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사라진다.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는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때.
- 342p

처음 구병모 작가를 알게 된 작품은 <위저드 베이커리> 로 청소년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작품성이 뛰어남에 감탄을 하며 다음으로 읽은 작품이 <한 스푼의 시간>이다.
그 작품은 제목부터가 끌림을 주면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닉네임으로 쓰고 있다.
그런 그녀의 또 다른 소설인 <파과>는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도 읽으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하나로 정리되지 못하고 나의 머리와 가슴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파과'
사전적 의미는 흠집이 난 과일이다. 소설에도 한때는 달콤한 향기와 한 입 베어물면 달달한 과즙이 입 안 가득 퍼지는 복숭아가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하고 물러지고 썩어서는 만지는 순간 예전의 형태마저 사라지게 되는 사전적 의미의 '파과'를 표현하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그런 사전적 의미만이 아닌 한때는 화려한
실력을 뽑내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을 젊은 시절을 지나 이제는 퇴물취급을 받으며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나주길 바라는 이들의 눈치 아닌 눈치를 받는 노부인의 이야기를 '파과'라는 제목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저 평범한 노부인이라 여겼다. 그런 그녀는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놀라운 직업을 가졌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방역'이라 표현하는 일명 킬러인 것이다.
40여년을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느끼며 살지 못하고 냉혹한 청부 살인을 업으로 그저 하달받은 지시를 실행하며 살아온 '조각'
세월 앞에 장사없다고 그녀 역시 60대의 나이에 몸도 기억력도 예전같지 않았다. 깔끔한 일처리를 생명으로 여기는 청부 살인의 세계에서 노화로 인해 예전이라면하지 않을 실수와 연민이 늘어갔다.

그녀를 '방역'에 세계로 이끈 류라는 존재와 작업 중에 잠깐의 방심으로 상처를 입은 조각을 무엇 하나 묻지 않고 치료해 준 의사인 강박사에 대한 마음, 지시받은 일의 처리가 끝나고는 잊어 버리는 그녀와 달리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하는 일이 되어 원한을 사게 되면서 위기에 처하게 되는 조각의 이야기 등 한 편의 소설 속에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이 소멸의 시간을 맞이하는 한 여성인 '조각'의 일생의 담겨 있다.

지킬 것이 없어야 했던 그녀에게 조금씩 지키고 싶어지는 것들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그녀와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일이 될 줄 몰랐음이 읽는 내내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분명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가 아님에도 미스터리함과 긴장감이 들게 하고 문체 하나 하나의 표현은 대충 읽어내려가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연민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나 역시 화려한 시절이 끝나고 상실의 시기가 있을 것이다.
그녀의 표현처럼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의 불꽃처럼 빛나는 순간이 부서져 사라지겠지만 지나간 과거를 그리워하기보다,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 여기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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