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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 법정 스님 법문집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엮음 / 시공사 / 2020년 5월
평점 :
법정 스님의 법문집인 <좋은 말씀>에는 스님의 열반 10주기를 추모하며 미출간된 법문 31편을 수록하고 있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법회와 대중 강연을 통해 스님이 전해주셨던 큰 울림의 메시지를 담은 법문들이다.
법정 스님은 대학을 다니던 중 출가를 결심하고 당대의 고승 효봉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고, 치열한 수행을 거치며 교단 안팎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셨다.
그러나 홀연히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수행하시며 글을 쓰시고, 구도자이며 사회운동가, 환경운동가로 활동하신 이 시대의 스승이었고 우리 시대의 마지막 큰 어른이었다.
‘생전에 밥값은 하고 가야겠기에 이 일 한 가지만은 꼭 하고 싶다.’는 스스로의 뜻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했던 스님은 개인의 청정함(맑음)이 사회적 메아리(향기로움)로 확산되기를 바라며 1994년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하셨다.
<좋은 말씀>에 담긴 법문들의 핵심은 '나눔'과 '맑은 가난'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스님이 전 생애에 걸쳐 견지하셨던 삶의 질서이기도 하다.
"받는 쪽보다 주는 쪽이 더 충만해지는 것, 이것이 나눔의 비밀입니다."
책에는 너무나 좋은 말씀이 많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읽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책장 사이사이마다 인덱스를 붙이고, 읽고 생각하고 다시 되돌아가 또 읽어본다.
힘들다고 속상하다고 투정 부리던 번잡한 마음도 알고 보면 내 마음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데 남 탓하기에 급급했던 건 아닌지 점점 부끄러워지는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몇 년 전 윗집에 새로운 사람들이 이사 온 후로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처음 이사 오고 며칠 뒤 거실 천정을 쿵쿵 내리찍는 소리가 10여 분 이상 지속되길래 참다 참다 뛰어올라가 벨을 눌렀다.
밑에 집에서 왔다고 말하면 거실에서 무얼 하시길래 그렇게 쿵쿵거리냐고 물으니 마늘을 절구에 넣고 빻고 있었단다.
허리가 아파서 서서 하기 힘들어 바닥에 두고 빻고 있었는데 그게 밑에 집까지 울렸냐고 되묻는 모습에 입을 다 물고 말았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몇 년 간 윗집의 쿵쾅쿵광거림과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소리, 뭐든 쿵쿵 함부로 바닥에 놓아버리는 소리 등으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몇 번이나 당부의 말씀을 드려도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고 자기들이 층간 소음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화가 치밀고 분노가 쌓이자 나도 똑같이 해주겠다는 악이 생겨났다.
어깨 운동을 위해 장만한 긴 장대를 이용해 윗집에서 쿵쾅거릴 때마다 나도 함께 장대를 천장에 쿵쿵쿵 찍었다.
그러면 잠시 조용해지는 것 같다가도 이내 곧 쿵쿵쿵 거린다.
아이도 아니고 이미 중장년에 들어선 분들이 저러시니 평생 몸에 밴 습관이 고쳐지지도 않을뿐더러 이웃 간의 매너이자 배려라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윗집이 쿵쿵 거리면 나도 쿵쿵 찍고, 며칠을 이러다 보니 내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화가 잔뜩 나 윗집으로 긴 장대를 쿵쿵 찍을 때면 내 심장이 쿵쿵 찍히는 듯 두근거림이 느껴졌고, 몸은 화로 인한 열기가 솟구쳐 뜨거워졌다.
윗집은 여전히 쿵쿵거릴 뿐이고, 내 마음은 분노와 화로 열이 올라 부글부글 끓고 있을 뿐이었다.
해결되는 건 없었다.
그러다 책에서 <법구경>에 나온 영혼을 맑히고 아름답게 가꾸는 방법에 관한 부처님의 말씀을 읽었다.
온화한 마음으로 성냄을 이겨라.
착한 일로써 악을 이겨라.
베푸는 일로써 인색함을 이겨라.
진실로써 거짓을 이겨라.
화내 보았자 나한테 득 될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화를 이길 수 있는가? 온화한 마음이에요. 화는 화로써 이길 수 없습니다.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죠. 악을 어떻게 이깁니까? 악을 새로운 악으로 이깁니까? 안됩니다. 그러면 더 큰 악이 자꾸 불어나요. 악은 선으로써 이기는 겁니다. 착한 일로 이기는 거예요.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분해하지 마세요. 시간이 지나면 다 해소가 됩니다. 적어도 겉은 상처를 입더라도 속까지 입지는 마세요. 그건 큰 손해예요. (39p)
휴정이라고 불리는 서산 대사의 <선가귀감>이라는 법어집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한 생각 울컥 성을 낼 때 백 가지 재앙의 문이 열린다.' 분명히 그래요. 우리가 화를 낼 때 앞이 새카매지잖아요. 물불을 가리지 않아요. 그것은 내 마음이 아닙니다. 분노라는 것, 증오라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에요. 그건 빨리 비워 버려야 돼요. 그게 오래가면 오래갈수록 내 삶 전체에 해를 끼칩니다. (76p)
사람이 지니고 있는 최고의 덕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의 덕은 지혜에서 나오지 지식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유식해지기 위해 절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이 알 필요 없습니다. 몰라도 돼요. 바르게 살 수 있으면 됩니다. 자기답게 살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 (47p)
하나가 필요할 때 둘을 가지려고 하지 마세요.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어버립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알면 비록 가진 것은 없더라도 부자나 다름없습니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제 자신이 몹시 부끄럽고 가난하게 느끼는 건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 앞에 섰을 때가 아닙니다. 나보다 훨씬 적게 가졌지만 그 단순함과 간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 앞에 섰을 때입니다. (110p)
나눔으로써 맑은 기쁨을 얻으려 하고 만족할 줄 알며, 소유는 꼭 필요한 것으로 스스로 제한하려는 그 마음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런 태도는 결코 소극적인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111p)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삶을 거듭거듭 개선하고 심화시켜 가는 명상이고, 또 하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지혜의 길이요, 후자는 자비의 길입니다. 이 두 길을 통해 우리는 본래부터 지녔던 불성과 영성의 씨앗을 틔울 수 있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지닌 그 귀한 불성의 씨앗으로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길 거듭 다짐합시다. (112p)
행복이란 그런 거예요. 넘치면 고마운 줄 몰라요. 넘치는 것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이 그런 뜻이에요. 조금 모자란 데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게 됩니다. 남보다 적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죽지 않고 생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부자예요. (116p)
남을 도우면 도움을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다 같이 충만해집니다. 받는 쪽보다는 주는 쪽이 더욱 충만해집니다.
이것이 나눔의 비밀입니다. (203p)
지나간 과거사는 흘러가 버린 물과 같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또 지나간 과거를 두고 후회하지도 말아야 됩니다. 자책하지 말고, 원망하지도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전생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때문에 현재가 소멸돼요.
'시간의 발걸음은 세 겹이다. 미래는 망설이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빨리 날아가고, 과거는 지켜 서 있다.'
미래는 불안하기 때문에 주저주저하면서 다가와요. 현재는 화살처럼 빨리 날아갑니다. 과거는 영원히 지켜 서 있습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265~266p)
하루에도 열두 변덕을 부리는 번잡한 마음을 차분히 다잡고 다스려주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보통 눈으로 책을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비록 법정 스님의 단아한 목소리는 아니지만 법문을 들는다는 마음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니 또 다른 울림이 있는 것도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존재 전체를 기울여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다음 순간 더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어요.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마음을 나누면 서로의 마음이 맑아져 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우게 됩니다." (109p)
스님처럼 큰마음과 큰 뜻을 품으며 살진 못하더라도 한순간 한순간을 그냥 허투루 살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며 또 조금씩 시들어 버리지도 모르는 마음이지만, 우리가 모두 가지고 있다는 불성과 영성의 씨앗을 틔워낼 수 있도록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살고자 노력해야겠다.
<좋은 말씀>을 항상 가까이에 두고 읽는다면 깨우침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