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그리워졌다 - 인생이 허기질 때 나를 지켜주는 음식
김용희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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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신의 공여(供與)다. 어떤 생명체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나의 생명이 누군가의 생명에 빚진 대가라고 생각하면 음식 앞에서 장엄한 슬픔을 느낀다. 먹고산다는 것이 참 신산스럽기만 하다. 성스럽기만 하다.당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싶으면 지금까지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하라. 그것이 당신의 인생이다. (9p)


<밥이 그리워졌다>에는 저자 김용희가 '이번 생에서 기억할 만한 음식 50가지'를 선정하고 그 음식에 담긴 추억을 소환한 음식 에세이다.

저자는 50가지의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그 음식을 소재로 한 시, 소설, 영화, 노래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칼국수에서는 김애란의 소설 <칼국수>, 달걀말이에서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전복죽에서는 서정주의 시 <시론>, 삼겹살에서는 손해성 감독의 영화 <고령화 가족>, 고등어구이에서는 김창완의 노래 <어머니와 고등어>, 상추쌈에서는 천명관의 소설 <고령화 가족>, 잔멸치덮밥에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닭백숙에서는 김운영의 시 <눈발이 날리는 마당>, 카레라이스에서는 노라조의 노래 <카레>, 빵에서는 미시다 유키코 감독의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조개탕에서는 한재림 감독의 영화 <연애의 목적>, 팝콘에서는 박광현 감독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막걸리에서는 윤종신의 앨범 <행보>에 수록된 노래 <막걸리나>, 커피에서는 김용희의 소설 <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 양푼비빔밥에서는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떡볶이에서는 영화 <너의 결혼식>, 스테이크에서는 김애란의 소설 <성탄 특선>, 김치찌개에서는 은야쟁이와 징징돌이의 웹툰 <158동 진상 부부 :참치김치찌개>, 꼬막무침에서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선지해장국에서는 허수경의 시 <폐병쟁이 내 사내>, 라면에서는 악동뮤지션의 노래 <라면인건가>, 치킨에서는 이병헌 감독의 영화 <극한직업>, 햄버거에서는 장정일의 시 <햄버거에 대한 명상>, 회전초밥에서는 들개이빨의 웹툰 <먹는 존재 : 회전초밥>, 쌀밥에서는 고전소설 <춘향전>, 전에서는 한목남의 노래 <빈대떡 신사>, 냉면에서는 유종빈 감독의 영화 <공작>, 헛제삿밥에서는 박현수의 시 <헛제삿밥>, 동파육에서는 소동파의 시 <식저육시>, 김밥에서는 가수 자두의 <김밥>, 양배추샌드위치에서는 임순례 감독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가자미미역국에서는 백석 시인의 시 <선우사>, 와인에서는 아기 다다시의 만화 <신의 물방울>, 짜장면에서는 이해준 감독의 영화 <김 씨 표류기>, 만두에서는 자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 팥빙수에서의 윤종신의 앨범 <그늘>에 수록된 <팥빙수>, 차에서는 정지용의 시 <인동차>, 초콜릿에서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김치볶음밥에서는 변진섭의 노래 <희망사항>, 생일케이크에서는 이장훈 감독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설렁탕에서는 함민복의 산문 <눈물은 왜 짠가>와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 육개장에서는 허영만의 만화 <식객 3 : 소고기 전쟁>, 풀빵에서는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메밀묵에서는 박목월의 시 <적막한 식욕>, 간장게장에서는 안도현의 시 <스며든다는 것>, 돈가스에서는 오무라이스 잼잼의 웹툰 <내 생애 최후의 돈가스>, 수박에서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김치에서는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콩국수에서는 영국의 동화 <잭과 콩나무>, 사과에서는 길상호의 시 <향기로운 배꼽> 등이 나온다.

50가지의 음식과 음식에 관련된 이야기, 노래, 영화에 대한 텍스트에 작가의 추억을 더해 풀어내고 있는 음식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음식과 관련된 작품들에 관한 짧은 소개 글만으로도 보고 싶고 읽고 싶은 작품들이 제법 되는 것 같다.


단 한 그릇의 국수를 먹을 때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먹는 행위가 있으면 먹이는 행위가 있다는 것을.

내가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사이 누군가 썰고, 가르고, 다지고 있다는 것을. 졸이고, 찌고, 차리고 있다는 것을.


칼국수에는 칼의 기억이 숨겨져 있다. 칼국수 한 가락 한 가락 썰어나가는 마디마디 칼날의 섬세함과 우직함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엄마는 칼을 든 무사였다. 세상의 헐벗음 속에서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칼을 든 무사.

<칼국수 - 김애란 작, 17~20p>


칼국수 하면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번화한 도심 속에 자리한 고등학교라 조금만 걸음을 재촉하면 큰 먹자골목을 나왔고 그곳에는 지금까지도 맛집으로 유명세를 떨리고 있는 추억의 칼국숫집이 있다.

주머니 가벼운 여고생들에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하고 가격도 착한 가성비 좋은 맛집이었다.

칼3, 비칼2, 냉칼1....

칼을 파는 철물점도 아닌데 주문받은 수많은 칼들이 주방으로 전달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거리를 지나다 맛있게 우려진 육수 내음만으로도 그때 그 시절로 추억 소환해 버리는 음식이 칼국수다.


팝콘 하면 영화관이었는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후로 '팝콘+영화+웰컴 투 동막골'이 함께 떠오른다.

옥수수 창고에 실수로 수류탄이 떨어지고 옥수수가 하늘로 치솟으며 새하얀 눈처럼 팝콘이 내리는 장면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밥을 든든히 먹고 영화관으로 들어가도 한 통씩은 끼고 영화를 봐야 하니 엄청난 칼로리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싶지만, 팝콘은 항상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과 함께 기억되는 마법 같은 간식이다.

한국의 전통 술인 막걸리.

대학시절 가벼운 주머니 사정으로 번듯한 안주가 없어도 배부르게 마실 수 있었던 술이었다.

맥주, 소주, 와인 등에 밀려 여느 술자리에서 막걸리를 찾지는 않지만, 그래도 등산 후에는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이 최고 별미고, 비 오는 날 부침개 굽는다면 퇴근하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는 막걸리 한 병이 들려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초반 한때 사재기 바람이 살짝 불었던 적이 있었는데 비상식량으로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은 단연코 라면이었다.

한때 라면은 배고픈 청춘들의 소울 푸드로 화자 되기도 했지만, 이젠 외국 여행 갈 때 필수품이 되었고, 스위스 융프라우산 꼭대기에서도 먹는 간식이 되었으며, 칸과 오스카를 뜨겁게 달군 채끝살 짜파구리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꿔가면 새로운 맛을 선사하는 건 결코 실패란 있을 수가 없는 마법의 스프가 있기 때문이며, 밥까지 말아먹을 수 있는 든든함을 선사하는 가성비 최고의 음식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라면 없는 삶이라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의 끝판왕이었던 짜장면... 아니 간짜장.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에는 화교가 운영하는 제법 그럴싸한 중국집이 있었다.

주문을 하면 쏼라~쏼라~ 자기들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큰 원형으로 된 식탁 중앙에는 작은 원형으로 된 테이블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짜장 양념이 따로 나오는 간짜장과 투명한 소스의 탕수육, 육즙이 가득했던 만두는 지금 생각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 같다.

오랜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였지만 학생 수가 급격히 줄어 인근 학교와 통합되면서 학교는 사라져 버렸지만 지금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 중국집은 유명한 한국 영화에도 나오는 핫한 가계가 되었다.

추억 속의 일부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음식은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음식들,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 결정적인 순간, 슬펐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에 함께 안 음식들, 냄새만으로도 기억되는 음식, 소리만으로도 기억되는 음식, 장소만으로도 기억되는 음식 등 수많은 음식들이 함께 곁에 있어 주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나를 지켜주는 음식'이라는 부제처럼 음식은 단순히 생명유지를 위한 영양소 물질 이상의 정신적인 무언가를 제공해 주는 것 같아 책을 읽으며 행복한 추억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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