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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 가족
김상하 지음 / 창해 / 2020년 4월
평점 :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족은 우리의 혈육이고 제일 가까운 사이로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구성요소이고, 기본적인 삶의 안식처다.
가족은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멍에나 짐이 되기도 한다.
가족만큼이나 서로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그리워하면서도 서운해하고, 미안해하는 그런 존재는 없을 것이다.
삶이 팍팍하고 지금 당장이 고달프다 보면 가장 먼저 소홀해지는 것이 가족이지만, 기쁘고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 있어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 또한 가족이다.
가족이란 우리가 언제든지 찾아가 머무를 수 있는 편안한 울타리가 되어주고,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것에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5월을 시작하며 읽어본 <울랄라 가족>은 어렵고 힘들 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진정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묻는 이야기라 하겠다.
낙원연립은 골목 끝에 있었다. 회색의 낡은 건물은 땅에 주저앉아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는 늙은 코끼리 같았다. 사십 년이 넘은 데다 허술한 지반공사 탓으로 바닥 곳곳에 부동침하가 나타났고, 옥상도 원형탈모처럼 거죽이 듬성듬성 벗겨졌다. 땜질하듯이 이루어지는 콜타르 방수작업은 연례행사였다. 금이 간 창문을 삼 년 넘도록 교체하지 않고 청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집도 있었다. 좁아터진 주차장은 크레도스, 투스카니, 엘란트라, 소나타Ⅱ 같은 단종된 차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집과 승용차는 운신과 떼어놓을 수 없는데 낙원연립의 주민들은 아직도 IMF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듯싶었다. (11p)
아버지 박인국은 심부름센터를 운영하면서 경마에 승부를 걸며 산다.
나라에 어진 사람이 돼란 뜻으로 지은 이름과는 달리 사는 게 무개념의 세계 챔피언이며, 어떤 때는 돈 오만 원에 청부살인도 할 판이다.
오직 돈만 밝히다 보니 괴물이 되고, 돈에 무모하게 전부를 거니까 이상해진다.
장남 박정도는 현재 택시 기사다.
택배, 피시방 알바, 대형마트 배달원, 중국집 주방보조, 편의점 알바까지 아홉 번이나 직업을 바꾸며, 바른길을 찾지 못하고 아직도 헤매는 중이며, 개념 같은 것 없이 하루하루, 순간순간, 되는 대로 산다.
딸 박정아는 베이커리에서 알바를 한다.
웬만한 여배우보다 훨씬 섹시하고, '구운몽'의 팔선녀가 한꺼번에 온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일당백의 섹시 걸이다.
막내 박정각은 중 2학생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요양병원에 누워있는 엄마로 인해 늘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밥정이라는 게 식탁 위에서 생기는 건데 다 제각각이네. 참 민주적이다."
"꼭 같은 걸 먹으란 법 있나?"
"이건 아니지. 가족이 뭔데?"
"어떤 작자가 멀쩡한 아파트를 팔아먹은 뒤엔 우리한테 가족 같은 건 없어. 산산조각 났어."
"넌 돈이 있어야만 가족이 되는 거냐?"
"돈 때문이 아냐."
"그럼?"
"우리 모두를 구렁텅이에 빠뜨렸잖아."
"살다 보면 살던 동네에서 이사할 수도 있고, 대출도 받을 수 있는 거야. 다 그렇게 살아."
"이사한 게 나이라 쫓겨난 가지. 그 돈으로 뭘 했더라. 그걸로 뭘 했냐고? 그 아파트가 어떤 집인데. 내 어린 날들이 다 거기 들어 있는데 그게 싹 없어졌어. 친구나 추억 같은 거 하나도 없어. 아, 그 기억은 남아 있다. 오토바이 타고 빚 받으러 왔던 그 조폭 새끼"
(68~69p)
그러던 어느 날 보험사로부터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의 존엄사에 동의할 경우 3억 원을 일시불로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된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이런 문제는 감정보단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돼. 뭐가 엄마를 위한고 우릴 위하는 건지."
"생각할 게 뭐 있어. 사람 목숨이 달린 건데."
"그런 노라고 전할게요."
"너 그게 문제야. 어떻게 즉흥적으로만 판단하니? 감각으로만 판단하면 그게 동물이지 사람이냐? 생각 좀 하면서 살라고 그렇게 얘길 해도, 소귀에 경 읽기야."
"어쩌라구요?"
"정아 말대로 현실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근데 이 억이 확실한 거냐?"
"우리 내일, 병원에 가보자. 정확히 알아야 결정을 내리든 말든 할 거 아냐. 엄마 상태도 볼 겸 해서 직접 가보자."
"푸우, 답답하다."
"니 엄마 말이야. 정신 차리고 깨어나든가 아니면."
"다 꼴 보기 싫어. 정말 다 싫다고."
"가족은 끝까지 곁을 지켜줘야 하는 거잖아."
(102~103p)
가족의 눈빛은 다 제각각이었다.
아버지 인국은 현대의학으로는 회복 불가능한 게 현실이고 보면 존엄사를 무조건 반대할 순 없다고 생각하며 그 돈으로 뭔가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었고, 딸 정아도 엄마한테는 미안하지만 존엄사를 이미 반쯤 받아들이고, 엄마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작은 베이커리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장남 정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열패감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막내 정각만이 엄마의 존엄사에 반대했다.
존엄사 동의 문제로 온 가족의 머리가 어수선하기만 한데 엄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을 다녀오던 길에 출처를 알 수 없는 돈 10억 원을 줍게 된다.
"이게 조폭 돈이라면 우린 쥐도 새도 모르게 싹 가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돈 가방을 당장 제자리에 다시 갖다 놓자. 괜히 목숨 걸지 말자."
"꼭 그래야 해?"
"우연이라는 게 불행과 한 세트로 찾아오거든. 피할 수 있는 건 피하자."
"정말 그 방법밖에 없는 거야?"
"이런 결단은 빠를수록 좋아. 빨리 서두르자."
(137p)
"돈 촉감이 참 좋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만 쏙 빼놓고 둘이 나눠 갖겠다?"
"그게 아니라 위험한 돈일 수 있겠다 싶어서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제없는 게 확실해지면 그때 얘기하려고 했지. 아는 사람이 많으면 비밀 유지하는 거 어려워."
"나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거든."
(160p)
콩가루였던 집안에 갑자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편의점에서 사온 삼각김밥과 라면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던 난장판이던 식탁과는 달리 몇 달 만에 제대로 된 아침밥을 먹으며 아주 흡족해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해 장롱 속에 돈을 넣고 긴 각목으로 가로세로 엮어 대못을 박고 CCTV까지 설치했다.
아빠는 딸을, 딸은 아빠를 믿지 못했고, 장남인 정도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마음이 갈팡질팡했고, 막내 정각은 가방이 무슨 정체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엄마의 존엄사를 막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두가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식탁 위에서 이루어지는 정상적인 대화였다. 변화는 식탁에서 끝나지 않았다. 인국은 마음이 풍족했고, 정아는 덕환과 함께할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정도는 달콤한 연애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모든 게 돈 가방 때문이었다. 인국은 심부름센터로 출근하기 전에 장롱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절을 올렸다. 정아도 마찬가지였다. 절을 올리진 않았지만 흐뭇한 표정으로 장롱을 양팔로 안았다가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정도는 주먹으로 툭툭 쳐보다가 장롱에 귀를 대고 한참 있었다. 돈 가방에 대한 용도는 다 제각각이었지만 적어도 가족관계를 회복하는데 기여한 건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한테 욕망이 있고, 욕망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만들어낸다.
(178p)
'울랄라 가족'들은 과연 3억이라는 보험금을 받고자 결정하게 될지, 뜻하지 않게 손에 들어온 거액의 돈의 행방은 어떻게 될 것이지, 김상하 작가만의 특유의 소설 작법으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웃픈(웃기면서고 슬픈) 현실 속에서 울랄라 가족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와 그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