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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퍼시벌 에버렛 지음, 송혜리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1884년에 출간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짐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책이다.
브런치에서 이 책을 소개받았을 때 기대감이 생겼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10대 소년 헉의 시각이기에 성장 소설로 분류된다면, 이 작품은 성인인 짐의 시각으로 그려졌기에, 당시 미국 남부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일에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다.
흑인 노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백인들이 자신의 우월성을 계속 느끼며 흡족함을 느끼게 할 수 있는가?이다. 최대한 어눌한 말투와 생각이라고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대답과 질문을 연마한다.
눈을 맞추면 안 되고, 절대 먼저 말하면 안 되고, 백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긴 하지만 절대 먼저 아는 척을 하거나, 행동을 지적하면 안 되고, 우리가 멍청함을 느낄 수 있게 웅얼거리거나 더듬거리는 말투를 사용하기도 할 것.
백인들이 기분이 좋아져야만 안전하기 때문에 이런 교육이 필요하단다. 😭
책의 중반부까지 이런 부분의 첨가만 뺀다면 전작과 비슷하다. 술주정뱅이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도망친 헉과 가족과 헤어져 팔려갈 운명인 짐이 우연하게 만나 함께 도망가는 여정. 헉은 아버지에게 도망치기 위해 자신이 죽은 것처럼 꾸몄기에 짐은 자연스럽게 백인을 죽인 살인자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유는 없다. 백인이 살해된 현장과 도망친 노예가 있다면 그 살인의 범인은 당연히 노예가 되는 법. 이게 당시 남부의 법칙이었다. 모든 잘못은 노예에게 주어지는 법. 그게 당시 남부의 법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백인 성인, 노예의 조합이라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어린 백인에 흑인 노예의 조합은 남들의 눈에 이상해 보일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할 게 많았다. 자신을 친구라 여기는 헉에게 순간순간 긴장을 놓쳐 평소의 말투와 읽고 쓰기가 가능함을 들킬 위험도 종종 발생했다. 수준 있는 단어 사용. 문법에 맞는 문장 구사와 명료한 말투를 사용하는 것조차 노예에겐 위험한 일이었다.
글을 읽는 건 완전히 은밀한 일이었고, 완전히 자유로운 일이었으며, 따라서 완전히 체제 전복적인 일이었다. 101p
짐에게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이 험난한 여정에서 위험을 넘길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책을 만나기도 하고, 잠시 연이 닿은 친구의 목숨을 건 선물로 연필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 어떤 것보다 짐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누군가가 사용하던 연필이었다. 그 작은 물건조차 소유가 불가능한 존재인 노예. 그게 짐의 신분이었기에…
짐은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돈을 벌어야 했다. 자신의 아내와 딸을 자유인으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북부로 향하는 여정 그것만으로도 험난하기만 했다.
지옥 같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헉은 아빠가 죽었으니 이곳에서 죽다 살아난 아이로 자라면 그만이었지만, 짐은 가족을 찾아야 했다. 이미 고향에서 사라진 아내와 딸. 가장 최악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팔려갔다는 둘을 찾아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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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예제에 반대하는 북부 백인들의 입장을 생각해봤다. 노예제를 끝내고자 하는 욕구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백인의 죄책감과 고통을 진정시키고 억누르려는 필요에서 비롯됐을까? 그저 지켜보기에는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 관행을 허용하는 사회에서 살아가자니 기독교인의 감정이 상했던 걸까? 그들이 벌이는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든 노예 해방은 부수적인 약속이며 부수적인 결과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373p
엄청난 부당함에 아무런 저항을 할 수 없음에 대한 대답은 ❛노예니까요. ❜였다.
당시 그들이 백인들이 말하는 착한 백인과 그렇지 않은 백인의 차이도 ❛흑인은 노예❜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사람에게 글을 읽는다는 것이 주는 효용이란 얼마나 큰 것인가?
앞부분의 백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흑인들의 교육 이야기만으로 이 책이 흥미로울 것이다!라는 생각만 했던 나의 생각을 했다니.. 주인공이 무려 ❛노예❜인데!
짐이 제임스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함께한 일에 후회는 없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