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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위의 악마 ㅣ 창비세계문학 51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16년 10월
평점 :
독립 이후의 케냐, 상사의 유혹을 거절하다 직장에서 잘리고, 애인은 떠나고, 집세때문에 집에서도 쫓겨나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와링가는 고향 일모로그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도둑질과 강도질 경연 대회’라는 모임의 초대장을 받고 일모로그행 소형버스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과 함께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악덕 지배층의 주민 착취와 외세결탁을 뽐내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시민들과 습격하게된다.
체포를 피한 와링가는 2년후 독립적인 여성으로 변모하며 결혼을 위해 시부모를 만나는 중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경연대회 장면의 구전 문학적인 서사는김지하의 오적에서 영감을 받아 썼다한다.
서구열강과 지배계급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풍자를 담은 작품.
감옥에 갇혔을때 휴지위에 썼다.
많이 진보했다지만 우리가 겪어온 실상과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되고 마지막 반전은 작가가 독자를 기만했다고 밖에;;;;
문제는 이거예요. 땅도 내 것이 아니었고, 땅을 사기 위해 지불 했던 돈도 내 것이 아니었고, 그 땅에 내가 뭐 한 거라고는 아무것 도 없는데 22만 실링이라는 돈이 대체 어디서 생긴 걸까요? 민중 의 주머니에서 나온 거죠. 그래요, 땅도 원래는 민중 거였고, 내가 땅을 산 그 돈은 민중한테서 나왔으니까요! 내가 한 일이라고는 그것들을 이사람 손에서 저사람 손으로 옮겨놓은 것 뿐이죠.약간의 곱셈을 한 뒤 거기서 나온 대답을 내 주머니에서 챙긴겁니다.
p. 175
˝미스터 체어맨, 우리는 서로에게 모욕을 주려고 여기 모인 게 아닙니다. 서로를 업신여기며 빈정거리려고 모인 게 아니란 말입 크 니다. 지저분한 쓰레기 같은 소리나 듣자고 여기 오지 않았습니다. 현대판 도둑질과 강도질의 과학적인 기술에 있어서 누가 가장 뛰 어난지 그걸 밝히는 대회에 참여하려고 이 동굴에 모인 것입니다. 우승의 행운을 차지하는 사람은 외국 소유의 금융회사나 공업회사 의 관리인으로 임명될 것이고, 그렇게 해서 외국인 주인의 자산을 늘려주면서 동시에 자기 배도 불럴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누가 이기게 되는지는 전적으로 행운의 여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므 로 모욕을 던지는 식으로 그 결과를 미리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봅 니다. p. 197
오늘날 모든 산업과 교역은 돈이 지배합니다. 돈이야말로 이 지구상의 도둑질과 강도질의 병력을 전부 이끄는 총사령관인 거죠. 최고의 자리에 돈이 있습니다. 돈이 세계를 지배 합니다. 우리는 여기 이 나라에서 여러분들이 국제적인 도둑과 강 도 사회의 눈과 귀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비법을 좀 알려줄까 해 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정치적으로 순진한 저따위 소 리나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길 줄도 모르면서 걸어다니겠 다고 나대는 도둑들과 강도들하며, 이 장사를 시작한 지 한참 된 사람들이 지금껏 다 훔쳐서 쟁여놓은 약탈품을 시샘하는 도둑들과 강도들이 떠드는 소리 말이죠. 우리가 여기에 왔을 때는, 전세계의 도둑들과 강도들은 연령이나 혈통이나 국적 등을 막론하고 하나의 계급에 속해 있으며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숙지하 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우리는 프리덤을 믿 습니다. 각자 능력에 따라 훔치고 강탈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p. 289
음와우라가 집어삼킬듯 탐욕스러움이 가득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곧 그런 식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 이 비단 음와우라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이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느 한 도둑이 입을 벌리며 하품 만 해도, 가투이리아의 눈에는 그의 이빨이 피로 범벅이 된 송곳니 로 변하여 자신과 와링가가 앉아 있는 쪽을 향해 번득이는 듯했다. 이자들은 인간의 살을 뜯어먹는 놈들이야. 이자들은 인간의 피를 마시는 놈들이야. 이들이야말로 현대판 은딩구리야. 이 여자를 데 리고 여기를 벗어나야 해. 하지만 마음속 다른 한편에서는 도망가지 말아야 한다는 이 잔 치가 어떤 식으로 끝장났는지 나중에 사람들이 지어내는 소리나 듣지 않으려면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 에 여전히 전문적인 살인자들과 인간 살을 뜯어먹는 자들이 있다 는 얘기를 듣는다면 가투이리아 자신도 믿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
p. 293
오늘날 아이들은 절대로 민중의 요 구를 보지 못하고 그들의 외침도 듣지 못하도록 모두 눈감고 귀 막는 것만 배우고 있으니 말이지. 전에는 소리를 들을 수 있 던 사람들도 귀가 먹어버렸지. 그래서 그런 학교를 나온 사람 들을 가리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거라고. 이 세대에 재앙이 닥쳤으니,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고 귀가 있어도 들을 수가 없 구나!
p. 310
이제 와링가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힘차게 걸어다닌다. 검은 두눈동자에는 내면의 담대함이 발산하는 빛, 삶의 확고한 목적을 지넌 사람들의 용기와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렇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뭔가를 성취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단호함과 용기, 믿음 말이다. 자기 나라에서 주눅이 들어 축 늘어진 채 다닐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와링가, 검은 보석! 삶의 여정과 조화를 이루며 리듬에 맞춰 걸어가는 두 손과 몸, 정신과 마음을 지닌 와링가! 노동자와링가!p364
˝혈연관계가 뭔데요?˝ 가투이리아가 약간 불편한 기색으로 묻는다. 사람이 닮고 안 닮고가 뭐가 중요해요? 애들은 그냥 애들이죠.우리 모두는 케냐라는 하나의 자궁에서 태어났어요. 자유를 위해흘린 피가 이 종족이니 저 종족이니, 이런 국적이니 저런 국적니 하는 차이들을 모두 말끔히 씻어 없앴다고요. 이제는 루오라든지 기쿠유, 캄바, 기리아마, 루히야, 마사이, 메루, 칼렌진, 투르카나같은 건 없어요. 우리 모두는 한 어머니의 자식이에요. 우리 어머니는 바로 케냐, 모든 케냐 사람들의 어머니지요.˝p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