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는 내가 살께

김 정원


말로만 듣던
고 3 생활이 매우 매운 모양이다.

9월 수능 모의고사가 끝나고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진로 고민을 삼키지 못해 속 앓는 아이와
속 풀이 위해 영산강 상류 뚝방에 올라
담양 진우네 국숫집에서
얼얼한 비빔국수를 시켜 먹는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갓 꺼낸
삶은 달걀 세 개도 추가한다

아름드리 느티나무 푸조나무 그늘이 식히는
뜨거운 고민을 한 알씩 나눠 먹고
담임 선생 노릇하는 내가 대신 소화해줄 수 없는
그의 몫인 든 남은 한 개를 슬그머니
발 앞어 밀어 굴리니
그가 겸연쩍걱 집어 들면서 말한다

제가 나중에 출세해 돈 벌면
선생님 모시고 국수 사 드리고
관방천도 함께 산책할 게요
그때까지 꼭 우리 학교에 계셔야 해요

졸업하고 17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았다

요즘도, 가끔, 학교생활이 버거운 아이들과
맛도 간판도 변함없는 그 국숫집에서
국수를 후루룩거릴 때면
나는 속으로 이들윽 대 선배에게 묻곤 한다

같이 국수 사 먹고 관방천 걷는 데도
출세까지 해야 하니?
나에겐 출세 못 하고 돈 못 벌어도 너이고
출세하고 떼 돈 벌어도 여전히 너인데

구두약속은 공소시효가 없으니까
혹 24번 국도를 지날 일 있거든
네 모교 한번 들르렴
국수는 내가 살께





춥지도 않고 햇살 화창한
오늘 같은 날.
관방천을 다녀 와야 했었나..
읽으면서 울컥
쓰면서 울컥
마음 아픈 이야기라고 하시던 그 분의 말이 떠 올라
끄덕 끄덕 거리며 읽었다

아침에 이번 기말 성적 안 오르면 미술학원 옮긴다고 협박? 했는데..
다니고 싶은 곳을 가는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기왕이면....
저 말을 해 놓고 찜찜했었는데.. ㅠㅠ
그래도 난 너의 엄마라고 억지로 합리화시키고 있었는데..
좀 더 두었다 읽었어야 했나?



내일 아침은 아이들 아침식사로 국수말아 줘야겠다
국수는 못 사주고 국수 말아는 줄께..
훌훌 삼키고 넘겨 버려라.







구별하기

김 정원


생선회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언젠가 가자미회를 먹으면서 그가 한 말이 생각나서, 나는 장흥 회진횟집 주인아줌마에게 물었다


제 친구가 그러던데, 광어와 도다리는 눈의 위치로 구별한다지요? 광어는 왼쪽에 눈이 달려있고, 도다리는 오른쪽에 눈이 달려 있다지요? 또, 그 친구가 이런 말도 해서 한 바탕 웃은 적이 있어요. 광어도 두 자, 왼쪽도 두 자, 도다리도 세 자, 오른쪽도 세자.
그건 당최 맞지 않는 소리랑께요. 허허, 살다살다 별소리 다 듣것네. 광어와 도다리를 눈 위치로 구별한다니, 나 원 참, 내가 보는 자리에 따라 이렇게 보면 왼 쪽에 눈이 있고, 저렇게 보면 오른쪽에 눈이 있는 것인디. 광어와 도다리는 그러코롬 나누는 것이 아니고, 주둥이를 보면 그냥 알수 있당께요. 광어는 이빨이 있고, 도다리는 이빨이 읎어. 나도 웃자고 오징어 먹물 같은 말 한 마디 하것소. 광어는 동글뱅이가 있고, 도다리는 동글뱅이가 없지라우, 인자 알것소?

아, 그렇군요. 그런데 동글뱅이가 무엇입니까?
반지 끼고 ` 이응`자도 모르니삼!

날카로운 이응에 찔려가면서 피와 땀으로 발견한 탁견이었다.


집을 그릴 때, 어설픈 화가는 지붕부터 그리고, 유능한 건축가는 주춧돌부터 그린다지, 나는 모래 위에 세운 화가, 그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건축가였던 것


그 뒤로, 나는 한 번도 광어와 도다리를 혼동하지 않았고, 머리보다 손발을 더 믿었다.




재미있는 시다.
방송에서 속지말라면서 구별법 알려주던데
그 리포터는 저 아줌마를 못 만났나 보다 ㅋㅋ

나누고 가르고 구별하고
너와 내가 다르고 내가 너와 다른것이 아니라
틀렸다고 하기위해 나누고 가르고 구별하고..
광어나 도다리나 그냥 물고기일뿐..
안 나누고 살면 안 되나?
살다보니 다 쓸데 없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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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1-0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수능을 기다리는 수험생들은 심적 부담이 상당히 크고, 뉴스 때문에 무력한 기분을 쉽게 지우기 어려워할 겁니다. 한 두 사람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 마음이 어수선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11-02 23:10   좋아요 1 | URL
수능이 별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도 어수선합니다. 수시쓴 애들도 어수선해보이고..
이 좋은 시절을 걱정하고 초조해하느라 보내야 하는 이런 입시는 언제쯤 없어질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