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편에서 이리가 오늘의 젊은 작가 53
윤강은 지음 / 민음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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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았던 점

저는 생존이 주된 목적이 된 시기에

사람들이 인간성을 잃어가고

폭력이 가해지는 피폐한 이야기들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디스토피아 배경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에 조마조마했어요.

하지만 그런 비인간적인 욕망을 전면에 대두해놓는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담담한 문체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성장해 나가고

살아가야 할 의미들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위로가 되었어요.

물론 전쟁이 터지고,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던 세 지역의 균형이 위험해지고

아픔이나 갈등도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놓지 않는 이야기가 좋았어요.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오늘의 작가 상 심사평'이었던

"이 소설은 생존주의 시대에 어울리는 사랑을 재발명하는 다양한 모색이 기억에 남았다"

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어요.

생존하지 않으면 잊히는 시대에

'기억'이 계속 이야기를 관통하는 느낌을 줘요.


2. 분위기

이상하게도 첫 장을 펼쳐 읽으면서 무협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전 무협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답니다...?)

다만 무협 소설 속 강한 자들이 주인공이 아니며

무협 소설 속 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인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세 마을을 주축으로 하고 있으며, 이동과 만남이 이루어지고

생존에 유리한 특별한 비기를 가지고 있지 않는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해서 그런 기분이 들었나 봐요.

3. 이야기 배경

대멸종 시대, 한반도에는 서로 다른 성격의 구역이 존재하고 있어요.

압록강 부근에서는 전쟁을 대비하는 군사지역이.

한강 부근에는 철강을 생산하는 공장 지대가,

그리고 남해안 지역에는 식량과 물자를 생산할 수 있는 온실 마을이 있어요.

각 지역의 물자 교류는

짐꾼들이 한반도를 횡단하면서 이루어지고 있어요.

이동 수단은 개 썰매.

온실 마을의 '유안'이 한강 지대와 압록강 지대를 오가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압록강 너머에는 '대륙'이 있고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고 있어요.

군사력과 생산성은 대륙이 월등하기에

한반도 지역에서는 긴장감을 놓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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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다시 읽고 싶어요.

#도서제공 #오늘의_작가상



지구의 온도는 더 이상 사람들을 주저앉히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구의 온도에서 관심을 거둔지 오래되었다.

기온의 자잘한 변화는 그들에게 아무런 동요도 안기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이 책을 어째서인지 도진은 버리지 못했다.

그리고는 자기는 요절할 것이라고 농담하는 유안에게, 책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방구석에 처박아 둘 유안에게 도진은 생명 도감을 맡겼다.

굳이 펼쳐 보지 않아도 되니 반드시 지키기만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도 이리를 실제로 본 적이 없을까.

이리의 실체를 모르는 것일까.

실체 없이 이름만 남겨진 존재.

유안이 우연히 생명 도감을 펼쳐 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이름조차 알지 못했을 존재.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아버렸지만, 그렇지만, 기억하는 게 훨씬 나아요.

그 사람의 기억이... 나와 같이 살아 주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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