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작은 언덕을 넘고 있다
아니 넘었다
혼자 넘는 언덕이 아니라
같이 넘어야하는 그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미 그 아이는 언덕을 넘어가 버렸다
나는 이제 넘어가려고
같이 가겠다고 손을 뻗는데..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아이
부모로서 조금만 손을 넣어주면 쉽게 해결되는걸 알고있고
그래서 도와주겠다고 했는데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아이.
특히 학교일은 자신의 선에서 해결하겠다는 아이.
작년부터 계속 듣는 이야기.
학교일은 되도록 내 선에서 해결할거야.
음. .... ..
오늘도 그 아이는 내 고민을 무색하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왔다.
자신이 느낀 부당함과 억울함.
일주일을 넘게 담임하고 실랭이를 해왔던 아이.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도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못함을 느낀 아이.
억울하고 분해도 학교라는 거대한 벽과
무례한 폭력에 울분만 토할 수 밖에 없었던 아이..
그래도
자신을 설득하려고 온 선생님이
너무 좋아하는 선생님이어서..
학교방침을 따라야겠다고 자신의 뜻을 굽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행히 그 선생님도 아이의 억울함을 아이의 편에서 들어줌으로써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이 언덕을 수월하게 잘 넘게 해주었다.
조곤 조곤 설명하고 설득하고..
막힌 아이는 아닌데~~
조금만 설명하고 설득하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텐데~
갈등의 당사자는 빠지고
제 3자에 의해 해결된 듯 해
난 좀 찜찜하지만
아이는 됬다고 하니까 ..
엄마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까
정말 가만히 있어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가만히 있기로 했다
내 맘대로 움직일 일도 아닌듯 해서..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했던 일은, 내가 할 수있는 유일한 일은
`아이의 결정을 따르겠습니다.
섣부른 결정을 하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믿습니다.
아이가 가질수 밖에 없었던 그 부당함을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선생님도 아이의 뜻을 존중해주세요.`
담임의 황당해함이 전화를 통해서도 느껴졌다.
후다닥 자신의 말만 하고 결론적인 이야기만 하고
알겠습니다.
내가 듣기엔 전혀 알아들은것 같지 않았는데~~
어떤 의도로 내게 전화를 했는지 알겠는데
내 반응이 원했던 반응이 아니어서
황망해하던 ..
앞으로도 그 누구에게서 아이에 대해 전화가 오고 만남이 와도 내가 할 일은 아이에 대한 믿음으로
그 아이의 판단을 지지하는 일밖에 없을 것 같다.
이미 아이는 나와는 다른 사회적 사이클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싸이클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고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는 듯 하다.
부딪히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내 바람은
이런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독단과 독선이 아닌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도 가지고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차분함도 가지고.. 부당 할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굽힐 수 있는 유연함도 가지고..
가지고...
가지고....
가지고......
나 욕심 부리고 있구나..
어째든
이번일을 겪으면서
이제 정말 다 컸구나.
성큼 커 버렸구나~~
이렇게 언덕을 넘고 또 넘고..
그러다 생이 끝나겠지..
언덕 잘 넘기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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