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된 망각 - 살기 위해, 뇌는 낙관주의를 선택한다
탈리 샤롯 지음, 김미선 옮김 / 리더스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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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한다고 알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낙관적인 기대보다는 혹시 될까 하는 불안과 염려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스를 보아도 긍정의 보도를 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보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는 약간 의아했다. 우린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있어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책의 논리에 수긍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레이커스 농구 팀을 통해서도 이러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최근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해병대 캠프 사고 역시 낙관적 기대감이 오히려 커다란 참극을 벌이는 사고로 이어진 경우가 아닌가 싶다.

 

뇌가 낙관주의를 선택하는 건 변화를 거부하는 습성 때문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별일 없었던 일이 갑자기 어떤 일이 생기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것이 과연 낙관주의를 선택하는 뇌의 습성과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을 들어 뇌의 낙관주의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물론 낙관적인 생각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낙관적 생각을 가짐으로 우리가 준비해야 할 다른 사항들에 대해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낙관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면 왜 그렇게도 부정적 생각을 많이 하게 될까? 어쩌면 이건 교육의 문제일까? 이런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파울로 프레이리는 교육은 무조건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라고 이야기 했다. 결국 이것도 낙관 편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일까?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분명 최악의 상황도 그려보고 모든 준비를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긍정적 착각을 하면서 사는 것이 더욱 좋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비록 과도한 낙관주의로 보인다 할지라도 말이다. 이 책이 경고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차라리 비관적으로 살기 보다는 낙관적으로 사는 것이 더 행복함을 그래서 과도한 낙관주의가 되더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 사례로 나온 몇 가지 특수한 상황은 말 그대로 특수한 상황일 뿐 임을 인식하며 낙관적으로 그래서 염려와 걱정이 아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며 희망을 품고 살았으면 싶다. 어떠한 경우라도 우린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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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 모든 것 안녕, 내 모든 것
정이현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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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은 아름답다. 어쩌면 그런 성장의 과정을 통해 삶을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건 90년대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돌아보면 과거의 시절이란 것이 너무나 금방 지나가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고속도로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보면 찰나 하는 순간에 그 이정표는 이미 고개를 돌려도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세월은 그렇게 너무나 빨리 지나버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흘러간 과거의 시간을 추억이라도 해 볼 수 있다면 하는 것이...... 정이현 작가의 안녕 내 모든 것이 너무나 반가웠던 건 90년대 청춘들의 이야기라 그렇다. 물론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을 시기는 소설의 주인공들 보다 빠르지만 그래도 얼마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반가웠다.

 

소설의 주된 주인공은 세미지만 지혜와 준모도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소설은 이 세 사람이 펼쳐가는 이야기다. 소설의 주된 주인공이 세미라고 하고 지혜와 준모도 주인공이라고 한 것은 어느 곳에선 지혜가 나였고 어느 곳에선 준모가 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주로 세미가 나인 경우가 많았지만.......

 

소설은 2011년 김정일이 죽은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지혜다. 어느 날 지혜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는데 1978년생이라는 것을 묻고 집이 혹시 반포 아니냐는 이야기에 과거를 회상한다. 그리고 시간은 1994년 김일성이 죽은 사건으로 시작된다.

 

90년대는 이른바 문화의 시대였다. 이 문화는 전통적 의미에서의 문화가 아니라 소비가 주를 이루었던 소비문화 시대다. 90년대부터 급격하게 변화된 사회의 모습이 지금 2천년대를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10대를 살아간다는 것도 80년대의 십대와 2000년대의 십대와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이걸 이 소설에서 너무나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90년대 십대 시절을 보냈던 청춘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아직 내가 모르는 소설들도 많겠지만 어찌되었든 누군가에겐 잊혀져가는 소중한 추억이자 또 다른 세대에겐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렇다. 십대 시절은 누구나 그렇지만 당시엔 영원할 것이란 착각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금 내 모든 것을 추억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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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숨겨진 과학 - 노래하고 낄낄대는 동물 행동에 대한 이해
캐런 섀너 & 재그밋 컨월 지음, 진선미 옮김 / 양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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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하면 생각나는 건 "우~와~우~와~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 하면서 방영되었던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가 생각난다. 물론 동물의 왕국도 기억에 많이 있지만 이 방송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 프로를 보면서 동물의 세계가 어떠한지 조금씩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동물의 세계는 얼만큼이나 될지 잘 모른다.

 

책의 제목만 보고 끌렸다. 그 이유는 어릴 때 보았던 신비한 동물에 관한 티비 프로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 동물들에게 어떤 숨겨진 놀라운 일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 책을 펼쳐드는 순간 훌린 듯이 빠져 들어가서 순식간에 다 읽어 버렸다. 역시나 호기심이 많은 만큼 이 책은 너무나 재미있게 읽혔다.

 

처음 이야기는 전기를 만들어 내는 생물을 소개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동물이 전기를 만들어 내는지 미처 몰랐다. 대개 우린 전기를 일으키는 생물로 뱀장어를 들곤 하는데 뱀장어 뿐 아니라 가오리나 물고기도 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한 전기를 직접적으로 일으키진 못해도 자기장을 이용하는 동물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감각이 뛰어나 이미 닿기 전에 반응할 수 있는 신비로움을 가진 동물이 있기도 하다.

 

사람이 사는 방식과 동물이 사는 방식이 어쩜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을까. 하지만 결국 살아간다는 건 근원적 본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람에게만 자아가 있으며 이타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과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동물 역시 자아가 있으며 이타적 행동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사람이건 동물이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며 서로가 동등한 입장을 가져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린 늘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면서 모든 걸 사람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물의 숨겨진 과학이 보여주는 놀라운 사실들을 감탄하였다. 그리고 동물이 때때론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억하며 동물을 다시 한 번 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다. 동물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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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과 유토피아 - 니체의 철학으로 비춰본 한국인, 한국 사회
장석주 지음 / 푸르메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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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참 의아한 생각을 했다. 동물원과 유토피아라. 별로 상관없는 두 개의 단어가 어떤 조합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혹은 어떤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 여러 궁금함이 생겼다.

 

처음엔 니체의 철학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 본다고 하여 흥미롭게 생각을 했지만 책을 읽으면서 더욱 재미있던 건 동물들의 모습을 우리 사회에 대입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한 편으로 생각하자면 동물들이 다소 억울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 것만큼 동물은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흔히 '운다'라고 표현하는 동물의 소리는 그것은 우리의 관점으로 보아서 그럴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물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부분이 조금 그렇지만 그래도 이 책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진지하게 성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추어서 우리가 진지하게 인문학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책인 것이다. 니체의 철학은 바로 이걸 만들기 위한 메인 요리의 최고의 양념이라고 할까.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 왜 니체의 철학일까? 레비나스의 철학은 아니 되었을까? 아니면 르네 지라르나 함석헌 같은 사상으로 지금 우리 사회를 바라볼 수는 없었을까?

 

니체의 사상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건 아마도 '차라투스트라'라는 초인이 이야기한 많은 사회적 모습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기 위한 나름의 성찰적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다. 오히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함께 읽는 다면 더욱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회란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린 소통이 거의 없는 세상 속에 살아간다. 지하철을 타면 하나같이 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각 개인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타인을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란 결국 개인의 삶이 아닌 공동의 삶이다. 공동의 삶을 위해서는 개인이 희생 되어야 하겠지만 때론 개인을 위해서 공동이 희생 되기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적 삶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공동을 위한 희생만을 강요당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개인화되어 가고 나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를 다시 회복하려면 자신을 위한 탐욕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이 중요함을 강조하며 마무리한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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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포 코덱스
마티 프리드먼 지음, 김지현 옮김 / 글로세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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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만 해도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소설에서 쓰이는 언어도 그랬고 글의 흐름도 그랬다. 그저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다 읽고 나서도 좋은 소설이었다고 생각했지 이것이 소설이 아닐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 있는 사실 그대로를 그린 것 같아 기록 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소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성경은 원본이 없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원본이 아니라 수많은 필사본을 합해 만든 것이다. 물론 필사본 중에서도 조금 더 중요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성경이 원본이 없는 이상 완벽한 책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종교적 의미만으로도 사본이라 해도 얼만큼 오래 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성경이 기록되었는지 등 종합적인 결론을 내려 중요도를 따진다. 이 중요도를 따지는 것 역시 사람의 몫이라 어떤 객관적 기준을 갖기가 힘들다.

 

알레포 코텍스라는 가장 완벽하다는 성서의 필사본이 완성된다. 그리고 수 세기에 걸쳐 가장 은밀히 보관되었다. 그러다 알레포에서 예루살렘의 유대 공동체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 책의 비극은 시작된다. 이 책의 중요성을 안 사람들에 의해 일부가 소실되고 마는 것이다. 이 필사본이 파괴된 이유는 결국 인간의 탐욕 때문이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율법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그건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율법을 다르게 해석한다. 오히려 율법 중에 최고는 하나님 사랑이며 이웃 사랑이라고 한다. 율법을 지키고 따르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이걸 많은 유대인들은 놓치고 있다.

 

이 책은 단순한 미스터리 탐구가 아니라 인간 근원의 욕망에 대한 탐구이다. 어떻게 본다면 여전히 우린 소중한 문화에 대해 너무 이기적인 생각으로 소장하려고 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또한 이걸 만약 우연히 손에 넣게 된다면 어떨까? 분명 일부라도 가지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흥미로웠다. 인간의 욕망을 낱낱이 들춘다는 것에서 오는 부끄러움과 희열이 있었다.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린 욕심 많은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격려하는 아름다운 존재라고도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어느 한 가지의 속성만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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