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들 ㅣ 리:플레이
황정은 지음 / 제철소 / 2025년 1월
평점 :
황정은 작가는 희곡도 잘 쓰시는군요.
총 4편의 이야기. 마지막 4편은 또 작은 이야기들로 묶임.
✔️사막 속의 흰개미
문화재연구소에서 흰개미가 출현했다는 신고를 받고 주말에 무단으로 한 주택을 침입했다. 대대로 가업을 이어오는 이 집은 거대한 담으로 외부의 시선을 차단한 집이다. 더 이상 필요 없어져 입구를 막은 우물을 마당에 갖은 목조 건축물.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페어리 서클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현재 가장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는 의견은 흰개미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인간이 보기에도 대단한 위용을 자아내는 무언가가 된 것이라고..
전 세계가 하나처럼 움직이는 요즘 흰개미에게서 안전지대라고 여겼던 한국에서도 점차 발견되곤 한다는데 나무를 갉아대는 흰개미의 특성상 목조 건물엔 치명적이다.
남들보다 더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직업군의 인간들의 추악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덮을 수 있을 만큼이었어야지. 덮는다고 덮어지나? 해결하지 않고 덮은 추악은 곪아 터져 악취를 풍기게 되고, 점차 그 추악이 퍼질 뿐이라지. 난 잘못하지 않았는데 왜?라고 하기엔 네가 받은 혜택이 다 거기서 온 것이라는데.. 부모의 잘못이라 우겨대며 피하는 아들과 너도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책임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엄마와 대립. 그 틈에 ‘나를 기억하시나요?‘라고 나타난 한 여인.
✔️ 죽음들
삶의 동반자인 죽음이란 이름의 친구.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다정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 오피스
세상을 밝힐,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자 했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환경이란 돈을 주고 의뢰한 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글을 쓰는 것.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을 교묘히 가리는 것으로 활용되어야만 하는 그들의 능력. 그것이 싫어서 박차고 나온 이들이 차린 회사는 그들이 박차고 나온 회사보다 규모가 작기에 목소리를 내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면 그들은 그 조직에서 아예 빠져나온 프리랜서에게 더 가혹한 업무를 꽤나 선심 쓰듯 던진다. 그 말의 마지막은 협박이지 뭐.
갑, 을, 병, 정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개인. 같은 처지라며 다가와 낚아채기 하는 또 다른 개인. 😮💨
✔️ 산악기상관측
산은 좋은 공간이기도 위험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한국문학추천 #희곡추천 #가독성좋은도서추천 #가독성좋은도서추천 #잔상깊은도서추천 #북스타그램 #신간도서추천
태식 :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너 무탈하게 살아가라고. 넌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들아지. 근데 너랑 나, 그렇게 다른 인간 아니다. 왜냐. 너 내가 낳았으니까. 나 부정하는 거, 너 부정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왜 그렇게 쳐다봐? 인정 못 하겠어? 다 부정하고 싶어?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어? 그럼 날 죽여. 날 죽이고 자유롭게 네 인생 살란 말이야. 근데 넌 그럴 용기도 없지. 48p
에밀리아 : 흰개미, 그냥 그런 존재예요. 환경 만들어지면 거기서 사는 곤충. It’s just phenomenon. 자연현상일 뿐이에요. 연구할 때 사람들 만나면 많은 의미, 가치 부여해요. ‘여기 오래된 곳이야. 흰개미 파먹게 둘 수 없어.’ ‘다 죽여야 해!’ 그런데 그거 사람 입장이에요. 흰개미는 여기가 100년인지, 200년인지 신경 안 써요. 환경 맞으면 그때부턴 거기 사는 거예요. 흰개미 생긴 것도 중요하지만, 생긴 이유 찾는 게 더 중요해요. 환경 바뀌었다는 거니까. 그거, 사람들이 만든 거고.
젊은 죽음 : (생략) 사람들은 뭐랄까, 우릴 너무, 응 그래, 몹쓸 것처럼 취급해. 너무 차별한다고. 삶은 막 이렇게 추켜세우고, 우리 같은 죽음은 엄청 깎아 내리고, 응? 삶이, 뭐 저 혼자 만들어지는 건가? 다 우리가 있으니까 삶이라도 있는 거 아니냐고. 우리가 얼마나 젠틀한데. 깍듯하고,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근데 맨날 우리는 기피 대상 1호로 취급하고, 이 일도 도대체가 못 해먹겠어. 도대체 인간들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우리가 옆에서 지켜주고, 부추겨주고, 호호 불어주는 건 알지도 못하고. 201p
늙은 죽음 : 우리를 그냥 친구라고 생각해요. 우리 저승사자 아니에요. 누구 죽이려고 득달같이 달려들지도 않아요. 그냥… 늘 당신들 옆에 있어요. 그러다 때가 되면 손 잡아주고… 혹시나 무서워할까 봐 꼭 안아주기도 하고… 21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