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자평"이 말 그대로 글자 제한이 있어서 미처 못한 말을 여기에서 몇 자 적어둔다. "100자평"에서 나는, <여전히 미쳐 있는>은 <다락방의 미친 여자>보다 분량은 적고, 논의 방식도 깊이보다 넓이에 치중한 듯하다고 썼다. 그러니까 이 페이퍼는 이 "100자평"에 대한 추기(追記)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두 책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꽤 분명하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부제는 "여성 작가와 19세기의 문학적 상상력"이지만, 실상 19세기라는 100년의 (당대 문학계의) 역사를 다루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그 기간에 등장한 주목할 만한 여성 작가들(특히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조지 엘리엇)의 작품 분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작품 분석이다보니 아무래도 논의가 길고 그 수준도 깊다.
이와 달리 <여전히 미쳐 있는>은, 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듯이, 195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발전해온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을 "시대 순"으로 다룬다. 요컨대 <여전히 미쳐 있는>은 지난 50여 년의 미국 페미니즘 "연대기"인 셈이다. 비유컨대,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19세기를 껑충껑충 건너뛴다면(가령 오스틴이 활동하던 1810년대, 브론테 자매가 활동하던 1840년대 말~1850년대 등등), <여전히 미쳐 있는>은 지난 50여 년의 역사를 말 그대로 쭉 훑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논의해야 할 작가들의 수가 많을 테고, 각 작가들에게 할당될 수 있는 페이지의 수가 제한될 테고, 결국 논의 수준이 덜 깊어질 수밖에.
물론 차이점만 부각한다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이 두 저자는 이미 20세기의 여성 작가들을 약 1,250여 쪽에 걸쳐 깊게 다룬 바 있기 때문이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와 <여전히 미쳐 있는>의 저자 소개에 <남자의 것이 아닌 땅>(No Man's Land)이라고만 적힌 이 3부작의 부제가 바로 "20세기 여성 작가들의 자리"(The Place of the Woman Writer in the Twentieth Century)이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면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진정한(!?) 후속작은 오히려 <여전히 미쳐 있는>이라기보다는 저 3부작이다. 아무튼 그러니 "이미 책 3권을 통해 20세기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해놨는데, 신작(<여전히 미쳐 있는>)에서도 그러라고?"라고, 두 저자가 볼멘소리를 던지거나 거세게 항변해도 할 말은 없는 셈이다.
그런데 그건 두 저자의 사정이고, 한국에 사는 독자로서는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자의 것이 아닌 땅> 3부작이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될 것 같지는 않아서이다. 어쩌면 알라딘 북펀딩을 통해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만, 아무튼 한국 독자의 사정은 이러니 <여전히 미쳐 있는>의 논의 방식이 아쉬울 수밖에(하긴 책을 다 읽고나서는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안젤라 카터(Angela Carter, 1940~1992)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도 무척 아쉽다. <남자의 것이 아닌 땅> 3부작에서도 고작 10쪽 가량만 할애하더니, <여전히 미쳐 있는>에서는 아예 1쪽밖에 할애가 안 되어 있다. 하기사 "미국 여성 작가들"을 다룬다고 못 박아뒀으니 뭐...... 그런데 다른 영국 작가인 버지나아 울프는 많이 언급하더만.
아참, 위에서 말했듯이 카터는 "영국" 작가이다. 본문(234쪽)에는 옳게 적혀 있는데, 어쩐 일인지 찾아보기의 저자 설명(608쪽)에는 "미국 소설가, 시인, 저널리스트"라고 적혀 있다. 재판을 찍는다면(아마도 판매지수로 볼 때 이건 가능하지 싶다) 꼭 고쳐줬으면 한다.
이렇게 나름의 아쉬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쳐 있는>은 지금 그 모양새 그대로 좋은 책이고, 주변에 일독을 널리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희망을 덧붙이자면, 언제가 됐든 국내 연구자(들)가, 국내 여성 작가들에 관해 이런 책을 써줬으면 정말로 좋겠다. 그런 날이 온다면, 내 기꺼이 그 책에도 펀딩을 할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