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빛인지 눈의 결정체인지 알 수 없는 반짝이는 밤하늘이 참 아름답다.
그 밤하늘 아래 설원이 펼쳐지고 작은 마을인 듯 나무들과 집들이 그려져 있는 그림 속에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하키'와 관련된 그림이 있는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평온하기만 할 것같은 작은 마을 '베어타운'
책장을 열어 읽기 전까지는 그 속에 드리워진 어둠을 알지 못했다.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오베라는 남자」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등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 「베어타운」의 첫장이다.
늘 우리에게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주는 그였기에 "시작부터 뭐지? 미스터리 소설인가?"라는 섣부른 판단을 하였다.
하지만 모든 소설은 끝까지 읽어봐야 하는 법...

'하키'라는 스포츠, 그것이 시작이였다.
작은 마을인 '베어타운'은 하키가 전부였다.
점점 쇠락해가는 마을의 유일한 희망은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의 승리.
과정보다는 결과, 구단이 원하는 것은 승리 뿐이였고 그것을 위해서는 코치 교체도 서슴치 않는데...
이는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경기에 패하는 경우에는 감독의 경질도 서슴치 않는 스포츠계의 모습이기도 했다.

우리도 한때 스포츠에 온 국민이 열광한 적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 온 국민이 붉은 물결을 이루며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외치고 하나같이 승리를 외쳤던 그때의 함성과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벅차고 떨린다.
스포츠는 그런 것이다. 흩어져있던 마음을 모으기도 하고 찰나의 순간을 위해 온 국민들이 두 손 꼭 모으고 간절히 응원하며 울고 웃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살아남는자와 살아남지 못하는자,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할 뿐 중간은 없다.
실력을 인정받고 부각이 되면 스타덤에 올라서 부유한 생활을 하고 그렇지 못한 경우 이름조차 모르고 묻히게 되는 것.

하키는 반복의 보상이 따르는 종목이다. 골수에 새겨진 본능적인 반응이 될 때까지 똑같은 훈련, 똑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중략) 빙판 위에서는 방향과 생각을 누구보다 빨리 변경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최고의 선수와 그 나머지라 분리된다.
- 56p

페테르는 묻는다.
"그럼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바라는 게 뭘까요? 그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뭘까요? 거기에 평생을 바쳐서 얻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뭘까요? 찰나의 순간들....몇 번의 승리, 우리가 실제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몇 초의 시간,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그리고 그건 거짓말이에요.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정적을 깨고 라오나는 말한다.
"스포츠가 우리에게 주는 건 찰나의 순간들뿐이지. 하지만 페테르,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인생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과정보다는 오로지 결과 즉 승리만을 강조하는 구단, 하지만 강적을 상대로 싸워야하는 하키 청소년팀을 생각하면 고뇌가 많은 페테르, 하키가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더 나아가 스포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은 승리만이 아닌 인생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사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뒤에 일어날 사건을 예상하지 못했다.

베어타운에는 청소년 아이스하키팀이 있다. 팀의 에이스이자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케빈을 중심으로 아이들은 구단과 마을 사람들의 염원대로 승리만을 위해 노력하고 강자를 상대로 치룬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승리를 하면서 마을은 축제분위기로 아이들도 축하 파티를 가진다.
하지만 이 축하 파티장소에서 베어타운 하키단 단장인 페테르의 딸 마야가 케빈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이 일은 한 아이의 인생뿐 아니라 하키만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베어타운에 위기를 가져오는데...

그들은 죽을 때까지 자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당신 잘못이 아니야. 페테르, 하키 때문이 아니야.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던가?"
그녀는 속삭인다.
"어쩌면 그게 문제일지 몰라. 우리가 마을을 잘못 고른 걸지 몰라."
그가 대답한다.

정말 그들은 삶의 터전이라 여기며 온 베어타운이라는 공동체를 잘못 선택한 것일까?
마을의 명성을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며 숨기기에 급급하고 옳은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잘못된 선택에 동조하는 공동체라는 이름하에 이루어지는 범죄행위와도 같은 일들...
이 문제는 비단 베어타운에서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씁쓸함이 들었다.

상당한 두께의 소설이였음에도 프레드릭 배크만의 특유의 스토리 전개 방식 덕분인지 "언제 이 책을 다 읽지?"에서 시작한 것이 "벌써 끝났네"라고 말할 정도로 중반을 넘어서면서 몰입하며 읽어나갔다.

사건 이후에 전개되는 스토리에서는 분노하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 프레드릭 배크만 특유의 문체와 명대사들 덕분에 빠른 속도로 읽어나갔으며, 소설이 끝났음에도 여운이 오래갔다.
이 소설은 나에게 「오베라는 남자」이후 좋아하게 될 또 하나의 작품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