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5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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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2

 

 

1권의 여세를 몰아 조드 일가에게 가혹한 환경은 계속된다.

가족의 이탈도 계속되고 천막촌을 전전하는 속에 실제 가장은 어머니가 된다.

마지막 순간엔 딸은 사산하게 되고 범람하는 물을 피해 고지대의 헛간으로 피신해야 한다.

톰은 다시 살인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 겨울로 접어들어 당장 일거리는 전혀 없고 돈도 없다.

 

대공황기 자연재해로 흉년으로 땅에서 쫓겨난 농민이 무작정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겪는 적나라한 모습 속엔 추한 자본주의가 보인다. 기계화 영농에 속수무책인 소작농은 노동력의 수요공급원칙에 따라 종일 일해도 저축은 커녕 끼니도 어렵다. 노동운동의 기미라도 있으면 부패경찰과 지역토호에 의해 간단히 제거된다. 당시 아프리카 사람보다 못했던 미국농민들 아니었을까.

극단까지 간 이주농민을 상대로 중고자동차를 10달러에 사서 75달러에 팔아 제낀다.

 

<망할 놈의 빨갱이들이 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가 이 빨갱이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현재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심지어 제1야당에서도 이런 기조 하에 국민을 설득하려 하고 태극기부대의 메인 메뉴 이다.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겠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

있는 자가 그의 부를 지키고 더욱 키우기 위함에 방해요소는 일단 빨갱이인 것이다.

거의 무한정한 노동력-당장 빵 한 덩어리가 필요한 자들-을 끌어 모아 서로 경쟁시키듯 터무니없는 임금을 제시하고 절반으로 깎기도 한다. 농담이지만 이런 식이면 나중엔 돈을 내고 일하라고 할 테다.

 

조드일가와 오클라호마에선 목사로 있었던 케이시는 소금 같은 사람이다.

영혼을 찾으러 한번은 광야로 나갔는데 자기만의 영혼은 없다고, 커다란 영혼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고, 다른 조각과 합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비록 목사시절엔 여자와의 잠자리에 주력하긴 했지만 더불어 돕고 돕는 인간세상을 염원한다.

커다란 영혼의 작은 조각과 작은 조각이 합쳐짐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난한 사람이 낫다.

톰의 어머니가 말하는 바이다. <사람이 곤란하거나 다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라는 것.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 뿐이니까.> 왜 그럴까.

 

결국은 휴머니즘이다.

오클라호마 평범한 농민 일가가 알거지로 길을 나서 고달픈 삶 속에서도 불화는 없고 여력이 없어도 이웃을 돌보는, 마음만큼은 부자가 되어 꿋꿋하게 사는 것이 거창하지 않는 휴머니즘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피신한 톰은 무난히 가족과 재회할 것이며 샤론의 로즈는 사산의 아픔을 이겨낼 것이다. 어머니는 든든한 장남과 더불어 일가를 호령하며 말년의 행복을 반드시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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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4
존 스타인벡 지음, 김승욱 옮김 / 민음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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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1을 읽고

 

모든 면에서 세계 1등 국가이며 힘이 곧 정의라며 세계의 경찰이라 자부하는 미국.

이런 나라도 경제공황과 기계영농에 밀려 지극히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농민들이 실존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지경이다. 한편으론 이런 여건을 딛고 부강한 나라로 올라선 미국이기에 더욱 강한 국력을 확대재생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읽으면서 소설이자 독자인 나와 전혀 무관한 내용이지만 안타까움과 슬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톰의 형제자매와 부모, 조부모, 큰아버지에 전직이 목사였던 자가 거듭되는 흉년에 쫓겨난다.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인 트럭을 구입하여 일자리 찾아 머나먼 길 캘리포니아로 이동한다만 가까워질수록 꿈은 신기루가 될 듯 하다.

고향을 떠나면서 실질적으로 무너진 할아버지가, 이어 할머니도 과로를 이기지 못하여 사망한다.

간들간들한 노자 돈으로 대가족은 거지 같은 몰골이 되고 비슷한 처지의 여행객들로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차라리 장관이다.

 

이런 행렬 주변에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

확실치도 않는 일자리를 찾아 어렵게 길을 나선 빈민을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는 자가 있는 반면, 없는 자의 사정은 없는 자가 알 듯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잔잔한 미담들이 그들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거지 같은 차림새로 전혀 여유 없는 처지에서 마음이 부자인 자들이 등장한다. 이런 점에서 읽는 독자 역시 슬픈 마음을 희석시킬 수 있다.

 

8월 첫날.

장마가 물러가고 여름의 본류에서 고생스런 날들이지만, 이런 류의 책은 더위를 잊게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그 시절 그 땅에서 비극적이나 정당한 길을 걸어가며 정직하게 살고자 하며, 위대한 가족의 힘을, 어머니가 보여주는 강인함에 세상을 살아갈 당위성을 본다.

 

2권에서는 더욱 절망적인 사건도 있겠지만 또한 대세는 바꾸지 못하겠지만 마음만큼은 부자인 이웃이 등장할테다.  이런 맛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신이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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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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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웨이가 부른다. 위대한 개츠비!

  

 

서술자이자 작중 인물인 캐러웨이가 등장하고 그의 먼 친척 여동생쯤 되는 데이지의 초청을 받아 그네 집에서 남편 톰과 친구인 미스 베이커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돌아와 이웃한 우람한 저택의 소유주 개츠비가 어둠을 배경으로 맞은 편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예전 연인이었던 개츠비와 데이지. 데이지는 잊었지만 개츠비는 연인을 찾아 계획적으로 접근한다. 상응하는 경제력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아 톰과 맞짱, 아니 더욱 부유한 위치에 이른다. 캐러웨이의 도움을 빌려 둘은 마침내 재회하게 되고 사랑을 확인한다.

개츠비는 공개적으로 남편 톰에게 물러나라고, 데이지는 일말 주춤하게 된다.

개츠비가 동승하고 데이지가 몰던 차가 여인을 치어 즉사하게 되고 뺑소니치게 된다.

사망한 여인의 남편 늙은 노인은 톰의 말만 듣고 수영하고 있는 개츠비를 쏘고 자살한다.

 

남편이 바람 피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데이지- 돈의 위력으로 안락한 생활에 만족하는 여자이다 ? 재회 후 개츠비도 느꼈지만 콩깍지가 낀 그에게는 지금껏 쌓아왔던 부의 종착역이 되기 때문에 단도직입으로 남편 톰에게 물러나라고 한다.

 

남편 톰은 최대의 수혜자이나 부도덕한 작자다.

데이지가 몰던 차에 정부가 사망하여 자동정리가 되면서 정적 개츠비도 손대지 않고 코 푼 격으로 총탄을 맞게 만든다. 데이지를 뺏기지 않음은 당연하면서.

 

데이지.

대외적으로 뺑소니 범으로 몰리게 되고 끝까지 지켜주려는 개츠비의 사망에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개츠비의 경제력을 알고 나서 개츠비가 웅변하는 세레나데에 푹 빠져 심경의 변화를 지나 거의 굳혀갈 즈음이었는데……

 

거의 친구쯤 되는 캐러웨이가 지칭하는 것이 이름하여 위대한 개츠비이다.

연인을 찾아내어 천생연분을 잇고자 무일푼에서 출발한 개츠비. 검은 손과 결탁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일구는 것도 오직 데이지를 위하여.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확실히 건넜으나 사랑을 획득할 찰나에 종말을 고하는 비운의 사나이. 더군다나 사후 데이지가 보여준 태도는 그를 더욱 슬프게 하고, 하객 없는 장례에서 몹쓸 세태를 본다.

굵고 짧게, 목적 뚜렷한 삶이었기에 그 원동력과 실행은 귀감이었다.

하지만, 죽고 나면 뭐하노?

 

현재는 G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는 중인데 여기 주인공도 저명인사와 결혼한 연인과 재회하기 위해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는 와중이라 언뜻 헛갈리기도 한다.

남자들은 왜 이럴까.

 

F.스콧 피츠제럴드가 포크너와 헤밍웨이와 함께 20세기 미국 소설의 삼총사라 하고, 1차 세계대전후 서구 문명 자체에 회의하면서 재즈에 심취하던 미국의 192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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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214
허먼 멜빌 지음, 강수정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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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을 읽다.

읽을 책은 구입하는 편인데 이번엔 도서관 자료실을 이용해 바로 읽었다.

지출이 없는 장점은 있었지만 의미 있는 부분에 마킹을 하지 못하고 필기하느라 진도가 늦는 단점이다. 하여 이후 책 읽기에는 책값을 지불하고 손때를 묻히는 것이 맞다.

허만 멜빌, 작가의 포경선 생활은 1년 남짓. 그럼에도 고래와 포경에 관해 무척 박식하다.

책 절반 정도는 고래와 포경에 관한 개론서에 가깝다. 세밀하고 꼼꼼한 사전지식 없이 글은 쓰는 게 아니란 거다.

일전 지인은 이런 이유를 들어 유명세에 비해 꽤 지루한 책이라 평했다.

일말 정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상 하로 나뉜 책을 완독하게 된다.

에이해브 선장은 오직 복수심으로 모비딕이란 향유고래를 잡으려 한다.

낸티컷에서 출항할 때 선주와 투자자, 선원들의 바램은 뭔가.

40명의 선원이 48개월을 운항하여 40마리 분의 고래기름을 가득 싣고 귀로에 오르는 것인데 50줄에 들어서야 결혼하고 자녀까지 둔 에이해브는 안중에 없다.

가족을 그리며 안전운항을 바라는 1등 항해사 스타벅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다.

삶의 목적이 곧 모비딕에 대한 복수뿐이다. 선원들의 리더는 이렇기에 본선으로 돌진하는 모비딕에게 모두는 침몰하여 저 세상 사람들이 된다. 한가지 에이해브에 대한 위안이라면 그가 탐욕과는 무관하다는 것. 대신 광기로 찬 인간의 전형으로 이성적인 상황대처의 공간이 전혀 없다. 하지만, 뒤틀려있지만 가식이나 속임수 없이 저돌적으로 모비딕에 맞서는 에이해브의 용기는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트를 내리며 스타벅과 악수를 나눈다. “내 영혼의 배가 세 번째로 항해를 시작하네.”  “~나는 지금 가장 높은 물마루로 일어선 파도 같은 심정일세. 스타벅, 나는 늙었어. , 악수를 하세.”

에이해브는 그가 염원하던 모비딕과, 바다와 맞선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전심전력이다.

고래를 잡든가, 뒤집어 지든가!”

이 귀절이 가장 인상 깊다.

에이해브 선장의 선동과 술에 절어 일심동체가 된 선원들의 합창이 알싸하다.

사는 게 뭔가. 세월 한복판을 차고 앉아 능력껏 해보다가 아니면 가고말지.

식인종으로 지칭되는 퀴퀘크.

신심이 없는 남자의 지표이자 상징인 퀴퀘크는 절망의 한복판에 앉아 절망적으로 희망을 쳐들었다.” 희망과 절망이 이렇게 배합되며 희열을 느낄 수 있을까.

사족으로, 유일한 생존자인 화자와 퀴퀘크는 친구가 되어 함께 피쿼드호에 오르는데 선상에선 둘 사이의 일이 언급되지 않는 게 아쉽다.

잡은 고래와 놓친 고래 편에서 위트 있는 이야기.

북해에서 고래를 발견하고 작살을 꽂았으나 위태로운 상황에서 밧줄과 보트까지 포기. 다른 포경선이 이 고래를 포획하고 이전 배의 작살, 밧줄, 보트까지 노획. 애초 작살 꽂은 배가 소송제기 하였으나 패소. 고래가 최종적으로 포획되었을 때 놓친 고래였고, 작살과 밧줄은 고래가 매단 채로 도망감으로써 고래가 해당 물건의 소유권을 획득한 것이고, 나중에 그 고래를 잡은 배는 그 물건들에 대해서도 권리를 갖는다는 판결.

또한 당시 어떤 간통사건과 결부시켜 여자와 고래를 동일시한 부분이 있는데 요즘 시대에선 페미니즘의 공격으로 소설의 존립이 위태로울지도 모르겠다.

멜빌은 주홍글자의 작가 너대니엘 호손에게 이 작품을 헌정한다고 했다.

커피 하면 떠오르는 스타벅스 1등 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을 차용했다는 사실도 이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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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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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8월에 11권을 읽었고 이 도서는 12번째 보았다.

여러 장르를 넘었지만 주로 소설을 읽었다.

하여간 이달 접한 12권 중에서 가장 격정적으로 이끈 폭풍의 언덕이다.

격정적이란 간단히 줄이자면 분노였다.

히스클리프때문이다.

픽션임을 알지만 그 시대 그 나라에서 유사한 동류는 없진 않았을 테다.

그리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히스클리프의 아류는 넘치고 넘칠 테다.

그럴싸하게 히스클리프를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도저히 이해해서는 안 된다.

어느 영감이 출장 길에 가엽게 보이는 소년을 데려와, 보상 따윈 바라지 않고 친자식 이상으로 키웠지만 그 녀석이 온 집안을 나락으로 안내할 줄 알았을까!

소설의 마무리 무렵이 아니고서는 히스클리프에게 분노했다.

사랑하는 여자의 시누이를 절규에 빠지게 하고, 엄연한 자신의 아들을 오직 이용하였고, 보듬어 준 영감의 친손자를 하인처럼 부리고 제2의 자신으로 만들어 허접한 자신의 분신으로 키웠다.

사랑하는 여자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고 사랑했으되 다시금 자신의 분신를 통해서만 동류의식을 공식을 통해서 죽어서도 만나고자 한다.

 

 

 

 

복수의 집녑과 비뚤어진 사랑은 결국 스스로를 해치고 인과응보의 당위성을 알게 한다.

인간은 최소한의 사회성을 견지하여야 하고,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인간은 인간답게 사고하고 인간의 품위를 가져야 동물이 아닌, 인간인거다.

말미에 히스클리프가 사랑하던 여인의 딸과 하녀를 감금하고 강제로 혼인을 시키려 하고, 반항하는 딸에게 손찌검까지 하며 저질의 인간상으로 군림하는 무렵에서는 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나마 해피엔딩으로 종결된 것이 다행이다.

끝까지 비극으로 흘렀다면 오늘 밤 잠자지 못했을 것이다.

책장을 덮고 약간의 술을 마셨고 담배를 핀다.

어이하다 감정이입이 심해 내 나이를 잊고 흥분했을까.

이 사랑은 치명적인 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저승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의 언덕 아래서 키스도 하면서, 싸우기도 하면서 이제 철들어야 한다. 저 네 들 자녀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 드리며 거듭나야 한다.

 

 

 

단 하나,

사랑의 이름으로 격렬히 외치고, 죽을 듯 증오하고, 미친 듯 바라보는 원초적인 사랑은 아직 내겐 없었다는 점이 날 우울하게 한다.

참으로 소설다운 책이었다.

날 격정으로 이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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