것>, 돈가스에서는 오무라이스 잼잼의 웹툰 <내 생애 최후의 돈가스>, 수박에서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김치에서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콩국수에서는 영국의 동화 <잭과 콩나무>, 사과에서는 길상호의 시 <향기로운 배꼽> 등이 나온다.

50가지의 음식과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 노래, 영화에 대한 텍스트에 작가의 추억을 더해 풀어내고 있는 음식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음식과 관련된 작품들에 관한 짧은 소개 글만으로도 보고 싶고 읽고 싶은 작품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단 한 그릇의 국수를 먹을 때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먹는 행위가 있으면 먹이는 행위가 있다는 것을.

내가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사이 누군가 썰고, 가르고, 다지고 있다는 것을. 졸이고, 찌고, 차리고 있다는 것을.


칼국수에는 칼의 기억이 숨겨져 있다. 칼국수 한 가락 한 가락 썰어나가는 마디마디 칼날의 섬세함과 우직함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엄마는 칼을 든 무사였다. 세상의 헐벗음 속에서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칼을 든 무사.

<칼국수 - 김애란 작, 17~20p>


칼국수 하면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번화한 도심 속에 자리한 고등학교라 조금만 걸음을 재촉하면 큰 먹자골목을 나왔고 그곳에는 지금까지도 맛집으로 유명세를 떨리고 있는 추억의 칼국숫집이 있다.

주머니 가벼운 여고생들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착한 가성비 좋은 맛집이었다.

칼3, 비칼2, 냉칼1....

칼을 파는 철물점도 아닌데 주문받은 수많은 칼들이 주방으로 전달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거리를 지나다 맛있게 우려진 육수 내음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로 추억 소환해 버리는 음식이 칼국수다.


팝콘 하면 영화관이었는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후로 '팝콘+영화+웰컴 투 동막골'이 함께 떠오른다.

옥수수 창고에 실수로 수류탄이 떨어지고 옥수수가 하늘로 치솟으며 새하얀 눈처럼 팝콘이 내리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밥을 든든히 먹고 영화관으로 들어가도 한 통씩은 끼고 영화를 봐야 하니 엄청난 칼로리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싶지만, 팝콘은 항상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과 함께 기억되는 마법 같은 간식이다.

한국의 전통 술인 막걸리.

대학시절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번듯한 안주가 없어도 배부르게 마실 수 있었던 술이었다.

맥주, 소주, 와인 등에 밀려 여느 술자리에서 막걸리를 찾지는 않지만, 그래도 등산 후에는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이 최고 별미고, 비 오는 날 부침개 굽는다면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는 막걸리 한 병이 들려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초반 한때 사재기 바람이 살짝 불었던 적이 있었는데 비상식량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단연코 라면이었다.

한때 라면은 배고픈 청춘들의 소울 푸드로 화자 되기도 했지만, 이젠 외국 여행 갈 때 필수품이 되었고, 스위스 융프라우산 꼭대기에서도 먹는 간식이 되었으며, 칸과 오스카를 뜨겁게 달군 채끝살 짜파구리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꿔가면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건 결코 실패란 있을 수가 없는 마법의 스프가 있기 때문이며, 밥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 든든함을 선사하는 가성비 최고의 음식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라면 없는 삶이라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의 끝판왕이었던 짜장면... 아니 간짜장.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는 화교가 운영하는 제법 그럴싸한 중국집이 있었다.

주문을 하면 쏼라~쏼라~ 자기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큰 원형으로 된 식탁 중앙에는 작은 원형으로 된 테이블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짜장 양념이 따로 나오는 간짜장과 투명한 소스의 탕수육, 육즙이 가득했던 만두는 지금 생각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 같다.

오랜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였지만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 인근 학교와 통합되면서 학교는 사라져 버렸지만 지금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 중국집은 유명한 한국 영화에도 나오는 핫한 가계가 되었다.

추억 속의 일부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음식은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음식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결정적인 순간, 슬펐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에 함께 안 음식들, 냄새만으로도 기억되는 음식, 소리만으로도 기억되는 음식, 장소만으로도 기억되는 음식 등 수많은 음식들이 함께 곁에 있어 주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나를 지켜주는 음식'이라는 부제처럼 음식은 단순히 생명유지를 위한 영양소 물질 이상의 정신적인 무언가를 제공해 주는 것 같아 책을 읽으며 행복한 추억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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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 쪽팔린 게 죽기보다 싫은 어느 응급실 레지던트의 삐딱한 생존 설명서
곽경훈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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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는 의학드라마 중 하나가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다.

그동안 수많은 의학 드라마들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악역 없는 드라마에 깊은 울림까지 주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 5인방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지극히 사람 중심적인 마인드를 가진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매회를 거듭할수록 사명감 있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수많은 명대사들을 남기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수술 전 "소중한 생명 꼭 살립시다"라고 말하던 모습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에 담긴 소신과 공감의 메시지는 뭉클함을 전해주었으며 "익숙해 질게 따로 있지"라고 말하며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대사에서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이런 의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행운일까를 생각하며 <응급 의학과 곽경훈입니다>를 읽었다가, '그래, 우리 현실에는 이런 의사들이 참 많지'라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방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4년 동안 있는 동안의 일을 솔직하게 회고하는 글로 거의 내부고발 수준에 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능하고 욕심만 많은 응급의학과 과장의 무사안일한 일처리들이 얼마나 무책임한 결과들을 낳는지를 이야기한다.

타과 전공의(임상과 레지던트)라고 다를 것도 없다.

위중한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해 각 임상과 레지던트를 부르면 서로 자기들 과에 해당하는 환자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다가 '의료사고'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막을 수 있는 사망'이 발생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보니 의사의 무능과 무지함으로 인한 오진으로 가족이 병원에서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고열에 설사를 해 급하게 응급실로 갔더니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장티푸스를 운운하던 응급실 의사, 급체한 3살 아이를 폐렴이라고 진단하고 입원시켜 항생제를 계속 투약해 시름시름 앓게 만들었던 의사, 기흉 수술은 시술에 가까운 간단한 수술이라고 호언장담하더니 수술이 잘못된 건지 큰 병원으로 후송되어 재수술 받고 결국은 보건실에서 수능 시험을 치게 만들었던 의사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그냥 이야기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책 속에 소개된 이야기 속 가족들은 그들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할까 싶다.

책 속에 소개된 의사들이 정말 소수이기를 바라본다.

 

 

어느 의대 교수가 한 말이 기억난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사람으로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환자와 잘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성찰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은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 세계가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전 세계로부터 감염증 확산 방지와 방역, 진단과 치료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우수 사례로 대한민국이 거론되고 있으며, 덕분에 국가의 위상도 드높아진 상황이다.

그 속에는 의료진으로서의 사명감을 저버리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와 의술을 펼쳐준 많은 의료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의료진이 많다는 것이 더없이 자랑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에 소개된 그런 의사들만 있다면 아파도 두려워서 병원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진정한 의술을 펼치는 사람들이 더 많으리란 믿음을 가져본다.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은 치료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니까 완쾌한 환자 대부분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단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159p)

 

심장내과 담당 3년 차 레지던트와 전임의, 호흡기 내과 담당 3년 차 레지던트, 류머티즘내과 담당 3년 차 레지던트, 신경과 2년 차 레지던트의 결론은 동일했다. 무례함과 짜증의 정도만 달았을 뿐 '우리 임상과 문제가 아닙니다.'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인공호흡기가 달려 있고 흡인성 폐렴이 있으며 심전도와 심장 효소 수치에 이상이 있고 승압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겨우 혈압이 유지되는 환자에게 1000병상에 가까운 대형 대형 병원에서 모든 임상과가 '우리는 해줄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괴한 상황이 펼쳐졌다. (79p)

 

레지던트 시절 내내 응급실에서 '좀처럼 믿기 힘들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을 겪었다. 법적으로 '의료사고'라고 규정할 수는 없더라도 '막을 수 있는 사망'이었던 경우들이다. 응급실은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 여부를 감별하고 치료하는 곳'이다. 따라서 응급실 진료에는 엄청나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특별한 의학 기술보다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도 차근차근 조그마한 기분도 놓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 환자에 대한 책임감, 고정 관념에서 자유로운 판단이 중요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레지던트에 불과한 주인공이 다른 의료진이 찾지 못한 해법을 찾아내는 것은 그가 특별히 뛰어난 의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의과대학 정규 교육을 이수하고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식과 기술의 부족이 아닌, 고정 관면, 무사안일주의, 나태한 태도 때문에 '좀처럼 믿디 힘들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 반복되었다. (324~3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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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츠스케일링 - 단숨에 ,거침없이 시장을 제패한 거대 기업들의 비밀
리드 호프먼.크리스 예 지음, 이영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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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이 필요한 기회의 창은 대단히 좁고 빨리 닫힌다. (빌 게이츠)


<블리츠스케일링>의 공동저자 리드 호프먼과 크리스 예는 스타트업 CEO들이 가장 먼저 만나고 싶어 하는 실리콘밸리의 기업가이자 최고의 투자자다.

리즈 호프먼은 페이스북보다 한발 앞서 소셜 미디어의 가능성을 보고 비즈니스에 특화된 인맥 서비스를 제공하는 링크드인(Linkesin)을 설립했으며,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인스타그램, 징가, 그루폰 등 50여 곳이 넘는 회사에 투자하여 그들의 성공을 견인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그는 '연결의 왕'이란 별칭으로 불릴 만큼 창업에서부터 투자, 사업에 필요한 모든 네크워크를 연결하는데 탁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크리스 예는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와사비 벤처스'를 창업해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하이테크 스타트업에 조언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이 시사하는 단숨에 경쟁자를 앞지르는 비밀병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블리츠스케일링'이다.

블리츠스케일링은 공격적이면서 전면적인 성장 프로그램이다.

블리츠스케일링은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신중함(효율)보다는 속도를 우선하는 것이 비즈니스에 매주 중요하다는 것으로 두 사용자 그룹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네트워크 효과를 일으키는 양면적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더욱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단다.

비즈니스·구직 네트워크로 유명한 '링크드인'은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들을 채용하고자 하는 고용주들을 끌어들이려고 한다거나, '에어비앤비'는 숙박할 만한 곳을 찾는 손님들은 물론 대여할 공간을 가진 호스트들을 원한다거나, '우버'는 운전기사는 물론 승객을 끌어들이고자 한다거나, 판매용 운영체제를 가진 소프트웨어 기업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는 물론 이것을 사용할 고객을 원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수십 년 전에는 실현 불가능했던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급속한 성장을 지원하는 아웃소싱 기업과 서비스 제공자들이 넘쳐나고 있어 빠르게 성장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끊임없는 데이터의 흐름을 통한 사용자의 피드백을 잘 활용한다면 우수한 제품은 빠르게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이 주력 제품과 상당한 규모의 확실한 시장, 견고한 유통 채널을 갖출 정도로 성장하면 '스케일업(scale-up)'이 되는데, 스타트업에서 스케일업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직선 코스는 단연 '블리츠스케일링'을 통해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구글, 그루폰, 넷플릭스, 드롭박스, 로켓 모기지, 링크드인, 마이크로소프트, 메르카도리브레, 샤오미, 세일즈포스닷컴, 스트라이프, 스포티파이, 슬랙, 아마존, 알리바바, 애플, 에어비앤비, 엠페사, 우버, 자라, 체서피크 에너지, 클래스패스, 테슬라, 텐센트,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팔, 프라이스라인, 플립카트 등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에는 블리츠스케일링이 있었다.

이 공격적인 성장전략은 스타트업과 기존의 기업을 모두 기록적인 시간 안에 세계를 지배하는 일류 기업으로 키워주는 기법이다.


블리츠 전략은 불확실한 환경에서 속도를 우선시한다. 이를 통해 매우 급속한 성장을 추진하고 관리하는 전략이자 일련의 기법이다. 달리 표현하면, 블리트스케일링은 기업이 맹렬한 속도로 성장해서 경쟁자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게 하는 촉진제다. 블리츠스케일링을 하려면 초고도 성장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겟 빅 패스트 (Get Big Fast : '빠르게 실행해서 크게 만들자'라는 뜻의 아마존이 내세우는 모토로, 무엇보다 고객을 늘리고 트래픽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것을 말함)"를 말하진 않는다. 블리츠스케일링은 이 같은 투박한 전략을 넘어선다. 블리츠스케일링은 전형적인 비즈니스 관점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조차도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30p)


나에겐 아주 많이 생소할 수 있는 경제 관련 부문 책이었지만 꽤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적인 기업의 성공사례에 큰 영향을 준 핵심 전략이 블리츠스케일링이기 때문인 듯하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업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생한 사례와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신선한 식견을 엿볼 수 있었던 책인 것 같다.

경영에 관심을 많고 실제 경영을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인듯하다.


"미래가 강제로 주어진다고 느끼기보다는 미래를 만드는 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미래가 과거보다 나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블리츠스케일링은 희망이다. 그런 미래에 더 빠르게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과거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블리츠스케일링은 공포다. 블리츠스케일링이 기존의 질서를 더 빠르게 전복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래가 과거보다 나을 수 있고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블리츠스케일링을 하면서 불편한 것은 그런 미래에 더 빨리 이르기 위해 참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443~4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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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데스크 - 책상에 담긴 취향과 삶
박미현 지음, 문형일 사진 / 미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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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책상이 궁금합니다."


<마이 데스크>의 저자 박미현은 <여성동아>, <리빙센스>, <DEN> 등에서 일하는 라이프 스타일 전문 기자다.

지난 15년간 잡지 기자로 일하면서 건축, 인테리어, 푸드, 커리어 등 라이프 스타일에 관련된 다양한 인터뷰와 화보를 진행하면서 공간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수많은 집을 방문하면서 그 속에 녹아 있는 그 사람의 취향과 일상, 사소한 습관 등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 살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특히, 책상에 많은 관심이 쏠렸단다.

책상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기에, 숨길 것도 그리고 자랑삼아 보여 줄 것도 함께 공존하는 두 가지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사람이 하는 일은 물론 관심사, 그 사람의 취향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두 담겨 있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을 관찰하고 엿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4p)

<마이 데스크>에는 지난 15년간 잡지 기사 일을 하면서 꼭 한 번 엿보고 싶었던 15명의 크리에이터들의 책상 이야기를 담았다.

공간, 가구, 가죽, 패션 디자이너들과 해금 연주가, 뮤직비디오 감독, 요리 연구가, 향기 작가 등 하는 일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책상에 큰 애정을 품고 있고, 책상을 통해 창작과 휴식, 위안을 얻기도 한다는 그들의 책상 이야기가 궁금하다.

단순히 책상 이야기만을 담은 책은 아니라, 책상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도 이야기하고 있어, 이 책을 통해 마음속에 품고 있던 꿈을 하나씩은 실현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영감을 얻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았다.


- 공간 스타일리스트 윤지영의 질서 속에 취향을 담은 책상

- Mstyle 대표 유미영의 쉼 없이 공부하는 탐미주의자의 책상

- 푸드 &리빙 스타일리스트 김유림의 자연을 바라보는 곳 어디든 내 책상

- 뮤직비디오 감독, 시안컴퍼니 대표 최시안의 내 책상은 재밌는 일이 샘솟는 창작 아카이브

- 삼플러스 디자인 대표 김진영의 내 책상은 나를 보여주는 포트폴리오

- 아틀리에 태인, 웨딩&라이프 스타일 디렉터 양태인의 내 책상은 나를 찾는 길

- 에잇컬러스 대표 정윤재의 책상은 하루의 시작과 끝

- 옥인다실 대표 이혜진의 책상은 귀여운 일기장

- 패션 디자이너 심웅범의내 책상은 꿈의 출발선

- 제프 대표 김승준의 책상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디자인 시그널

- 코리아 CSR 대표 유명훈의 지속 가능한 가치를 담은 책상

- 굿핸드굿마인드 가구 디자이너 진선희의 책상은 나무가 자라는 숲

- 해금 연주가 천지윤의 책상은 예술로 이끌어 주는 마중물

- 향기 작가 한서형의 내 책상은 긍정의 향기

- 모야시마켓 대표 남정민의 책상은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창작 스튜디오


책상은 사용자에 따라 제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책상만 슬쩍 봐도 직업, 성향, 성격 등을 대충 맞출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우리 집의 경우 각자 방에 책상이 있지만 방 하나를 서재로 꾸며 큰 테이블을 두고 함께 사용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쭉 이렇게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도 자기 방에서 공부하거나 책 읽기보다는 서재 방으로 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항상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데 하나의 큰 책상을 함께 사용하더라도 자기 자리의 모습은 다른 편이다.

깔끔하게 정리를 하는 남편, 앞으로 옆으로 책을 쌓아두는 아이들, 항상 노트북을 펼치고 있는 나까지... 우리 집 책상의 모습은 가족이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고 두리뭉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이 데스크>에 소개된 15명의 크리에이터들의 책상이나 서재 또는 작업실(홈 오피스)들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멋진 모습을 하고 있다.

감각적이고 창조적인 일을 하는 주로 하는 크리에이터들답게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인 것 같았다.


공간 스타일리스트 윤지영 씨는 미니멀리즘과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편이라 시선을 끄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그때그때 꼭 필요한 물건만 책상에 올려놔 일의 능률을 높이고자 하기 때문에 책상이 간결하다.

그녀가 책상 위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질서란다.

그의 방식에 맞춘 대로 물건이 놓여 있으면 복잡한 생각도 사라지고, 일에 몰입도 잘 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디자이너의 문구류와 취향에 맞는 디자인 소품들을 질서정연하게 놓는 것은 영감과 집중력을 얻는 그만의 방식이다.

우리 집과 그나마 비슷했던 건 주로 이 책상을 쓰는 사람이 윤지영 씨이긴 하지만 정해진 주인이 없다는 것이다.

밀에 필요한 물거늘 모두 치우면 남편이 쓰기도 하고 아이가 쓰기도 한다.

손님이 오면 카페 테이블이 되기도 하고, 특별한 날 파티 테이블이 되기도 한다.

"요즘은 테이블에 경계가 없는 것 같아요. 주방 다이닝 테이블에서도 작업하고, 커피숍에서도 일을 하잖아요. 그런 거 보면 책상 문화가 많이 변하고 있는 거 같아요." (26p)

맘스 웨이팅 푸드 & 리빙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김유림 실장은 터전을 제주도로 옮겨 그가 꿈꾸던 집과 카페, 복합 문화 공간이 어우러진 '달링 하버'의 문을 열었다.

그녀는 요리를 만들고 레시피를 연구하는 일을 주로 하기 때문에 책상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는데 모든 공간이 다 책상이 되는 것 같단다.

베이킹을 할 때는 작업대가 책상이 되고, 요리 레시피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는 집 모양의 구조물 밑에 있는 널찍한 테이블이 책상이 된다.

큰 테이블뿐 아니라 창가 단상 위에 높에 소반도, 꽃병이 놓인 작은 테이블도 그가 앉아서 창을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은 모두 그의 책상이다.

그에게 책상이란 한자리에 고정된 가구가 아닌 사유할 수 있는 모든 곳이다.

아틀리에 태인에서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웨딩 & 이벤트를 컨설팅하는데, 특성 없이 트렌드만 따라가는 일반적인 결혼식이 아닌 클라이언트마다 가진 매력을 풀어내는 웨딩을 기획한다.

그의 공간 곳곳에는 거친 흙의 질감이 멋스러운 거대한 화분인 팔손이, 선인장 등이 푸르고 강한 생명력을 내뿜으며 자라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링을 하다 보니 다양한 작품을 가능한 한 폭넓게 접하려 노력하게 되었고, 공간에 생기와 생명력을 전하는 식물로 영역이 넓어지게 되었다 한다.

"가끔 직원들이 제 책상 위에 높인 컵을 치워 줄 때가 있어요. 그 마음은 고마운데 사양했어요, 제 책상은 제가 스스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죠, 책과 서류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어도 그 안에는 저만이 기억할 수 있는 순서가 있거든요. 일하면서 손이 자연스럽게 가도록 모든 물건이 저에 맞게 배치돼 있는데, 그게 틀어지면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고, 일이 불편해지더라고요." (130p)

굿핸드굿마인드 가구 디자이너 진선희씨는 나무 깎는 포토그래퍼 조남룡 작가와 핸드메이드 가구 브랜드 GHGM(Good Hand Good Mind : 정직한 손길과 마음으로 좋은 가구를 생산한다)를 함께 만들었다.

GHGM는 '오래 쓸수록 빛나는 가구'를 추구하는 곳으로 나무의 본질을 살려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을 선보인다.

회색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구석에 자리한 그의 책상은 벽과 천장의 큰 찬문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을 듬뿍 받아 평화롭고 따뜻하다.

책상은 물론 의자, 서랍장 등 책상 주변의 모든 가구가 은은한 나무의 숨결이 살아 있는 원목으로 만들어져 눈과 마음이 편안하다.

"일부러 해가 제일 잘 드는 곳에 책상을 놓았어요.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풍부해 일반 형광등보다 원목 샘플 블록을 보면 색감을 조합해 보기 좋죠. 그래서인지 색감 있는 특수 목들을 활용한 디자인 작업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258p)

"나무로 만든 가구나 소품은 와인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 있는 매력을 발산하죠. 지나치게 장식을 더하는 것보다는 나무 본연의 느낌을 살려 일상 속 편안히 자리하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나무마다 특유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이를 잘 표현해 내는 데 집중해요."(2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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