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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ㅣ 창비청소년문학 140
단요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평점 :
캐리커처』를 읽은 후 들었던 생각.
같은 고민을 가진 친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런 친구를 곁에 둔 친구들도,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선생님들도 읽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냥 모두가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구나 갖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편견을 지니고 있다.
늘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보여줄 때조차 한 면만을 왜곡해 보여줄 때가 많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꼭 읽어야 할 ‘작가의 말’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말'이나 '해설'도 열심히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작가의 말' 정말 꼭 읽어야 한다.
"대중 매체는 내 유소년기가 불쌍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안쓰러운 아이가 바깥 세상의 관습을 받아들이는 장면을 통해 감동과 위안을 얻고자 한다." (p.163)
자신 역시 이방인으로 살아왔던 경험이 있는 작가는 고통이나 희망만 단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당사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 진짜 감정을 표출하는 이야기를 쓰고자 한 것이
이야기에 잘 녹아 있다.
“나는 누구인가” – 이주 2세의 정체성 고민
『캐리커처』는 스리랑카 청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라,
스리랑카 출신 어머니를 둔 한국 청소년 ‘김주현’의 이야기이다.
주현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그가 서 있는 자리는 단단하지 않다.
주현의 어머니는 상황에 따라 여러 얼굴을 지닌다.
때로는 어수룩한 외국인으로, 때로는 잘나가는 해장국집 사장님으로,
또 때로는 수험생을 둔 평범한 한국 어머니로 살아간다.
어머니는 스리랑카로 돌아갈 생각도 없으며 주현에게 스리랑카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주현은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세계 속에서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우리가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너한테 허락된 배역은 이것이고,
네가 넘어올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라며 세상 전체가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p.82)
복잡한 청소년 세계의 리얼리티
『캐리커처』는 ‘다문화’라는 주제를 넘어, 복잡한 청소년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등장인물은 모두 남학생 네 명: 주현, 승윤, 노아, 요한.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힘의 균형, 자존심, 서열이 얽힌 작은 사회다.
게임을 하는 장면 하나에도 보이지 않는 위계가 숨어 있다.
내가 익숙하게 지내온 여성 중심의 관계와는 다른 남학생 세계의 논리, 그 속의 미묘한 권력 다툼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어
그 세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들간 쌓여가는 갈등과 서로 다른 접근, 4명이 서로 다른 조합으로 맺어지는 관계성
과연 이 갈등이 어떻게 해결될까하는 조마조마함 덕에 이야기 흐름 자체가 재밌다.
경계 위의 관계들
주현은 비슷한 배경의 친구들과 있는 동네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냈지만,
호주에서 돌아온 ‘승윤’의 등장으로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승윤은 백인 사회에서 비주류로 살아본 경험을 가졌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새로운 권력 구조 안에서 우위를 점하려 한다.
그는 친구들을 ‘동남아’, ‘반군’이라 부르며 서열을 만든다.
“진짜 문제는 우리가 얕보인다는 사실 자체일 텐데,
사람들이 아프리카와 중동과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게
왜 이토록 언짢은지 모를 일이다.” (p.38)
주현은 실상 참지 않는 성정이지만,
대치동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승윤의 가족에게 도움을 받으며
새로운 관계 속에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관계의 불균형’과 ‘은근한 경계’가 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간단하다…
하지만 친구끼리 호의를 주고받는 일에는 마법 같은 구석이 있다.
그 사슬의 이름은 관계다.” (p.114)
보이지 않는 선
‘대치동’이라는 낯선 공간은 주현에게 또 다른 세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철저히 ‘다른 존재’로 인식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능력으로 인정 받을수 있을까? 싶더라도 계속 선이 느껴진다.
필리핀에서 온 요한은 자신이 필리핀에 남아 있었더라면 자신이 많이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강점조차도 놀림감이 된다.
“그건 사실 실력 때문도 아니고 발음 때문도 아니었던 거야.
그냥 내가 욕먹을 애로 정해져 있었고,
그래서 내가 하는 건 뭐든 욕먹을 일이 된 거야.” (p.135)
이 문장을 읽을 때, 나도 모르게 ‘요한’을 단편적인 인물로만 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끊임없이 묻는다.
“과연 내가 이 문제에서 타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주현의 시선, 그리고 우리의 얼굴
주현은 상황에 따라 편견 어린 시선이 요구하는 모습을 선별해 보여준다고 믿지만,
사실은 주현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초상화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캐리커처』는 다문화와 이주 청소년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보다 더 깊이 정체성, 관계, 그리고 사회의 모순을 들여다본다.
이방인의 시선을 빌려 우리 모두가 지닌 편견의 얼굴을 비춘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타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책장을 덮고
주현과 함께 나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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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리 가까워지더라도 너한테 허락된 배역은 이것이고,
네가 넘어올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라며 세상 전체가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 P82
진짜 문제는 우리가 얕보인다는 사실 자체일 텐데,
사람들이 아프리카와 중동과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게
왜 이토록 언짢은지 모를 일이다 - P38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일은 간단하다…
하지만 친구끼리 호의를 주고받는 일에는 마법 같은 구석이 있다.
그 사슬의 이름은 관계다 - P114
그건 사실 실력 때문도 아니고 발음 때문도 아니었던 거야.
그냥 내가 욕먹을 애로 정해져 있었고,
그래서 내가 하는 건 뭐든 욕먹을 일이 된 거야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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