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내 말 좀 들어줘
앰버 스미스 지음, 이연지 옮김 / 다독임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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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얼마나 오랫동안 그 곳에 누워, 스스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눈 꼭 감고, 잊자. 그냥 잊어버리자. 괜찮지 않은 것들 모두, 앞으로 다시는 괜찮지 않을지도 모를 것들을 모두 무시해버리자. (중략)
안돼, 울어서는 안된다. 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그냥 꿈. 좀 나쁜 꿈, 악몽일 뿐이니까. 진짜가 아니다.... (5p)

꿈이기를...아니 이런 꿈은 꾸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꿈이 아니였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고 그 끔찍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피해자의 절규였다.

성.폭.력
어떠한 폭력도 용납되어서는 안되지만 그 중 가장 씻을 수 없고 평생 트라우마라는 감옥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게 하는 폭력이 아마도 성폭력이 아닐까.
분명 피해자임에도 수치심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비단 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폭력의 가해자들은 떳떳하게 사회 생활을 하고 어떠한 죄책감도 없이 살아감에도 피해자들은 그들의 협박과 그 날의 잊을 수 없는 기억 속 공포로 인해 제대로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내 말 좀 들어줘>은 평범했던 여학생의 일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린 그 날의 사건으로 평생을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이든의 간절한 외침과 도움의 손길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자신의 오빠의 친구의 케빈은 그 날 밤 잠들어 있는 그녀의 방으로 찾아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어둠 속의 그의 목소리
"너는 입을 닥치게 될 거야."
그의 이 말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든...
끔찍한 사건의 현장을 엄마에게 들켰음에도 그녀의 엄마는 그러한 일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이든이 초경을 시작한 것이라 여기며 현장을 정리하기 바쁜 모습은 보는 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제목 그대로 이든은 간절히 외쳐본다.
"누가 내 말 좀 들어줘"라고
그런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절대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이 사건 이후 점점 변해가는 이든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그저 그녀가 이상하다라고 책망하거나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반응을 보이게 되고 이런 그들에게 자신의 감추인 비밀을 말하지 못한 채 새로운 모습로의 변화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행동은 그저 사춘기아이의 비뚤어진 행동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비춰지게 되고 철저하게 자신을 망가뜨리는 모습으로 보일 뿐이였다.
안타까웠다. 그리고 먹먹했다.

지옥 속에서 벗아나기 위한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그녀는 자신의 잊을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이 끔찍한 일을 털어놓고 가해자에게 대가를 치루게 할 용기를 낼 것인가?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는 모를 결론.
그저 반항적인 행동의 일면으로 그녀가 당한 경험을 덮으려고 하는건 아닐까하는 마음으로 답답하고 뭔지 모를 묵직함으로 소설을 읽어나갔다.
이든이 용기내어주길,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이든이 진실을 말해주길....

<누가 내 말 좀 들어줘>는 성폭력 피해자의 간절한 외침과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임을 보여주는 소설이였다.
살아도 사는 것같지 않은, 지옥이 있다면 어쩌면 이것이 지옥일 것이라는 그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소설은 트라우마가 삶에 미치는 영향과 너무도 사실적인 표현으로 성폭력의 휴유증을 보고 느끼게 하고 있다.

그들은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인식도 전환되어야 한다.
성폭력피해를 집계한 조사의 경우도 실제 일어난 수보다 훨씬 적게 발표가 되고 있다.
그건 수치심과 공포심에 신고를 하지 않은 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음에도 아직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 면이 많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지금도 누군가는 간절히 외치고 있을 것이다.
누가 내 말 좀 들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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