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포도2
1권의 여세를 몰아 조드 일가에게 가혹한 환경은 계속된다.
가족의 이탈도 계속되고 천막촌을 전전하는 속에
실제 가장은 어머니가 된다.
마지막 순간엔 딸은 사산하게 되고 범람하는 물을
피해 고지대의 헛간으로 피신해야 한다.
톰은 다시 살인자가 되어 도망자
신세. 겨울로 접어들어 당장 일거리는 전혀 없고 돈도 없다.
대공황기 자연재해로 흉년으로 땅에서 쫓겨난 농민이
무작정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겪는 적나라한 모습 속엔 추한 자본주의가 보인다. 기계화 영농에 속수무책인 소작농은
노동력의 수요공급원칙에 따라 종일 일해도 저축은 커녕 끼니도 어렵다. 노동운동의 기미라도 있으면
부패경찰과 지역토호에 의해 간단히 제거된다.
당시 아프리카 사람보다 못했던 미국농민들 아니었을까.
극단까지 간 이주농민을 상대로
중고자동차를 10달러에 사서 75달러에 팔아
제낀다.
<망할
놈의 빨갱이들이 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가 이 빨갱이 놈들을 몰아내야 한다.>
현재 이 시간에도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심지어 제1야당에서도 이런 기조 하에 국민을
설득하려 하고 태극기부대의 메인 메뉴 이다.
<우리가
시간 당 25센트를 주겠다고 할 때 30센트를 달라고 하는 개자식들이 다
빨갱이야!>
있는 자가 그의 부를 지키고 더욱 키우기 위함에
방해요소는 일단 빨갱이인 것이다.
거의 무한정한
노동력-당장 빵 한 덩어리가 필요한 자들-을 끌어 모아 서로 경쟁시키듯
터무니없는 임금을 제시하고 절반으로 깎기도 한다.
농담이지만 이런 식이면 나중엔 돈을 내고 일하라고 할 테다.
조드일가와 오클라호마에선 목사로 있었던 케이시는
소금 같은 사람이다.
영혼을 찾으러 한번은 광야로 나갔는데 자기만의
영혼은 없다고, 커다란 영혼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다고, 다른 조각과 합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비록 목사시절엔 여자와의 잠자리에 주력하긴 했지만
더불어 돕고 돕는 인간세상을 염원한다.
커다란 영혼의 작은 조각과 작은 조각이 합쳐짐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난한 사람이 낫다.
톰의 어머니가 말하는
바이다. <사람이 곤란하거나 다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라는 것. 남을 도와주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 뿐이니까.> 왜 그럴까.
결국은
휴머니즘이다.
오클라호마 평범한 농민 일가가 알거지로 길을 나서
고달픈 삶 속에서도 불화는 없고 여력이 없어도 이웃을 돌보는, 마음만큼은 부자가 되어 꿋꿋하게
사는 것이 거창하지 않는 휴머니즘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피신한 톰은 무난히 가족과 재회할 것이며 샤론의 로즈는 사산의 아픔을 이겨낼
것이다. 어머니는 든든한 장남과 더불어 일가를 호령하며 말년의 행복을 반드시 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