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똑같은 조건에서 인간은 네발에서 두 발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인간은 떠도는 삶이 아닌 정착의 삶을 선택해서 문명을 이루게 되었다.. 이는 인간이 자연에 대해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직립 보행. 그리고 자연에 대해 어떻게 보면 금기에 대한 도전.

땅 아래만 바라봐야 하는 동물의 시선이 아니라 땅이 아닌 자연과 직면하는 시선.

이제는 직면의 단계가 아니라 정복,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의 단계일지도 모른다.

 

Never Let Me GO는 이런 인간의 오만일 수 있는 클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클론들의 이야기이다. 장기기증을 위해 만들어진 클론들. 클론이면서 클론이 아닌 것처럼 키워지는 클론들의 이야기이다.

인격을 가진 것처럼 굉장히 소중한 존재이면서 미래를 꿈꿀수 있게 희망을 실어주지만 그들에게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 때문에 모체를 위해 길러 지고 도네이션을 위해 보내지는 소모품일 뿐이다. 이들을 위한 모든 혜택과 누리는 것들은 모체의 건강을 위해 담보 잡혀 있는 것들이다. 최고의 도네이션을 받기위한.

책 속에 정확한 표현이 나온다. 의학재료를 공급하기 위한 존재. 재료. 최고의 의학재료를 만들기 위해 고급교육. 심지어 인성. 감정교육까지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헤일셤.

 

< Never Let Me Go> 에서의 클론들에게는 이런 선택의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주어질 이유도 없다.

태어난 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들의 성장에도 그들의 도네이션에도 그들은 선택할 기회가 전혀 없다.

그들은 인간처럼 살면서도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도 사람이라고 교육을 시켜야 되지 않겠냐고 하는 에밀리쌤도 그들에게 그런 교육에 대한 선택의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

인간이 만들어진 길 위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운명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들이다.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아이들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우리의 아이들도 이 아이들처럼 클론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클론으로 만들어 져서 인간의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 났지만 점차로 클론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무한 경쟁을 통해서 인격적인 대우보다는 소모품으로 길러지고 있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아니라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해서 이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권력과 기득권이라는 거대한 힘의 논리 아래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해주기를 바래지고 있는 것은 사실아닌가.

그들의 뜻대로 우리를 움직이기 위해 우리를..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할 틈도 없이 시험과 공부와 학원으로 몰아붙이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필요한 소모품이 되어간다.

시나브로 그들의 논리에 젖어 들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갈팡질팡한 상황 속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이런 저런 논리를 내밀면서 밀어넣기 까지 하고 있다.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으면서 아이들에게는 이 길이 지금은 가야할 길이고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 오라면서 그들을 막다른 골목에 넣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길이 아닌 곳을 갈 수도 있는데... 길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헤일셤의 아이들에게 미래가 결정되어 있듯이..

공부를 잘하면.. 대학을 가면.. 졸업하면.. 취직을 하면... 하지만 남는 것은 ..

엘리트의 코스대로 밟아가면 그것도 그들의 고급 소모품. 루저의 코스를 밟아가면 그것은 그들의 하찮은 소모품..

아무리 아니라고 우리는 인격을 가졌다고 우리에게도 삶의 선택권을 달라고 이야기해도 이미 짜여진 판 속에서 헤매나올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지금의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헤일셤이 떠오르는 것은 과한 생각은 아닌듯하다.

 

우리 어른들이 헤일셤의 선생님일수도 있고 소위 갑이라 불리는 것들이 헤일셤의 선생님들일 수도 있다. 마담일까. 뭔들 달라질까. 즉 우리가 토미나 캐시일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이 토미나 캐시일 수도 있다.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청년들 이야기할 때 청소년 문제를 이야기할 때 대학입시를, 등록금을 이야기할 때 심지어 서민정책을 이야기할 때 그 탁상에는 청년들이, 청소년들이. 대입을 보는 학생들이, 돈을 내는 학생들은 대다수인 서민들은 그 탁상에 오르지 못한다. 헤일셤 그 자체가 아닐까 ..

심지어 사랑이나 감정마저 박제 당하는 헤일셤의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다를까. 빅테이터라는 말로 우리의 모든 것이 수집되고 읽혀지고 판단되어지고 그리고 규정되는 것.. 헤일셤의 아이들의 모든 활동들이 지금의 빅테이터가 아닐지..

허황된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루시선생이 너희가 앞으로 삶을 제대로 살아내려면,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각자 앞에 어떤 삶이 놓여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한 말,

토미가 에밀리 선생을 만나고 나서 캐시에게 한 말..

그래도 루시선생이 맞았다고...

 

책속의 아이들에게도 클론으로써 그들의 삶이 어떻게 될 것 인지 알려주고 그 것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주어졌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모든 것을 알고 난 토미가 한 선택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만약 토미가 좀 더 빨리 알았다면 더 지난 세월들을 알차게 보냈을까.

 

이것이 선택이라는 것의 힘이 아닌가 한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든 그들의 선택이었다면 캐시에게서 보여지는 그런 쓸쓸함. 토미에게서 보여지는 헛헛함. 그런 것들이 아닌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라는 생각이라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토미나 캐시, 루스 그들이 클론이든 아니든 그들에게 그들 앞에 놓여진 여러 길들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고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를 바랬 듯이 우리의 아이들.. 아니 우리들에게도 우리 앞에 놓여 진 여러 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 중에서 가장 최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으면 한다.

지금 우리가 답답한 이유는 선택의 길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세상사는 것에 조금은 알 것도 같은데.. 나에게 주어진 길은 내가 선택할 길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내가 길이 보이지 않으니 소위 엄마니까 보호자니까 니들이 세상을 알어? 등 여러 이유로 길 위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리케이트를 치지 지 못하는 학벌주의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마음등등.. 이 무의식저으로 튀어나올 때 마다 흠칫 놀란다. 어설픈 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어설픈 자유가 그들을 망칠 수 도 있고 잘못하면 벗어날 수 없는 패배감을 안겨 줄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도 작품 속에서도 잘 보여준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그들이 가야만 하는 운명에 대해 입을 다물고 희망을 안겨주고 미래를 꿈꾸게 하겠지.. 헤일셤의 선생님들처럼.. 너희들은 선택받은 클론들이야.

 

아이들에게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미미하나마 아이들이 그들의 힘으로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게 한다면 그들도 그들의 삶에 자신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삶에 부끄럽게는 느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는 루시 선생의 말과 비슷한데.. 나도 결국 이상주의자인가?

하지만 에밀리 선생이 말한 데로 그래도 너희는 헤일셤에 있었기 때문에 보호를 받았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어 라고 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지금은 그렇게 했어야 했나? 싶을 때가 있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캐시가 베개를 안고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 작품의 제목이자 노래제목인 <Never Let Me Go>를 들으면서...

이 장면을 마담이 보고 흐느낀다.

작품의 마지막에 같은 장면이지만 다른 것을 연상했던 소름이 돋았던 장면.

 

내가 흐느꼈던 것은 전혀 다른 이유에서 였어. 그날 춤을 추는 너에게서 내가 본 건 좀더 다른것였다. 나는 빠르게 다가오는 신세계를 보았지. 과거의 질병에 대한 더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그래 더 많은 치료법을 말이야. 맞아. 거칠고 잔인한 세상이지. 나는 어린 소녀가 두 눈을 꼭 감은채 과거의 세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자신도 알고 있는 과거의 세계를 가슴에 안고 있는 것을 보았어. 그걸 가슴에 안고 그애는 결코 자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지. 나는 그 장면을 바로 그렇게 본거란다”     - 마담의 말 -

 

 

 

어딘가에 있는 물살이 정말이지 빠른 강이 줄곧 떠올라. 그 물속에서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서로 부둥켜안지만 결국은 어쩔 수가 없어. 물살이 너무 강하거든. 그들은 서로 잡았던 손을 놓고 뿔뿔히 흩어지게 되는 거야. 우리가 그런 것 같아. 부끄러운 일이야. 캐서 우린 평생 서로 사랑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어.”....

......

이건 수치스러운 일이야. 캐시" 그가 다시 말했다.

" It's a shame, Kath"

 

흐르는 물살이 빠른 강. 뿔뿔히 흩어질 수 밖에 없는 그들의 운명  

수치스러운 일,

작품 말미의 토니의 말이다. 네 번째 기증을 앞두고 간병을 하겠다는 캐시에게...

작가의 말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캐시의 간병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 너희들이 하는 지금 하는 일이 그 일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나는?

 

수치.. 부끄러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책 읽기가 힘들어진다.

한장 한장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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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12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지금행복하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오늘도 퀴즈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