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은 절하는 곳이다 - 소설가 정찬주가 순례한 남도 작은 절 43
정찬주 지음 / 이랑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때는 수련회, 철야기도회, 반사생활, 성가대, 반사생활까지 했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도 가까운 산사를 찾으면 일주문에서부터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기분은 마치 고향에라도 온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종교적 이유로 합장의 예를 하지는 못했지만, 왠지 낯설지 않은 것을 넘어서서 친근한 느낌은 우리나라의 역사에 불교가 오랜 기간 함께 한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내 정서 깊은 곳, 혹은 <절은 절하는 곳이다>저자의 인연처럼 전생의 인연이 닿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는 자주 하게 되었다.

단지 알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불교관련 지식을 수집하지는 않았을 터, 하나 하나 알아가는 불교지식은 내게 언제나 남이 모르는 잔잔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작년 이른 여름에 남도의 작은 절 미황사에서 경험했던 템플스테이는 불교를 대하는 나의 마음자세에 그 어떤 분수령이 되었다.

이제는 작은 산사를 방문하게 되면 법당에 성큼 들어서서 부처님께 삼배 올리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복된 행동이 되어 버렸다. 스님을 향한 합장도 마음으로부터 스스럼이 없어졌다. 

혹여 누가 불자냐고 묻는다면, 쉬이 그렇다, 고 답하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아마도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절은 절하는 곳이다>라는 읽으며 그 마음은 더욱 더 두터워졌다.

 

이 책을 쓴 정찬주님은 <인연>,<암자로 가는 길>,<뜰 앞의 잣나무>로 익히 알고 있던 분이다. 눈 밝은 독자들은 미처 이분의 책을 읽진 못했더라도 불교서적과 깊은 관련이 있는 분이라는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절은 부제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절이 아닌 작은 절 위주로 소개되어 있다.

절과 인연이 깊은 저자는 당연히 많은 스님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불교사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안목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문장까지도 갖춘 수행자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소설가로, 최고의 문장가로도 불리는 저자이지만 이 책 속에서 언뜻 비치는 그의 모습은 수행자에 가깝다.(그는 무염이라는 법명까지 갖고 있다).

 

누구보다는 절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저자의 마음이 43곳의 절을 소개하는 모습에서 절절히 느껴진다. 절의 역사, 불사를 일으킨 스님들의 이야기, 주변 산세, 풍수, 차문화, 중국불교와의 인연, 교류, 그의 불교 관련 지식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리고 부럽기까지 하다. 깊은 내역을 알고 만나는 산사는 그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까.

 

소개되는 절 중에는 적은 수지만, 내 발길이 닿은 곳이 몇몇 보인다. 이름만 들어본 절들도 상당하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절은 더 많다. 내 사는 곳에서 먼 곳에 자리잡은 절이 그렇다. 그래서 궁금하고 더 끌린다. 같이 실린 사진들은 이런 내 마음을 자꾸만 유혹한다. 각 단락마다 말미에 교통편을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세상 사람들은 우연을 보고 놀란 뒤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그것이 필연인 줄 안다."(91p)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당장 답을 알려고 조급증을 내곤 한다. 돌이켜보면 하찮은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부지기수인가.

과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오늘을 충실히 산다면, 삼라만상에 불성이 있다는 말 또한 잊지 않는다면 내 삶이 좀 더 온전할 수 있을까..이 또한 넘치는 욕심일까.

바야흐로 곧 봄볕이 온 누리에 축복처럼 쏟아질 터...연두빛 새순이 돋는 산사를 손꼽아 가며 돌아봐야겠다. 그 때 필히 이 책을 도반으로 삼아야겠다.

 

" 어느 절을 가든지 나는 물과 기름 같은 두 가지의 감정을 경험하곤 한다. 하나는 오래된 전각과 당우들이 주는 푸근함이다.

주름살이 진 목조건물은 심장의 박동을 느슨하게 한다. 그런 감정을 행복감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토담이나 이끼 낀 돌담과 허술한 돌계단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또 하나의 감정은 무상감이다. 처마를 스쳐가는 바람이나, 마당에 떨어져 있는 햇살이나,

나무들의 우울한 그늘 같은 것을 보면 문득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고작 이것인가, 하고 무상해진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같다고 자각되는 순간 현기증을 느낀다."(206p).

 

 

: 선방산 지보사의 문수스님 이야기는 속 시원하면서도 숙연한 감동에 젖게 했다. 작년 템플스테이에서 다담시간에 한 스님께 당시 세상을 놀래켰던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에 대한 질문을 했었는데, 당시 스님의 답변이 매우 실망스러웠기에 책속에서 드러나는 저자의 확고한 모습이 부족하지만 나의 견해와 일치했기에 작은 위안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