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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물검역소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17년 4월
평점 :
<신문물검역소>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꽃도령 함복배와 화란 선비 박연의 여심 저격 브로맨스
조선시대 얼리어답터들이 펼치는 예측불허 서스펜스
어쩌면 여성들이라면 이 문구와 표지 속의 그윽한 눈빛의 꽃도령의 모습을 보면서 이 책을 선택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하지만 표지 속의 꽃도령의 이미지와는 달리 주인공 '함복배'는 이름부터도 꽃도령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소박한 듯하고 태어날 때부터 울지 않은 배냇벙어리로 10년동안 부모의 애을 태웠던 그였다. 그러나 자신이 연모하는 '연지'라는 여인때문에 말문을 열게 되게 되고 왜 그동안 말을 하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그저 울고 싶지 않아 울지 않았고, 말을 배우고도 말하고 싶지 않아 하지 않았을 뿐이라니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 아닐까하는 예고를 하였으나, 실상은 허당에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게 그려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우여곡절 끝에 과거시험을 치르고 급제를 하나 한양이 아닌 제주로 발령이 나서는 <신문물검역소>라는 신설기관의 수장으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는 말이 수장이지 거처도 허름하고 같이 일하게 되는 이는 염보나 한섭이라는 인물 둘뿐이였다.
<신문물검역소>는 대내적으로는 왜국의 사신이 임금에게 진상한 신문물의 용처를 파악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임시기관의 성력을 띠는 곳이나 대외적으로는 '검역소'라는 말처럼 임금이 귀하게 여기는 신문물이 외부로 전파되는 불상사를 막기위해 이 기관을 염탐하는 자에게 신문물이 역병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자하는 의미에서 정해졌다는 점에서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물검역소>는 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물건들이 들어와서 그 용처를 알아내어야 하는 곳이기에 어리버리한 세 사람이 하나 하나의 물건을 건내서 이리 저리 살피면서 쓰임과 이름을 붙이고 보고서를 쓰는 과정을 그리는 부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력과 박장대소를 할 만큼의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한 예로 ' 희고 부드러운 천조각을 올려놓고 동그스름한 모양의 천이 마치 애체(안경)처럼 붙어있고 가느다란 끈이 길게 늘어져 있으며 길이는 대략 두자였다.'라는 표현에서 이것이 무엇일거라는 상상이 드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게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였다.
하지만 함복배가 쓴 보고서의 내용을 보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고 박장대소하게 한다.


난파선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노란머리의 '밸투부레'를 만나는 장면에서는 외국인을 본 적 없는 그들에게 어쩌면 그가 괴물이라 여겨졌으며, 잘못된 정보로 인해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모습은 웃음도 자아내면서도 씁쓸함도 주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외국인들이 많은데 가끔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나타나면 바라보는 시선이 꼽지는 않은 것이 이전의 우리 조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문물검역소>에는 불아자, 치설, 만양경, 곤도미, 시계, 코길이, 선풍기, 로손 등의 신문물들을 소개하는 장면에서는 한 편의 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어리버리 소장과 두 보조인물 거기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박연까지 주연과 조연이 모두가 한 몫을 하면서 이야기의 재미를 더해주는 면이 있다.
하지만 '송화영'이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혼례를 앞둔 처녀만 살해되는 '제주처녀 살인사건'의 연쇄적 발생은 이야기의 분위기를 달리하면서 함복배와 그의 보조인물들이 신문물검역소에서의 주된 일을 뒤로 하고 살인사건 해결에 뛰어들게되는 새로운 이야기 전개를 보여주면서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기수영, 미호라는 인물을 통해 '아편'이라는 새로운 매개체를 둘러싼 전쟁과 그로 인해 발생한 일련의 사건의 전개들은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면이 있으며, 진범이 밝혀지는 부분에서는 반전을 선사하기도 한다.
신문물이라하면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물건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던 나에게 마지막에 박연이 함복배에게 건네는 말은 충격과 함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모든 사건이 다 해결되고 함복배의 혼례식에서 신문물 중 하나인 코길이(일명 코끼리)가 흥분하여 그 동안의 신문물과 검역소를 모두 망가뜨려 모든 것을 잃었다고 좌절하는 함복배에게 박연은
" 모두 잃었다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지금 함소장님 앞에는 조선 최고의 신문물이 함께 울고 있지 않습니까?"
" 저를 임금님께 데려가 주세요."
훗날 우리가 알다시피 박연은 조선인과 결혼하고 훈련도감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가르쳐주고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 되는 진정한 신문물임을 입증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늘 쓰고 곁에 두고 있는 물건들이 어떻게 이름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지 않고 무심코 쓰는 경우가 많은데, <신문물검역소>를 읽으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물건들의 용처와 이름을 정하는 과정을 보면서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정해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하나 하나의 신문물이 소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배로 해주었으며, 이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신문물검역소>는 나에게 유쾌함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