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 - 탱고, 나를 기다려준 사랑과 인생의 춤
보배 지음 / 멜라이트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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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심장이 함께 춤을 출 때 - 탱고, 나를 기다려준 사랑과 인생의 춤> 보배, 멜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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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네온 특유의 쓸쓸한 음색과 긴장감 넘치는 리듬 때문에, 나는 음악으로서의 탱고를 꽤 오래도록 좋아해 왔다. 심지어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예전에 팟캐스트 주제로 다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춤으로서의 탱고는 영화 속 화려하고 관능적인 동작 몇 장면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배 작가의 탱고 에세이인 이 책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취미로 탱고를 시작했다가 탱고에 진심이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라니! 역시 무언가에 열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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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탱고를 처음으로 접한 곳은 방콕이었다. 낯선 타지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려 우연히 접한 탱고는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일상의 중심부로 들어오게 된다. 수업을 듣고, 밀롱가를 찾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조금씩 깊어지는 과정이 책 속에서 차분히 이어진다. 어느 날 갑자기 삶이 극적으로 바뀌는 이야기보다,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하루 일정을 조율하고, 여행지에서도 춤출 곳을 찾는 식의 현실적인 일상이 재배치되는 과정이 책 속에 담겨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좋아하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만으로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된다는 이야기도 저자의 솔직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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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해 만난 탱고는 지극히 섬세하고 예민한 ‘관계의 춤’이었다. 상대를 가만히 안고 걷는 '아브라소', 몸의 미세한 근육 신호와 체중의 이동을 읽어내는 호흡, 서로의 균형을 감지하며 공간을 내어주는 배려. 혼자 아무리 화려한 테크닉을 뽐낸다 한들, 상대와의 교감이 어긋나면 온전한 탱고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눈빛으로 조심스레 춤을 청하는 '까베세오'부터 서너 곡을 한 파트너와 온전히 나누는 '딴다', 밤새 춤의 열기로 가득 차는 '밀롱가'의 문화를 통해 탱고라는 춤에 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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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결혼과 임신, 출산으로 이어지는 개인적인 서사가 길어지는 대목에서는 살짝 집중력이 조금 흐려졌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춤이 어우러진 흥미로운 이야기였겠지만, 아직 미혼 남성 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 깊이 공감하기 어려웠고 솔직히 큰 흥미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순수하게 탱고라는 춤에 푹 빠진 사람의 이야기와 그 세계를 조금 더 길게 듣고 싶었던 아쉬움은 살짝 남는다. 책 말미에 실린 인터뷰집 역시 크게 와닿지 않고 다소 겉도는 느낌이어서, 차라리 저자 본인의 춤 이야기와 밀롱가에서의 경험에 끝까지 더 집중했더라면 훨씬 몰입해서 읽었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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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니, 춤으로서의 탱고가 더욱 궁금해졌다. 조금 과장 보태어 이야기하자면 이제 반도네온의 선율을 들을 때면, 음표 뒤에서 서로의 가슴을 맞대고 조심스럽게 다음 발을 내딛는 두 사람의 따스한 온기와 발소리와 실루엣이 아른 거릴지도 모르겠다. 한 사람이 무언가를 오래도록 깊이 사랑하며 변화해 가는 궤적을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다. 귀로만 듣던 탱고를 언젠가 직접 몸으로 한 번쯤 익혀 싶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꽤 근사하고 다정한 한 '딴다'를 선물해 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 이 책은 멜라이트(@mellite_pub)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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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심장이함께출을출때 #보배 #멜라이트 #탱고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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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라진 세상 - 인공지능은 인간의 쓸모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이진우 지음 / 다산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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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라진 세상 - 인공지능은 인간의 쓸모를 어떻게 위협하는가> 이진우, 다산북스


🪪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붙잡고 있던 작업을 인공지능이 단 몇 수십분 만에 매끄럽게 처리해 낼 때, 안도감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기묘한 허무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동안 공들여 습득하고 연마해 온 지식과 기술이 생각보다 대단치 않았던 것일까 싶기도 하고 이 속도라면 머지않아 인간에게 남겨질 고유한 몫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불안해지기도 한다. 이진우 교수의 『일이 사라진 세상』은 단순히 "어떤 직업이 살아남고 어떤 역량을 길러야 하는가"를 논하는 흔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아니다. 저자는 앞으로 인류가 맞이하게 될 훨씬 더 난감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지는 듯 했다. 

"만약 일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와 필요성을 증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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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는 일을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일에 투영하며 살아가게 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월급뿐 아니라 자존감과 성취감, 사회적 관계망, 심지어 생체 리듬까지 모두 직업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최적화되어 있다. 처음 만난 타인에게 자연스레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고, 명함 한 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데 익숙하다. 이 책이 경고하는 AI 시대의 진짜 위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기술이 앗아가는 것이 단순히 고된 노동시간뿐이라면 축복이겠지만, 우리가 노동에 덧붙여놓았던 자아의 정체성과 사회적 존재 이유마저 통째로 대체해버리거나 삼켜버린다면 개개인의 삶은 순식간에 방향을 잃고 말 것이라는 통찰이다.


🪪

일하지 않아도 생계가 유지되고 하루 대부분을 자유 시간으로 누릴 수 있다면 인간은 마냥 행복해지기만 할까? 책은 한나 아렌트와 니체 등 철학자들의 사유를 빌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곧장 진정한 자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역설을 짚어낸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사유해야 할지 훈련되지 않은 인간에게 넘쳐나는 시간은 축복이 아닌 또 다른 공허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창작이나 사유, 연대와 배움으로 시간을 채우기보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도파민성 숏폼 영상과 끊임없는 소비 속으로 우리의 삶은 무기력하게 침전되기 십상이다. 단 몇 분의 무료함조차 견디지 못해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뒤적이는 현대인의 모습은 이미 그 디스토피아가 멀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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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던지는 '쓸모'에 대한 질문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AI가 인간의 쓸모를 위협한다는 공포의 기저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오직 생산성과 유용성으로만 입증해야 한다는 자본주의적 믿음이 단단히 박혀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벗어나야 할 대상은 육체적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언제나 쓸모 있는 존재여야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강박 관념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보다 일을 월등히 잘해내지 못해도, 사회가 요구하는 생산성을 갖추지 못해도 한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온전히 존중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이 사라진 세계는 인간의 가치가 붕괴하는 종말의 시대가 아니라, 노동 바깥에서 인간의 가치를 새롭게 재정의해야 하는 거대한 전환기가 될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

앞으로 AI가 어디까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할지는 아무도 단언할 수 없다.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또 다른 형태의 낯선 일이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미래에 진정으로 요구되는 존재는 AI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인간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순간에도 온전히 자신을 설명해 낼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누구와 관계를 맺으며, 늘어난 시간의 여백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지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다 읽고 나니, '쓸모'라는 거추장스러운 기준을 모두 걷어낸 뒤 내 안에 오롯이 남는 진짜 '나'를 발견하게 만드는 묵직한 철학적 담론이 담긴 무척 훌륭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은 다산북스(@dasanbooks)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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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사라진세상 #이진우 #다산북스 #독서모임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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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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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대연쇄> 단요, 사계절



☎️

단요 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늘 묘한 혼란에 빠지곤 한다. 지금 내가 잘 짜인 서사를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한 작가의 머릿속에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정교하게 돌아가는 거대한 지적 사고실험을 몰래 훔쳐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도 거대하고 이야기의 복잡성도 엄청나다. 단요 작가의 소설집 『존재의 대연쇄』는 그 과감한 실험이 꽤나 멀리까지 뻗어나간 결과물이 아닌가 한다. 로마사와 고대 신화에서 출발해 생물의 감각과 진화, 인공지능, 그리고 신학과 컴퓨터공학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책이라니... 수록된 여섯 편의 이야기는 소재와 질감이 저마다 판이하지만, 결국 다음과 질문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되게 하며, 신은 누구에게나 신일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구원은 정말로 우리를 구할 수 있는가?"


🦒

가장 매력적인 작품은 단연 「사랑하는 신의 생일」이었다. 오래된 유선전화기로 2천 년 전의 로마의 폭군 칼리굴라와 통화한다는 기발한 시간여행 설정이다. 심지어 그것을 통해 이 작품은 관계의 본질을 짚어내려 시도한다. 미래를 아는 현대인의 목소리가 고대의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신의 음성이 되고 반대로 폭군인 자신을 오롯이 믿어주는 한 존재를 통해 비로소 세계와 연결된다. 누군가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으로 사랑을 정의하는 결말은, 거대한 역사와 구원의 담론 속에서도 결국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미치는 파동으로 돌아와 긴 여운을 남긴다. 사자와 기린의 우화로 낮과 밤, 계절의 기원을 빚어낸 「세상의 이름은 기린」 역시 오래된 신화의 숨결 속에 상실과 분노, 이해와 용서의 간극을 밀어 넣으며 독특한 서정성을 뿜어내는 작품이었다.


🫧

이 소설집 속 작품들은 인간이 품어온 환상을 과감하게 해체하기도 한다. 「어떤 구원도 충분하지 않다」에서는 고대의 마술사와 예언자를 온도를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던 돌연변이라는 과학적 가설로 재해석한다. 한때 기적이라 숭배받던 능력이 기술의 진보로 평범한 일상이 되었을 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허무에 불과하다. 기적의 메커니즘을 밝혀냈다고 해서 삶에 내재된 고통까지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인 것일지도... 「빛 속에」에서는 끝없는 수술을 견뎌야 하는 인간 아이와, 명령에 지쳐 스스로 소멸을 택하려는 인공지능을 나란히 배치한다. 목숨을 살려두고자 하는 선택이 언제나 선한 것인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고통을 대신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를 묻는 이 작품은 기술의 미래보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를 대하는 윤리적 태도에 집중해 단단한 질문을 던진다.


🕹️

반면 표제작 「존재의 대연쇄」와 부록 성격의 「격자 공간 제어 지침서」는 독서의 즐거움과 지적 피로가 팽팽하게 맞서는 지점이다. 성경의 신학적 도그마를 프로그래밍 언어로 치환하고, 시뮬레이션 우주론과 자유의지, 종말론을 한데 엮어낸 작가의 야심만만한 서사와 구조는 정말 감탄스럽다. 인간이 만든 가상 세계 속 존재에게 인간이 신이라면, 인간 역시 상위 차원의 피조물일 수 있다는 발상 또한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중반 이후 이어지는 피에르와의 긴 신학적 논쟁과 프로그래밍 시스템 설명은 이야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보다, 독자가 방대한 설정을 학습하고 해독해야 하는 영역으로 넘어가며 서사의 탄력을 다소 떨어뜨리는 면도 있었다. 완벽한 가상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작가의 집념은 돋보이지만, 문학적 여운보다는 세밀한 설정 노트를 들여다봐야 하는 피로감을 짙게 남기기도 한다.


🧬

표제작이 서사보다 설정의 부피가 앞서며 독자에게 과도한 해석의 노동을 요구하기도 해서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좋았던 책이었다. 이 책이 한국 SF 지형에서 대단히 희귀하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면 존재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결코 쉽게 풀리지 않는 성가시고도 매혹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오래도록 맴돈다. 그리고 지적인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독자에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펼쳐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 이 책은 사계절출판사(@sakyejul)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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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대연쇄 #단요 #사계절 #독서모임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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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 - 애착으로 읽는 중독의 심리학
주세진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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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 - 애착으로 읽는 중독의 심리학> 주세진, 흐름출판



🪤

중독이라는 단어는 보통은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극단적인 풍경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알코올, 도박, 마약처럼 자신과 주변을 파괴하는 심각한 일탈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비교적 중독에는 강한 사람이라 자부하며 여겨오며 살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마주하게 된 장면들은 뜻밖에도 너무나 일상적이고 친숙했다. 할 일이 잠깐 빈 틈을 견디지 못해 무의식적으로 집어 드는 스마트폰, 특별히 볼 것도 없으면서 몇 개의 앱을 습관적으로 순회하는 손가락, 잠자리에 누워서도 굳이 쇼츠나 릴스 하나를 더 넘겨보는 밤들. 이 모든 행동을 전부 중독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질문이 가슴에 무겁게 남았다. 나는 정말 원해서 이 행동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머무는 그 텅 빈 시간을 견디지 못해 붙들고 있는 걸까?


🛟

이 책은 중독을 단순히 말초적 쾌락을 끝없이 탐닉하는 행동이나, 나약한 의지박약이 빚어낸 도덕적 실패로 보지 않는다. 저자가 바라보는 중독의 본질은 도무지 감당하기 어려운 내면의 불편한 감정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부여잡는 과정이다. 그 대상은 비단 술이나 쇼핑, 게임 같은 유흥뿐만 아니라 과도한 일이나 강박적인 운동처럼 겉보기에 성실하고 건강해 보이는 행위조차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건강한 몰입과 위험한 중독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그 결은 완전히 다르다. 몰입은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기쁨을 누리는 행위인 반면, 중독은 행동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억눌려 있던 불안과 공허가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상태를 뜻한다. 멈추었을 때 찾아오는 감정의 온도가 두 상태를 가르는 진짜 기준인 셈이다.


🪤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건 중독의 뿌리를 애착의 결핍에서 찾아냈다는 점이다. 힘들고 지칠 때 타인에게 다가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온기를 나누는 행위는 저절로 주어지는 본능이 아니다. 자신의 취약한 감정을 드러냈을 때 안전하게 수용받았던 경험, 위기의 순간에 손을 뻗어도 거절당하지 않는다는 신뢰가 차곡차곡 쌓여야만 비로소 사람에게 건강하게 기대는 법을 익히게 된다. 반대로 혼자 모든 고통을 삼키는 데 익숙해져 버린 사람은, 안전하지 않은 타인 대신 언제든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는 사물이나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법을 먼저 배운다. 그렇게 바라보면 누군가의 반복적인 집착은 왜 저것 하나 끊지 못할까라며 손가락질할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 위태로운 행동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내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절박한 생존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물론 모든 일상적인 행동을 유년기의 결핍이나 애착 손상으로 성급하게 환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날 달콤한 디저트를 찾거나, 좋아하는 드라마를 밤새 정주행하고, 재미있는 책에 빠져 몇 시간을 보내는 자연스러운 즐거움까지 모조리 병리적인 중독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하는가라는 외적 빈도가 아니라, 나와 그 대상 사이에서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짚어보는 일이다. 


🪤

책을 덮고 난 뒤 무심코 무언가를 반복하려는 순간 가만히 멈춰 서서 생각을 정리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나는 이걸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떤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화면을 켜고 있는 걸까?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할까』는 무작정 욕망을 억누르고 참아내는 금욕의 기술을 가르치는 책이 결코 아니었다. 내가 대체 무엇을 견디지 못해 자꾸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지, 그 내면의 공허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의 나침반 같은 책이었다.



* 이 책은 흐름출판(@nextwave_pub)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우리는왜멈추지못할까 #주세진 #흐름출판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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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델
윤안 지음 / 데니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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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모델> 윤안, 데니브



🧮

모델(model)은 대개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상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단순화하는 분석 틀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분석의 대상이 컴퓨터 시스템이나 경제 지표가 아니라, 다양하고 복합적인 인간의 감정이라면 어떨까? 운함과 질투, 열등감과 친밀감처럼 본인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게 인간의 감정이란 것인데 말이다. 과연 이 출렁이는 마음을 몇 개의 도형과 수치, 공식으로 정량화할 수 있을까? 반쯤은 호기심을, 반쯤은 의구심을 품은 채 이 책을 펼쳤다.


🎚️

저자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행동이 무작위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내면 기준과 일정한 규칙을 통과하며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1과 -1 사이의 수치와 사각형 도표로 마음을 계산하듯 풀어내는 방식이 처음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일상의 구체적인 상황을 대입하는 순간 꽤나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가치쿠션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재밌었다. 동일한 피드백이나 지적을 받아도, 어떤 날은 그저 업무를 위한 유용한 제안으로 쿨하게 넘기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컨디션이 바닥나 버리는 바람에 내 존재 가치 전체를 부정당한 것처럼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변한 것은 상대의 말이 아니라, 그 말을 받아내는 내 내면의 완충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을 담담한 현상으로 흘려보낼지, 혹은 나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일지를 결정짓는 이 가치쿠션의 두께는 우리가 왜 상황마다 다르게 반응을 보이는 지에 대해 꽤 잘 보여주는 변수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

자존감과 자기가치는 높을수록 좋다는 현대 심리학의 오랜 상식을 뒤집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자기가치가 지나치게 높을 때는 타인의 인정을 받기 쉬운 반면, 그 기대치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과와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며 실패 시 겪는 낙차가 극심하다. 한편 자기가치가 지나치게 낮을 때는 소소한 성취에도 만족할 수 있지만,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당한 몫을 당당히 주장하지 못하고 위축된다고 책은 설명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을 맹목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자신감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내가 일상에서 무리 없이 감당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기준을 알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대목이 상당히 신선했다. 


🎚️

이 책에서 행복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매우 흥미로웠다. 저자는 기쁨을 초록불, 슬픔을 빨간불에 비유한다. 우리는 대개 슬픔의 빨간불은 서둘러 끄려 하고 기쁨의 초록불만 24시간 켜져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초록불만 계속 켜져 있는 신호등은 이미 신호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진짜 행복은 좋은 기분의 총량을 억지로 늘리는 상태가 아니라, 기쁨과 슬픔이 각자의 신호 역할을 충실히 마친 뒤 다시 담담한 평상시의 상태로 돌아오는 회복탄력성이라 말할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멘탈보다, 특정 감정에 지나치게 오래 붙들리지 않고 다시 자기 호흡을 찾아가는 유연함이 삶의 본질임을 책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이 책이 제시하는 도표와 수식을 인간 심리의 보편적인 법칙이나 절대적인 학술 이론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복잡다단한 인간의 결을 몇 개의 변수로 축약하는 과정에서 생략되는 뉘앙스도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완성된 이론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마련된 실용적인 생각의 창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나름대로의 책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한 감정의 늪에서 벗어나, 내 마음의 구조를 차분히 관찰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해 보고 싶은 이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그런 책이라고 생각했다.



* 이 책은 작가 윤안님(@tkmodel_1)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생각모델 #윤안 #데니브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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