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수염을 가진 남자
스티븐 콜린스
연필화.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주는 연필화.
반듯반듯 . 단정단정. 깔끙 깔끔 ˝여기˝
동경은 하되 아무도 살고 싶어하는 `여기`
호기심마저 사라져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된 ˝저기˝
여기에서 여기의 그림을 그리던 한 남자가
저기의 것을 갖게 되면서
여기를 저기로 만들뻔한 이야기.
바로 저기로 갈수는 없겠지만..
한 발 나아가다 두 발 물러설 수도 있지만
이미 저기의 맛을 본 여기의 것들은 저기의 맛을 잊기란 힘들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여기가 저기가 되어가겠지?
그럼 `여기`는 없어지는 걸까?
과연?
`여기`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이유가 `저기`를 저렇게 만들어 놓은 이유와 일맥상통하기에
`여기`가 `저기`가 되면 또 다른 `여기`가 만들어질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여기`를 `저기`로 바꿔야 하는건지
바꿀수나 있을까?
`저기`로 훌쩍 가버려야하는 건지...
여기가 싫어서 저기로 간다는 말은 하기 쉽지~
그것 마저 큰 용기가 필요한데
욕망을 박제당하는 `여기`에서 과연 가능할까.
여기가 최고의 그곳이라고 세뇌당하고 세뇌시키고 스스로 세뇌하고 살고 있겠지.
가끔 돌연변이 처럼 `저기`의 것이 들어오면 받아들이는 척 하다가 다시 더 `여기`의 것을 강화시키면서.
여기와 저기는 그런식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꾸면서 존재해오고 있을것이다.
내가 있는 곳은 `여기`일것이고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가지못하는 곳은 `저기`일테니. 여기에서 만족하는 사람은 여기가 바로 저기일테고
여기를 저기로 바꾸고 싶은 사람은
`저기`로 바꿨다고 생각하면서
또는`저기`로 바꾸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여기가 저기고 저기가 여기니까..
아니 그래야 한다.
여기를 여기로 기어이 만들고 싶어하는 여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그들의 논리에 놀아나지 말고..
나누고 가르고 편싸움시키고.
속닥속닥 수근수근 ..
숀탠의 그림책을 흑백으로 보는 느낌
그래서일까 좀 아쉬움이 남는다
생각보다 맹숭맹숭한다는 느낌.
어? 이게 다야?
좀 더 뭔가 있어야 하는데..
그 뭔가가 뭔데?
그건 나도 모른다 ㅎㅎ
자꾸 묻는다
너는? 너는 다르니?
너는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그것마저도 여기의 사고방식이야..
착각하지마.
그런가? 그렇겠지? 그럴거다.
나는 남들과 달라..
나는 거대한 수염을 가진 남자라고 착각하고 사는것일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