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비 독살사건 - 여왕을 꿈꾸었던 비범한 여성들의 비극적인 이야기
윤정란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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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과 왕비는 여염의 가시버시와는 엄연히 다르다.

그들은 다정한 부부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각자 자신의 정치적 세력을 등에 업은 냉혹한 정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왕과 왕비의 정치적인 기반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고, 왕비는 하늘아래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는 왕의 신하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왕을 폐서인이키는 것은 정변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왕비는 정치적인 기반이 없으면 언제든지 왕이나 신하에 의해서 그 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7명의 왕비들은 조선 500년 동안 추존되었거나 책봉되었던 왕비 총 44위중에서 정치적으로 독살당했다고 결론지어지는 왕비들만 추려내었다. 저자가 역사의 변방에서 그 한가운데로 불러낸 왕비들은 작은 혁명을 꿈꾸었거나 자신도 모르게 혹은 의도하지 않은 채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했던 여성들이다.  견고한 남성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당시 조선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그들의 비범했던 꿈을 접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그 비극적인 관점을 현실감있게 풀어놓고 있다. 

 

사가에 있을 때부터 원대한 꿈을 실현하고자 철저히 계획되고 절제된 삶을 살았던 소혜왕후 한씨는 <내훈>을 지어 여성들에게 유교적 여성관을 지키라고 주장하였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을 통해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써만 이용하였고, 결국은 절대권력을 꿈꾸는 연산군에 의해서 그녀의 꿈은 꺽이고 만다.

 

성종의 아내이자 소혜왕후 한씨의 손주며느리, 그리고 악명높은 연산군의 모후인 폐제헌왕후 윤씨. 그녀의 사사죄목은 왕의 권력을 넘보았다는 것이다. 정숙, 신실, 근면, 검소, 겸손 등 갖은 미사여구로 칭송받던 윤씨는 후궁에서 왕비로 책봉된 지 단 7개월 만에 흉악, 포악, 패역, 오만한 여성이라는 누명(?)을 쓰고서 사사된 것이다. 윤씨의 드라마틱한 이 인생의 여정에는 신숙주라는 정치적 배경의 생성과 소멸과 깊은 관계가 있다.

 

삶을 살해당한 왕비, 인목왕후. 선조의 계비이자, 영창대군의 모후인 인목왕후.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49세의 선조에게 시집을 온 인목왕후는 철저히 남성위주의 이데올로기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스스로 권력을 가지지 못한 채 왕비라는 위치가 오히려 군왕과 신하들에게 이용되기만 했을 뿐, 철저히 권력에 희생당했던 인목왕후의 삶을 돌이켜보면 조선조 왕비중 이렇게 비극적인 왕비가 또 있을까 싶다.

 

19세기 말까지 부정적인 평가로만 일관되었던 광해군은 오늘날 명과 청의 중간에서 탁월한 외교실력을 보인 '실리외교'왕으로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광해군과 그의 부인 유씨가 무속을 믿고 의존해야만 했던 비극은 세자 시절, 명의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에서 연유한다.

 

시아버지에 의해 제거된 새로운 세계관의 소유자, 소현세자빈 강씨.

강씨는 그녀의 아버지 강석기가 서인이라는 정치적인 이유로 간택되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없는 나라의 세자부부는 청의 포로가 되고, 이 사건은 훗날 인조와 세자와의 간극을 벌리게 된다.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과는 달리 실리주의를 추구하던 청에 있는 동안,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세자빈 부부는 인조의 박대를 받게 되고, 결국은 열등감에 사로잡힌 인조에 의해 이유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사대부들, 역사의 새 물결에 저주를 내리다, 희빈 장씨

숙종때는 그 이전 시대보다 신분제의 공고함이 많이 흐려지던 시기이다. 또한,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설화가 많이 남아 있는 시대이기도 한데, 하층민 출신들의 신분 상승에 대한 열망, 백성들이 새로운 세계를 강력히 희망하는 내용들이 그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희빈 장씨는 역관 아비와 천민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천민인 그녀의 왕후 책봉은 조선의 신분제를 뒤흔든 상징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숙종은 자신의 왕권강화를 위해 당파를 이용하고, 사대부들은 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그들과 같이 기득권을 향유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기에 민씨의 복귀를 도모하며, 장씨를 폐위에 앞장서게 된다. 결국 그녀를 죽인 것은 변화를 거부하는 사대부들과 이들에게 세뇌당한 백성들 뿐 아니라 신분제 그 자체인 것이다.

 

7명의 왕비 중 유일하게 황후로 거론되는 명성황후 민씨.

저자는 그녀를 진정한 국모가 되지 못했던 황후라고 규정한다.

사실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그 평가가 아직도 여러가지로 엇갈린다. 한미한 집안의 딸이었기에 흥선대원군에 의해서 왕비로 간택되고 이후 흥선대원군과의 대결구도에서 고종을 보좌하여 외줄타기 하듯 당시의 어렵고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풍미했던 명성황후는 유교적 여성관에 기인한 탓에 민중적 기반을 갖지 못하여 결국은 을미사변의 참변으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녀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서양인, 일본인들은 정치적인 역량이 뛰어난 여성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백성들의 어려운 처지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생존권마저 외국에 의탁했던 그녀는 백성들의 외면으로 죽음과 맞닥뜨리고 만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겉으로 보기에 왕비의 삶은 매우 화려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을 보다 상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냉혹한 권력의 암투속에서 하루하루 긴장을 풀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왕비의 자리. 이에 왕비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그 자리를 굳건히 하고자 팔을 걷어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결국은 화무십일홍이 아니겠는가...영원한 것은 없다. 이런 관점에서 왕비들의 스러짐은 어쩌면 세월의 흐름속에서 당연한 것일 뿐이다. 단지 여성이었다는 이유로 그런 결과에 이르렀다는 저자의 해석은 좀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된다.

여튼, 흥미로운 역사 재조명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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