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암, 바람의 노래 - 팔만대장경을 둘러싼 역사 무협 팩션
손선영 지음 / 트로이목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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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지 못하는 녀석은 빠져라. 칼을 들 수 있는 부상자는 앞으로 가라.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 부상자는 다친 만큼 상대에게 돌려주어라. 오늘 해인사를 불태우자! 저들에게 삶은 없다. 모두 죽인다.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인다."
(161p)

전장의 분위기가 어떠할 지 이 대목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죽음 앞에 두려움마저 느끼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백성들의 외침이 책을 읽는 내내 들리는 것같아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조선을 짓밟고 명나라를 넘어 세계를 제패하려는 토요토미의 야망에서 시작된 이 전쟁에는 해인사 깊숙히 숨겨진 팔만대장경을 빼앗을려는 왜군와 손가락 하나하나에 대장경의 판전의 글자를 느끼며 장경판을 지키려는 소암대사와 승병들의 숨막히고 긴박함이 있었다.

해인사는 가야산 속에 꽁꽁 숨어 있어 비밀이 전승되고 바깥에 내보이지 않을 천혜의 요새였지만 조정대신들이나 왜군들에게는 그저 촌구석 방사쯤으로 여겨졌다.
그런 해인사이기에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을 피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승병들이 무예로 수신제가하며 불도를 지킬 수 있었다.

<소암, 바람의 노래>는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팔만대장경이라는 문화적 요소를 가지고 써내려간 역사 소설이다.
소암대사는 실존했던 인물이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과 함께 팔만대장경을 지켜내었던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역사가 그러하듯 실제 있었던 일이였음에도 자료가 없다면 그저 소설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기 쉬운데 구전으로 알려진 사실이라도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사실들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소설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천년 고도 신라와 고려의 정신을 집약한 팔만대장경을 토요토미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 반면 무지몽매하고 막연하더라도 신라에서 고려를 지나 전란의 화마를 기꺼이 견뎌내며, 왜군의 칼날에 피를 뿜으며 죽어갈 백성들의 믿음인 팔만대장경을 지키려는 소암대사의 피나는 노력과 이름도 알려지지 않고 죽어간 수 많은 승병들의 희생이 손선영작가의 상상력과 합쳐져서 우리에게 그 뜻을 깊이 새길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초반부의 막연한 긴장감은 전란이 본격화되면서 긴장감이 아닌 극적 긴박함과 숙연함마저 들게 하였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암, 바람의 노래>는 소암대사와 팔만대장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승병뿐 아니라 의병들의 활약상과 전란의 상황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먹먹함마저 들게 한 작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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