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 쪽팔린 게 죽기보다 싫은 어느 응급실 레지던트의 삐딱한 생존 설명서
곽경훈 지음 / 원더박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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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는 의학드라마 중 하나가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다.

그동안 수많은 의학 드라마들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지만 '슬기로운 의사 생활'은 악역 없는 드라마에 깊은 울림까지 주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 5인방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지극히 사람 중심적인 마인드를 가진 의사들이기 때문이다.

매회를 거듭할수록 사명감 있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수많은 명대사들을 남기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수술 전 "소중한 생명 꼭 살립시다"라고 말하던 모습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말에 담긴 소신과 공감의 메시지는 뭉클함을 전해주었으며 "익숙해 질게 따로 있지"라고 말하며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대사에서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이런 의사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행운일까를 생각하며 <응급 의학과 곽경훈입니다>를 읽었다가, '그래, 우리 현실에는 이런 의사들이 참 많지'라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저자가 지방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레지던트로 4년 동안 있는 동안의 일을 솔직하게 회고하는 글로 거의 내부고발 수준에 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능하고 욕심만 많은 응급의학과 과장의 무사안일한 일처리들이 얼마나 무책임한 결과들을 낳는지를 이야기한다.

타과 전공의(임상과 레지던트)라고 다를 것도 없다.

위중한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해 각 임상과 레지던트를 부르면 서로 자기들 과에 해당하는 환자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다가 '의료사고'라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막을 수 있는 사망'이 발생한 일들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보니 의사의 무능과 무지함으로 인한 오진으로 가족이 병원에서 안 해도 될 고생을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갑작스럽게 고열에 설사를 해 급하게 응급실로 갔더니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장티푸스를 운운하던 응급실 의사, 급체한 3살 아이를 폐렴이라고 진단하고 입원시켜 항생제를 계속 투약해 시름시름 앓게 만들었던 의사, 기흉 수술은 시술에 가까운 간단한 수술이라고 호언장담하더니 수술이 잘못된 건지 큰 병원으로 후송되어 재수술 받고 결국은 보건실에서 수능 시험을 치게 만들었던 의사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찰 노릇이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니 그냥 이야기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책 속에 소개된 이야기 속 가족들은 그들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할까 싶다.

책 속에 소개된 의사들이 정말 소수이기를 바라본다.

 

 

어느 의대 교수가 한 말이 기억난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사람으로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환자와 잘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성찰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과 소통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은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전 세계가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전 세계로부터 감염증 확산 방지와 방역, 진단과 치료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우수 사례로 대한민국이 거론되고 있으며, 덕분에 국가의 위상도 드높아진 상황이다.

그 속에는 의료진으로서의 사명감을 저버리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와 의술을 펼쳐준 많은 의료진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 이와 같은 의료진이 많다는 것이 더없이 자랑스럽고 감사할 따름이다.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에 소개된 그런 의사들만 있다면 아파도 두려워서 병원을 찾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진정한 의술을 펼치는 사람들이 더 많으리란 믿음을 가져본다.

 

 

신속하고 정확한 진단은 치료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니까 완쾌한 환자 대부분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단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159p)

 

심장내과 담당 3년 차 레지던트와 전임의, 호흡기 내과 담당 3년 차 레지던트, 류머티즘내과 담당 3년 차 레지던트, 신경과 2년 차 레지던트의 결론은 동일했다. 무례함과 짜증의 정도만 달았을 뿐 '우리 임상과 문제가 아닙니다.'라는 것에는 차이가 없었다. 인공호흡기가 달려 있고 흡인성 폐렴이 있으며 심전도와 심장 효소 수치에 이상이 있고 승압제를 지속적으로 투여해야 겨우 혈압이 유지되는 환자에게 1000병상에 가까운 대형 대형 병원에서 모든 임상과가 '우리는 해줄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기괴한 상황이 펼쳐졌다. (79p)

 

레지던트 시절 내내 응급실에서 '좀처럼 믿기 힘들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을 겪었다. 법적으로 '의료사고'라고 규정할 수는 없더라도 '막을 수 있는 사망'이었던 경우들이다. 응급실은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 여부를 감별하고 치료하는 곳'이다. 따라서 응급실 진료에는 엄청나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특별한 의학 기술보다는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도 차근차근 조그마한 기분도 놓치지 않고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 환자에 대한 책임감, 고정 관념에서 자유로운 판단이 중요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레지던트에 불과한 주인공이 다른 의료진이 찾지 못한 해법을 찾아내는 것은 그가 특별히 뛰어난 의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의과대학 정규 교육을 이수하고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식과 기술의 부족이 아닌, 고정 관면, 무사안일주의, 나태한 태도 때문에 '좀처럼 믿디 힘들고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이 반복되었다. (324~3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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