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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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숲 #BirnamWood
#엘리너캐턴 #EleanorCatton
#권진아_옮김
#열린책들

<586p>
#여르미_서평단

버넘 숲은 뉴질랜드의 풀뿌리 공동체다. 공식적으로 시내의 18 군데에서 경작하고, 땅 주인들에게 모든 수확물의 반을 주고, 나머지는 회원들끼리 소비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기도 하고 팔기도 했다. 수입은 물물 교환을 하거나 쓰레기장에서 구해올 수 없는 도구나 씨앗, 흑을 사는 용도로만 썼다. 누구도 임금을 받지 않았고, 모든 자산은 공동 소유였다.
이 버넘 숲을 이끌어가는 미라는 이익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성장을 추구했다. 셸리는 신봉자나 광신도가 아니라 조력자 역할을 담당했다. 점점 이 일이 버거운 차에 버넘 숲을 떠났던 ‘토니’가 나타났다. 버넘 숲을 떠난 것만이 아니라 뉴질랜드를 떠나 타국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토니가 갑자기 나타났다. 미라가 자리를 비운 틈에..

성장을 꿈꾸던 미라는 다비시 농장에 눈독을 들이고 홀로 동태를 파악하러 갔다. 손다이크 도착해서 만난 사람은 다비시가 아닌 미국인 억만장자 로버트 르모인. 그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많이 갖은 사람이 더 가지려 하는 것❜

다비시에게서 곧 땅을 구매할 예정이라는 르모인은 최근 산사태가 난 이곳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홀로 비행기를 운전해서 다니는 억만장자. 이곳에 벙커를 지을 예정이라는데…
미국 사람이 왜 여기에??
[재난 대비 자급 생활] 세상의 종말에 대비해 은신처를 준비하는 거
은신처 준비하는데 왜 드론이 필요한 걸까?
왜 무장한 군인이 필요할까?

버넘 숲의 사업을 지지하며 이 땅을 마음껏 사용하라며 돈까지 쥐여준 르모인.
버넘 숲의 맴버들(토니를 제외하고)과 함께 다비시 농장에서 농장을 시작한 미라와 셸리.

❝억만장자와 생존주의 이런 게 다 뭐예요? ❞

❝부자가 되는 것, 계속 부자로 사는 것, 이기는 것 모두 너무 쉬워요. 난 원하는 게 있으면 가져요, 그럼 내 것이 되죠. 원하는 걸 말하면 사람들이 내게 갖다 바쳐요. 난 원하는 걸 하고,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아요. 매우 간단하죠. (중략) 난 권력의 성채 안에서 살았어요. 높은 식탁에 앉아 식사하고, 절대 열리지 않는 문 뒤를 봤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어떤 수준에 도달하면 모든 게 완전히 똑같거든요. 그냥 다 운이 있고 허점을 알고 적시에 적소에 있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나머지는 복리 성장이 다 알아서 해주거든요. (이하 생략)❞

부~~자가 되려고 남들과 다른 부자가 되려고 남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최고에 올라가려고 그가 선택한 것은? 드론에 감지된 한 놈! 숨기고자 하는 바를 캐는 놈! 그놈을 잡아야 한다. 잡으려는 자와 몰래 캐려는 자의 숨 막히는 싸움과 그가 하려는 일의 눈가림이 되는 이들 사이. 양쪽을 다 관리하려니 바쁘신 억만장자…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서평도서 #영화각인도서 #장편소설추천 #번역서추천 #페이지터너추천 #결말궁금한책 #북스타그램

살면서 하는 진짜 선택들, 정말 어렵고 파장이 큰 선택들은 절대 옳은 일과 쉬운 일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고. 그건 잘못된 일과 어려운 일 사이의 선택이야. 333p

생태 보호라는 선행의 가면을 쓴 무서운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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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쓰다듬는 사람
김지연 지음 / 1984Books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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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쓰다듬는사람
#김지연
#1984BOOKS @livingin1984

<212p><별점 : 4.9>

올해 에세이 베스트가 될 예정인 책.

저자는 미술비평가다. 문학 비평가들의 글을 읽을 때도 늘 놀라운데 미술이라니.. 이는 얼마나 더 어려운 것일까? 보고 느끼는 감상도 어려운 작품들이 많은데.. 🥲 이 책을 읽은 나의 느낌은 저자는 자신의 최대치를 다 써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됐다. 종종 저자가 일을 끝내고 아프거나 오래도록 쉬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리 귀한 책을 발견하고, 알려주고, 거기다 사서 건네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제로책방 #책리뷰 #책추천 #책기록 #북스타그램 #에세이추천 #모든구절이명언 #강력추천에세이 #문학비평가도서 #글쓰기의정석 #에세이베스트 #소문나야할책

📍타인의 세계는 아무리 그림자를 이어 붙여도 닿을 수 없는 원경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먼 풍경을 향해 나란히 걷는다. 끝내 닿을 수 없을지라도 서로의 세계에 닿기 위해 손을 뻗은 채, 따뜻한 눈으로 등을 쓰다듬으며. 15p

📍삶의 과정도 같다. 작은 걸음을 옮기듯 매일을 살아내다 보면 상상하지 못한 곳까지 도착한다. 이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진실이 눈앞에 드러난다. 이렇게 훌쩍 먼 곳에 도착하고 나면 삶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반복에도 용기가 생긴다. 다시 나의 자리를 지키며 오늘을 살게 하는 힘이다. 이렇게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다시금 우리를 살게 하는 바로 그 자리에, 당신의 중력이 있다. 26p

📍사실 우리는 모두 이상하게 산다. 서로 다른 욕망과 질서를 지니고 한 사람 몫을 살아낸다. 살면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삶뿐이지만 때로는 그조차 불가능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질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래서 전형적인 ‘좋음‘ 대신 그에게 맞는 ’이상함‘을 건네는 과정이다. 적어도 나의 세계에서만큼은 그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특별하게 빛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92p

📍우리 사이에 확실한 것은 서로 모른다는 것뿐이다. 한 사람에게 그만의 존재 방식이 있듯이 누군가 만들어 낸 세계에는 어떻게든 서사가 있다. 93p

📍누구나 삶의 모든 시기에 고유한 빛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질서로 자기 궤도를 돈다. 다만 드넓은 우주에서 마주쳐 서로를 알아본다. 그날 엄마의 빛과 내 빛은 같은 순간을 함께 교차했다. 그의 늙음과 나의 젊음, 아니 어쩌면 그의 젊음과 나의 늙음도 같은 곳에 있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함께 하는 지금, 서로의 다른 빛을 알아보는 순간이다.

사람이 젊어 보이는 건 주름 없는 피부가 아니라 미소와 생기 때문이다. 131p

📍작품을 볼 때마다 뒤에 가려진 이야기들을 발견한다. 그것을 만든 사람의 애쓰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렇게 그림의 등을 지켜보며, 지금 목격한 아름다움의 다음 장면이 펼쳐지기를 기다린다. 일할 때 혼자 느끼는 비밀스러운 기쁨이다.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곁에 머무르는 다정, 등을 쓰다듬는 애틋함, 기꺼이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마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배웠다. 182p


좋은 문장이 너무 많아서 가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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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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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점심
#장은진_소설집
#한겨레출판

<315p>

🎈가벼운 점심
“아버지도 좋아했죠, 봄을.”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지.”

10년 만에 조부의 장례 때문에 돌아온 아버지는 예전보다 살이 올랐고, 풍덩한 양복이 아닌 캐주얼 복장의 모습이었다. 이미 오래전에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외로울 아들을 생각해서 그리고 그들의 성장을 위해 버티고 버틴 삶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포기라 표현한 그 일은 아버지에겐 자유를 선사했으리라.. 좋아하는 봄을 점점 더 좋아하고,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삶으로 향하는 자유를.

🎈피아노, 피아노
도저히 적응되지 않는 서울 생활 5년 차. 그런 그를 버티게 하는 진아.
진아는 결혼을 이야기했다. 조금은 나은 삶에서 시작하고 싶었던 나는 대답을 미룬다. 서울이란 기계에 작은 부속품 하나도 되지 못하고 스페어 같은 삶을 사는 나는 원룸에 어울리지 않는 버려진 피아노를 집에 들인다. 가장 낮은 음과 가장 높은 음을 선택하는 다른 진아와 나. 사소한 다름보다 이런 나와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과 때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하품
한남동 저택을 두고 낡은 이층 건물에 살고 있는 피아니스트와 아내. 아내는 점차 느려지고 있다. 게을러지고 있다. 저러다 멈출지도 모른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는 아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겁이 난다. 자신이 연주하는데 모든 필요함을 채워주고 가사가 없는 연주에 관객과의 소통의 힘까지 챙겨준 아내는 첫 번째 유산 후부터 관객석에 앉지 않았다. 3번의 유산을 겪고 아내가 요구한 것은 헌책방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멋진 건물을 후보지로 제안했으나 아내가 선택한 곳은 이 허름한 곳이었다. 80년대에 사용하던 낡고 낡은 초록색 2인용 책상 하나와 걸상 하나와 함께. 어떻게든 아내를 살려보려는 자신의 노력은 무용했는데 길고양이 먼지라는 녀석과 재능이 부족해 진로를 변경하려는 후배 녀석이 건넨 화분만은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고전적인 시간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장은진 판이다. 서울에서의 삶을 접고 오래도록 방치된 고향으로 내려왔다. 영화와 다른 점은 나이가 마흔 때쯤이라는 것과 두 친구가 결혼한 것으로 나온다는 것. 강아지와 닭이 아니라 고양이와 새끼들과 함께 산다는 것. 끝을 알 수 없는 이별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의 루마니아 수업
문학 전공하는 대학생들 사이의 연애.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을 밤새 번역해서 건네는 사람이라니.. 그리고 둘만 공유하는 문학 작품이 있다니..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너의 눈이 가을 날씨 같다니… 🤭

🎈파수꾼
철도 건널목을 지키는 관리인인 강 씨. 자꾸 귀에 물이 차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강 씨에게 철도가 들어올 시간을 알려주는 고양이. 꼭 죽은 아내가 잔소리는 다 빼고 자신을 지켜주는 소리만 하는 것처럼.. 야옹야옹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단편소설집추천 #한국문학추천 #계절소설 #4계절을담은도서

어머니야말로 피아노의 가장 낮은음을 지향하는 분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낮추어 사람을 대했고, 자신의 것을 내주고 내주어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하루아침에 낮은 자리로 내려앉았을 때도 어머니는 그 자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생계를 꾸렸다. 가난해졌음에도 우아함과 신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남자의 눈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77p 어머니 너무 멋지시다.. 😍

진아는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암 환자를 돌보면서 시간은 유한하고 물질이 행복이 아니며 인생은 결국 다 똑같다는 걸 배웠다. 굳이 악착을 떨며 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때그때 주어진 몫만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지내다 형편이 나아지면 감사히 누리며 사는 게 인생이라고. 별난 인생도 없었고, 못난 인생도 없었다. 인생은 누구나 다 그냥 살다가 가는 것이었다. 단, 살면서 때만 놓치지 않으면 되었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고, 용서를 빌어야 할 때 빌고,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는 것. 진아가 오늘 남자를 찾아온 건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71p

때론 들리거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슬픔은 약해질 수 있었다. 누군가의 슬픔은 타인의 귓속에서 부서질 수 있었으므로.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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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시대 새소설 1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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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유령이다. 아버지한테 ❝유령이 돼라❞라고 한 사람은 호텔에서 청소 노동자로 사십 년 동안 근속한 J 씨였다.

아버지의 삶의 태도는 부끄러움이었다. 그런 그에게 호텔 청소부의 일은 적성에 딱 맞았다. 유령이 되어 존재를 증명하는 일. 절대 고객의 눈에 띄어서도 고객과 마주쳐서도 안 된다는 것. 호텔은 언제나 소리 소문 없이 깨끗해야 하는 곳이었기에 유령이 되어야만 하는 청소 노동자의 일은 아버지의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천하의 잘난 문희숙이 어디 갔나. 어디를 갔길래 이런 쉬운 문제 하나 못 풀어서 쩔쩔매실까❞
❝이깟 문제 못 풀어도 먹고사는 데 아무 문제없어요!❞
❝그래? 수학 못하는 문희숙이 앞으로 뭐 해서 먹고사는지 끝까지 지켜보마. 너희도 친구로서 문희숙의 인생을 똑똑히 지켜봐줘야 한다. 다들 알았지?❞
❝천하의 개새끼!❞

그렇게 시원하게 선생에게 욕을 날라고 학교를 그만둔 어머니는 모교의 전설이 되었고, 학교가 아닌 도서관에서 책을 몽땅 빌려 읽고, 운동도 하며 육체도 정신도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중등교사였던 조부모는 그런 막내딸을 이해도 용서하지도 못했기에 수치스럽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머니는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학교를 걸어나가듯 집에서 나와 교류를 끊고 살았다.
모텔을 전전하다 돈이 떨어진 어머니는 모텔리어의 삶을 살았고, 호텔리어로 업그레이드되었기에 어머니가 되셨다. 부끄러움이 가득한 아버지와 대찬 어머니는 호텔에서 유령으로 일을 하다 만났다고 했다. 태생을 감추지 못하고 쓴소리를 하던 어머니와 유령 같은 아버지는 각자의 성품에 맞는 괴롭힘이 있었고, 곤란한 상황에 도움이 된 인연으로 부부가 되었단다.

어머니는 호텔리어의 삶의 끝까지 이어가다 호텔에서 돌아가셨다. 지금은 여전히 호텔리어로 살고 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지내고 있는 누나. 그리고 수제 우산 가게를 운영하는 나 셋이 한 집에 살고 있다. 누나가 이혼하리란 것은 본인만 모르고 모두 예측하고 있었다. 어떤 일도 진득하게 하지 못했던 누나가 일이 아닌 결혼을 선택했었기에..
팽팽 놀고먹는 누나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나는 누나에게 미션을 선사했다.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으니 아버지의 출퇴근을 그리고 가게로 출근을 권했다.

누나가 퇴근하고 판매가 종료된 우산을 찾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 손님이 나간 후 가게의 종이 평소와 다르게 울렸다. 여자는 어떻게 그런 소리를 냈을까? 우산 종이 낸 울음소리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가을비가 내리 내린 후 우산종을 울렸던 손님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판매 문의를 했던 그 우산을 들고 수리를 의뢰했다. 품질보증 기간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수리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다. 다른 제품을 권했지만, 우산을 두고 가버린 손님은 이번에도 우는소리를 남기고 떠났다.

망가진 우산을 수리하며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과거를 회상하고, 게으른 누나의 이혼 사연과 손님이 남기고 간 우산의 사연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봐요 씨와 만남이 이어지는데..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바베트의만찬_지기추천 #북스타그램 #장편소설추천 #얇은책추천 #가독성좋은도서 #작가발견 #부끄러움에대하여

살면서 내가 가장 잘한 일은 한때의 어리석은 부끄러움을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는 무능하지 않다. 부끄러움의 양이 좀 과할 뿐, 불쌍하다 싶을 만큼 성실하기만 하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아버지가 호텔 청소부이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12p

그들은 당사자에게 묻지도 않고 어머니의 인생을 실패라고, 불행하다고 규정지었다. 아무도 물어보지 않아서 어머니는 스스로 묻고 대답했다. 청소부가 부끄러운가? 부끄럽기는커녕 청소부로 사는 건 즐겁고 행복하다. 일은 재밌고 마음이 평호롭기까지 하다. 그러니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고, 어머니는 그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70p

말은 뱉자마자 허공으로 흩어지지만 글은 어딘가에 새겨놓는 거라서 나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나한테 해준 말들을 하나도 잊지 않고 있다. 잊히거나 흐릿해져도 뒤져보면 어딘가에 반드시 적혀 있어서 금방 되찾을 수 있다. 아버지의 부끄러워하는 성격 덕에 나는 아버지의 말을 가장 많이, 가장 정확한 형태로 간직하는 사람이 되었다. 79p

❝선생님도…… 견디고 버티기 힘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좋아하는 것들이나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했어요. 아주 나중에 내게 견디고 버텨줘서 고맙다고 해줄 사람도 생각하고, 내가 견디고 버티면 앞으로도 볼 수 있을 좋아하는 것들도 떠올리고요.❞
❝하지만 견디고 버티는 게…… 바보 같은 짓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견디고 버틴다는 게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 그 시간은 힘을 키우는 시간이에요. 견디고 버티는 동안 차곡차곡 키운 힘으로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얍, 하고 무찌르는 거예요.❞

부끄러움과 부끄럽지 않는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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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지키는 여자
샐리 페이지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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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지키는여자
#샐리페이지
#노진선_옮김
#다산책방
도서지원 고맙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니스도 그런 사람인데, 그녀는 이야기 수집가가 되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어릴 땐 동생을 지키고 싶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아들을 지키고 싶었다.

아버지가 너무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무너졌다. 한없이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동생을 보살피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활력이 생겼고, 동생은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해했다. 아주 잠깐이었다. 엄마의 애인은 잠깐 엄마를 즐겁게 했지만, 이내 함께 살기 시작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계속되는 폭력에 무방비 상태인 엄마와 두 자매.

묻어두고 싶었다. 계속 피하고 덮으면 덮일 줄 알았다.

난 언니가 한 일을 기억해. 라는 쪽지를 동생에게 받기 전까지 말이다.

재니스의 남편 마이크는 붙임성이 좋은 남자다.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처음부터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늘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금방 깨닫는다. 그가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는 것을. 누구나에게 가르치려 들고, 지적하며 나선다. 시간이 점차 흐르며 고용주들은 깨닫는다. 지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지적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제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며 지적질을 하는 것이 회사를 위하는 일이라 주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다. 마이크는 오만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제대로 된 일자리에 장기간을 종사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면서 아이는 최고급 교육을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했고, 자신은 늘 새로운 일과 사업을 구상하느라 머리가 아프고 바쁘다며 침대에 수평 자세로 생활을 했다. 😵‍💫😢🤯

아무런 경력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청소 도우미뿐이었다. 마이크는 제대로 된 일자리에 차분히 다니며 돈을 벌지 않았지만 나의 일을 폄하하곤 했다. 젠장할..

그녀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부창부수로 재수 없는 그래그래그래 부인과 티베리우스 부부의 집에서도 버티는 것을 보면 대단한 인내심을 갖고 있기도 했고, 남편과 아빠의 자살로 힘겨워하는 피오나와 애덤의 마음까지 보살폈다. 베이킹에도 능했으며, 그래그래그래 부인의 괴팍한 시어머니인 B 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커피 한 잔 스스로 타 마시지 않는 남편의 요구를 다 들으며 지내는 성인에 가까운 사람. 그게 바로 재니스였다.

자신의 고객 중 가장 괴팍한 B 부인과 쌍욕을 날릴 줄 아는 그래그래 부인이 키우는 데키우스, 그리고 지리 선생 이미지의 버스 운전기사인 애덤과 인연이 깊어지면서 긴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었던 재니스는 이야기를 통해 처음으로 재니스 자신을 들여다보게 됐다. 절대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과거와 벗어나고 싶은 현재와 마주하게 된 재니스. 여전히 동생과 아들에게 줄 상처로 전전긍긍하지만 일단 한 가지를 저지르니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 마이크를 떠나 무작정 집을 나오고 보니 마침 성악가 조디가 미국행으로 비우는 집을 이용해도 된다지 않는가?

B 부인과 아들과의 전투에 조력자가 되며 자신도 모르게 성장하는 재니스는 과연 과거로부터 벗어나 나를 찾을 수 있을까?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그녀를 이해할까?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문장좋은도서 #치유소설 #어른성장소설 #상처극복소설 #북스타그램 #영국국민소설 #소설신간 #힐링소설 #휴남동서점 #오베라는남자 #미드나잇라이브러리 #서평도서

책의 DNA는 무게, 감촉, 종이의 냄새를 통해 드러난다. 면지의 색과 질감, 손바닥에 닿는 책등이 평평한지 맛조개처럼 둥근지, 손끝에 닿는 표지의 올록볼록한 글씨와 인쇄된 글씨의 각기 다른 촉감, 책마다 손때를 가장 많이 탄 페이지가 저절로 펼쳐지며 주인이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 작가, 레시피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방식까지. 166p

유언은 이야기 드는 걸 좋아하고 공감을 잘해준다. 웃어주기를 바라는 대목에서 웃어주고, 힘들었던 상황을 설명할 때는 손을 잡아준다. 충고를 하려고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걱정을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하지도 않는다. 310p [완벽한데? 😍]

+ 지리 선생님처럼 생겼다는 건 어떤 이미지일까?
고등학교 지리선생님을 떠올리며 310페이지 문장과 아무리 작대기를 이어보려고 해도 이어지지 않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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