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스토너가 영문학도가 되어 교수로 슬픔과 고독으로 견디며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다 스러진 이야기?
쉽지않은 삶이었지만 비루한 인생도 아니었다.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한 아내 이디스와의 관계는 막혀있고
윌리엄은 침대로 가까이 다가갔다. 이디스는 곤히 잠들어있었지만, 빛의 장난 때문에 살짝 벌어진 입술이 소리 없이 열정과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한참 동안 선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련한 연민과 내키지 않는 우정과 친숙한 존중이 느껴졌다. 또한 지친 듯한 슬픔도 느껴졌다. 이제는 그녀를 봐도 예전처럼 욕망으로 괴로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는 일도 다시는 없을 터였다. 슬픔이 조금 가라앉자 그는 그녀의 몸에 부드럽게 이불을 덮어주고 불을 끈 뒤 그녀 옆에 누웠다.p141
좋아하는 전공에의 몰입과 가르치는 일만 하고 살도록 주변에서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의 말투에 자신감이 붙었고, 그의 내면에서는 마스하면서도 단단한 엄격함이 힘을 얻었다. 10년이나 늦기는 했지만이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차츰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자신은 예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훌륭하기도 하고 더 못나기도 했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교육자가 된기분이었다. 자신이 책에 적은 내용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어리석음이나 약점이나 무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예술의 위엄을 얻은 사람. 그가 이런 깨달음을 입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깨달음을 얻은 뒤에는 사람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누구나 알아볼 수 있었다.p160
사근하게 말했다. ˝내가 그 질문을 조금 확대시켜도 괜찮겠소?˝ 그는 홀랜드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재빨리 워커에게 시선을 돌렀다. ˝워커 군, 홀랜드 교수의 질문에 함축된 의미, 즉 고드윈이 지식의 놀라운 본질에 대한 로크의 이론, 즉 타불라라사(tabula rasa,빈 서판 또는 백지상태-옮긴이) 등을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정열이라는 우연과 무지로 인해 위조된 지식과 판단력을 교육으로 교정할수 있다는 로크의 믿음을 고드윈도 함께 했는지와 관련해서, 셸리의 지식 원칙, 특히 <아도네이스>의 마지막 연에 천명되어 있는 미의 원칙에 대해 논평해보게p218-219
때늦은 사랑이 찾아오지만 불륜의 덫을 벗지 못하고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스러운 향수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p274
늦겨울과 초봄에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고요함을 맛볼 수 있었다. 바깥세상이 점점 조여 들어오는 동안두 사람은 그 세상의 존재를 덜 의식하게 되었다. 함께 느끼는 행복이 너무 커서 바깥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작고 침침한 캐서린의 아파트, 육중하고 날은 주택 밑에 동굴처럼 숨어있는 아파트에서 두 사람은 시간을 벗어나 자기들이 직접 발견한 시간을 초월한 우주에서 살고 있는 것같았다.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아도 후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늦은오후의 부드러운 햇빛을 받은 그녀의 얼굴이 주름 없는 젊은 얼굴처럼 보였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더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무정한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좀 더사랑했더라면. 아주 먼 거리를 움직이는 것처럼 그의 손이 이불 위를 움직여 그녀의 손에 가 닿았다.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뒤 그는 스르르 선잠이 들었다.p384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지막에 이른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ㄷ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없는 생각이었다.p390
스토너가 악의 무리(이디스, 로맥스,찰스 워커)를 놀라운 지혜와 용기로 무찌르고 사랑하는 사람들(딸과캐서린)을 행복의 세계로 이끄는 상상하지만 작가와 스토너는 끝까지 나의 기대를 배반했다. 스토너는 계속 참기만 하는데 악의 무리는 승승장구했다. 상황을 단번에바꿔주는 극적인 반전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몹시 아쉬워하다가 결국 깨달았다. 독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수수한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는 것. 그는 죽음을 앞둔 병상에서 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되뇐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의 삶이 애잔하지만 그를 섣불리 실패자로 낙인찍을 수없는 것은 바로 이 질문 때문이다. 그는 삶을 관조하는 자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그가 자신의 실수 또는남의 잘못으로 인해 겪는 고난은 누구나 살면서 몇 번이나 겪게 마련인 고난의 사례일 뿐이다.
여기에 작가가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제시해주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역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