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서가에 꽂힌 책 한권을 통해 우연하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를 알게 되었다.작가마다의 개성있는 내용과 심도있는 문학적 요소들을 담고 있는 소설이라 그런지 모든 부분이 이해가 되면서 술술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었다.하지만 아담한 사이즈와 표지의 디자인 그리고 단행본이라는 부분이 좋아 조금씩 관심과 소장욕이 들기 시작했다.이번에 만난 작품은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열아홉번째 책인 <당신과 다른 나>이다.단순한 건망증이라고 생각했어요. (9p)그게 나나 당신 자신일 수도 있어.그리고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계획들을 의논할 생각이었습니다. 아직은 아주 심각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더 나빠질 수 있는 가능성들, 그럼에도 상담을 받고 치료를 받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질 수 있는 기대들에 대해서 말이에요. (76p)단순히 건망증이라 여긴 아내, 그녀의 시선에 비친 남편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과 말들을 하고 있었다. 있지도 않은 개가 사라졌다 말하거나, 자꾸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그의 행동은 그녀를 불안하게 하였고 그런 그를 그저 아픈 사람이라 여기게 했다.소설은 장이 바뀌면서 또 다른 화자가 등장한다.소설가인 '나'와 그녀의 아내인 미양이 주인공으로 한 권의 책 속에 두 가지 작품이 담긴 듯한 느낌을 주었다.무엇보다 소설가들이란 거의 매일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사람들 아닌가. 모니터의 빈 문서를 노려보며 자주 무언가를 견디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그 상태 그대로 오래 노려보는 것. 끈기, 성실함, 아무튼 뭐 그런 기본적인 것. (82p)미양이라는 아내와 단 둘이 그저 평범하게 살지만 평소 사람 많은 곳에 있을 때면 자꾸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같아 신경쓰며 불안해하는 타입의 남자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데도.그리고 입맛이 딱히 까다롭진 않으나 무얼 새로 고르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남편과 닮았다고 말하는 여자와 만나게 되고 그녀의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는 소설로 쓰게 되는데...전혀 연결성이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는 어느 시점이 되자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반전을 담아내고 있었다.이해할 수 없는 여자, 그녀는 본래의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아를 만들어 소설같은 이야기와 행동을 하게 되고 진실과 허구의 경계마저 무너지면서 이제는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소설가와 소설같은 이야기로 자신의 삶을 만들며살아가는 여자.<당신과 다른 나>는 정체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고 있었다.진짜 '나'와 허구의 '나'가상의 '나'가 점차 본래의 '나'를 점령하고 모든 것을 망가뜨리게 되면서 잔잔하게 흘러갈 것같던 소설 속 이야기는 반전을 일으키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그의 소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겪고 있거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문학 작품이지만 그저 가볍지만 않으며, 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시사하는 바도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