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이도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경험이 있나요?
어떠한 사전 지식도 없고, 누군가의 추천을 받지 않은 상태로 우연하게 보고는 끌려서 읽게 되었는데 작품뿐 아니라 작가에게 빠진 경험.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어느 날 도서관 자료열람실로 들어갔다. 수 많은 책들이 꽂혀 있는 자료실을 이리 저리 기웃기웃하다 나의 눈에 들어온 그 책을 그 자리에서 다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은 바로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 우편물>이다.
9년 차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 공진솔과 피디이자 시인인 이건. 30대인 이들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평범한 듯한 일상 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사랑을 서정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였다.

요즘같이 빠르게 끊었다 빠르게 식어버리는 양은냄비같은 사랑이 아닌 조금씩 천천히 끊어 올라서는 불을 꺼도 그 열기가 식지 않고 따뜻함이 오래 유지되는 뚝배기같은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작품이 좋았고 그녀의 표현이 좋았다.

참 오래 기다렸다. 신작이 나오기를.
6년의 기다림끝에 만났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눈길이 가는 표지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타임캡슐처럼 이 때가 되면 다시 만나자고 기약을 의미하는 듯하는 제목이 내용의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이도우작가님의 작품 속엔 시선을 사로잡기 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요. 스토리의 전개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요. 현란한 말로 독자들의 눈과 마음을 잡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한장 한장 읽다보면 서서히 그녀의 문체와 담백한 표현, 서정적인 느낌에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에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특별한 것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을....
그런 점이 나는 좋고 작가의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대입시학원의 강사였던 목해원. 그녀는 어떤 일을 계기로 일에 회의감을 느끼고 자신이 하던 일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고향이란 그런 곳이다. 떠났더라도 결국은 다시 찾게 되는 곳. )

창문 커튼을 젖히고 해원은 밖을 내다 보았다. 숙박객을 받는 단층 벽돌 별채도, 잎이 떨어지고 넝쿨만 남은 담쟁이도, 뒷산으로 향하는 오솔길도 그대로 였다. 저만치 나무 열매를 던지면 그 집 마당에 떨어질 듯한 거리의 옆집도 변함이 없었다. 다만 모든 풍경이 마지막으로 왔던 때보다 낡아 보였을 뿐 (15p)

오랜만에 온 해원의 눈에 비친 고향 풍경의 그림은 어릴 적 시골 할머니집에 놀러갈 때마다 변하지 않은 듯 변한 풍경을 바라보면 다른 느낌을 느꼈던 그 때를 떠올리게 했다.

해원이 있는 그 곳에는 작은 책방이 있다. 손님이 찾기나 할까 싶은 책방이지만 단골 손님도 있고 독서모임도 이루어지는 나름 알찬 책방이였다.
그 책방은 동창인 은섭이 운영하고 있었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그는 '굿나잇책방'이라는 블로그도 운영하면서 책방의 소식과 자신이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갤러리코너에 올리기도 하고 자신만의 비밀일지도 쓰고 있었다.

하지만...그에겐 어딘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일까? 지난 십년동안 짧게 나마 대화를 나눈 건 우연히 마추쳤을 때뿐이였고, 그 정도 세월이면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도 실은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닐 때가 많았다. (35p)

학창 시절에도 존재감없이 지낸 은섭이라 해원의 기억속의 그도 어렴풋하게 기억되는 모습일 것이다.
알고 지낸 친구도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예전의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닌 낯설음으로 다가올 때가 있기에 이 문장이 와 닿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고 의심은 늘 이루어지는 것

우연하게 나선 산행에서 두 사람은 의심의 길에서 서로가 한 생각을 말하게 되고 그것은 예전과 다른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약점을 들킬 것같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가진 해원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줄 것같은 은섭
두 사람 사이에 묘하게 흐리던 감정선이 '사랑'임을 알아차리고 마주하게 되는 두 사람.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 떠나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은섭은 불안하고 누구보다 상처받기 싫어하는 사람이라 애초부터 상처받을 만한 일들은 차단하고 살아온 은섭이라는 것을 아는 해원.... 두 사람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내 옆의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작품에서 호두하우스와 책방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책방 안에 위치한 키핑 책장과 책방북스테이, 책 속에 또 다른 책의 소개 등은 작품의 볼거리이기도 했다.
사랑과 우정, 아픔, 그 아픔을 조금씩 치유해가는 과정 등을 이도우 작가 특유의 기법과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는 잔잔한 감동이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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