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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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만 바라보고 장식으로 있을 줄 알았는데 독서모임이 살린 책.
책은 3부 이해받지 못한 말들을 기준으로 1,2 / 4,5가 대칭구조이고, 6부 7부로 이어진다.

큰 틀은 토마시, 테레자, 사비나, 프란츠 4명의 사랑이야기다. 그 틀을 베이스로 체코의 역사, 철학, 정치 등이 녹아져 있다.

니체의 회귀 사상이 책이 가장 서두에 나오는데,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영원한 회귀가 가장 무거운 짐이라 했기에 이를 배경으로 거느린 우리 삶은 가벼움 속에서 그 자태를 드러낸다.
그러나 묵직함은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묵직한 것은 긍정적이고 가벼운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하다. 13p

전처와 아들과 헤어지면서 자유로운 몸이 된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고 다시 함께하는 삶을 택한다. 1명의 여자를 만나는 적이 없고, 섹스 후 잠까지 자는 법이 없는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고 동침이 가능해진다. 송진이 발라진 바구니를 타고 온 아이같은 여자 테레자.
테레자를 사랑하지만 100만분의 1의 상이성을 수집하는 기이한 수집가 유형인 그는 수많은 여성과 섹스하는 것을 즐긴다.
수용소에서 삶 같았던 엄마의 가정 속에서 고통스러웠던 테레자가 찾은 남자는 바람둥이 토마시. 책으로 남과 자신을 구분하고 순정 중시하는 그녀는 바람둥이 토마시가 힘들지만 그를 놓지 못한다. 결국 그를 점점 아래로 아래로 끌어 내려(전적으로 그녀의 의지는 아니였지만..) 의사에서 유리창 닦는 노동자로 시골의 트럭 운전수로 살게 한다.

토마시의 연인이었기도 했던 사비나는 유부남 프란츠와 만난다. 토마시에게도 가장 쿨한 여자 친구이자 섹스 파트너였는데 그런 쿨함이 프란츠에게도 발휘된다. 가정을 버리고 그가 그녀에게 오자 이별을 통보하는 여자. 사실 이 둘은 너무도 달랐다. 이런 다름이 서로에게 끌렸을까? 하지만, 이런 다름은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관계로 이어지긴 어려웠겠다.

토마시의 바람은 유리창 닦는 노동자가 되자 빛을 발한다. 의사 출신은 유리창 닦는 노동자가 되어도 어드벤테이지가 붙는건가? ;;; 이정도의 노동이면 유리창 닦는 것보다 힘든거 아닌가? 싶었다. 🙄🙄

키치를 끔찍하게 여기는 사비나 공산주의라는 키치를 끔찍하게 싫어했기에 조국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거처를 옮겨간다.
하지만, 그 어떤 인간도 키치에서 벗어나긴 힘든법.

“그는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원했다”라는 비문을 얻은 토마시.
“오랜 방황 끝의 귀환”이란 비문을 얻은 프란츠.

아이러니하게도 생에서 가장 피했던 존재에게서 비문을 받는다.

바람둥이 토마시와 살며 힘들었던 테레자에겐 다행스럽게도 이해관계가 없고, 바꾸려 들려는 욕심이 없는 대상인 카레닌이 있었다.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게 만들어준 존재였다.

수영장의 끔찍한 꿈은 토마시가 약해지며 작은 토끼의 꿈으로 변한다. 수집가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서였을까? 힘을 잃은 작은 토끼가 된 토마시. 어쩐지 테레자와 가벼움과 무거움을 함께 나눈 존재가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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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의 목격자가 있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좋건 싫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자신을 맞추며, 우리가 하는 그 무엇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군중이 있다는 것, 군중을 염두에 둔다는 것은 거짓 속에 사는 것이다. 188p

-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이 알았는지 몰랐는지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몰랐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결백한가에 있다. 권좌에 앉은 바보가, 단지 그가 바보라는 사실 하나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92p

-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영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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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곳에서 만나요
이유리 지음 / 안온북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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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어서 무엇이 되며 어디로 갈까. 라는 질문을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 했다는 작가님. 한 번 머물다 가기에는 아무래도 아까운 곳이라서. 그런 의문은 이 세계 대한 사랑, 그리고 그 세계를 이루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고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책은 6가지의 죽음을 맞고 이 세계에 머무르는 이야기다.

<오리배>
잘 생겼지만 연약한 귀공자 타입의 아버지와 괄괄하지만 명랑한 엄마 사이에 태어난 시니컬한 어린 애가 주인공이다. 둘의 인연은 오리배에서 시작 되었는데, 이 아버지는 불화의 씨앗이 느껴지면 늘 오리배를 타러 가자고 했었기에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오리배를 타러 가는 의식과 같은 일을 갖은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실직으로 엄마가 경제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런 아버지가 돌연 죽음 그 실체를 듣는 것도 오래배에서였는데….. 오리배의 지박령이 되어 엄마와 은채를 기다리는 나. 은채는 과연 누구일까요~

<심야의 질주>
오리배의 주인공을 태웠던 택시 기사는 죽어서 자신이 좋아했던 영화 배우의 집으로 갔다. 한 때는 잘나가던 배우였고, 알콜올성 치매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며 술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인데 한순간에 알콜 중독이 되고 이젠 무기력에 빠진 상태가 되었다. 하루의 일과라는 것이 없는 상태가 된 전직 영화배우. 그에게 한 외국인이 찾아오는데..

<세상의 끝>
오리배 지박령인 주인공을 태웠던 택시 기사는 사실 젊은 시절 음주로 사고로 두 젊은 친구를 죽인 사건이 있었다. 학창 시절 친하지 않았던 둘은 우연히 동창회에서 만났고 아직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함께 살게된다. 그런 그들은 왜 세상의 끝을 향하고 있었을까?

<아홉번의 생>
고양이는 9번의 생을 산다고 한다. 어떤 생은 편했고, 어떤 생은 태어나자 죽음을 맞았으며, 어떤 생은 고통스러웠다. 5번의 생에선 한 회계사의 집에서 살게 됐는데, 주인집 여자가 매일 옆집에 놀러가면서 그 집의 선인장과 말을 주고 받게 된다. 그런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는데, 생각보다 냉랭한 반응이 돌아왔고 그로 인해 상실하는데.. 아예 영영 만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기에 나머지 생에서 그를 찾기로 결심하는데..

<영원의 소녀>
고양이 삶의 세번째 삶에서의 주인.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죽은 후엔 그 연인에게로 가는데 죽은 자신보다 더 죽은 것만 같은 그를 만나는데..

<이 세계의 개발자>
죽어서도 게임 세계의 닉네임으로 불리는 상황이라니… 오렌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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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사람에게 있어 죽음이란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이지 온전히 자신의 것은 아니므로,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언젠가는 그것을 버릴 수도 있게 된다는 걸 나는 배워 알고 있다. 48p

- “여덟 번이면 적게 산 것은 아닌데, 자네는 아직도 여린 고양이처럼 구는군. 이 세상에 확실한 건 없다는 걸 지금도 모른단 말인가? 188p

- 다음번 생이 정말로 마지막이라면, 그때는 제발 그 애를 만날 수 있기를.
만날 수 없다면 같은 세계에 존재한다는 증거라도 알 수 있기를.
그마저도 알 수 없다면, 그저 어느 세계에 잘 살아 있기를.
무탈하기를. 192p

- 별 하나가 없다고해서 우주가 우주가 아니 ㄴ것이 됮 않듯이 사랑도 그랬다. 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순간, 사랑은 순식간에 작아지고 납작해진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수천만의 행운이 겹쳐 만들어낸 오늘을 최대한 즐기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 2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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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지나가다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33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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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초판 2020년에 개정판

힘든 여름을 지내고 있는 민과 수호의 이야기.

민은 공인 중개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다. 중개 사무실을 통해 타인의 집 비밀번호를 알게 되면서, 타인의 집에 머물며 30분간의 삶을 산다. 주인이 없을 시간을 이용해 잠시 그곳에 머무는 행위를 계속하는 이유가 뭘까?

머저리. 자신을 머저리라 생각하는 수호는 자신의 유일한 꿈이 여행아라 말하며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왔지만 이상하게도 여행 경비가 모아지지 않았다. 부모님은 늘 바쁘게 일하셨지만, 가구점을 오픈하고 크지 않은 돈을 빌렸다는데 결과적으로 그 돈으로 인해 아버지도 수호도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버지는 얼굴 한쪽 마비가 왔고, 엄마는 계속 말라갔으며, 동생은 학업과 일을 하느라 학점이 엉멍이 되어가고 불평했다. 그런 수호에게 갈 곳은 아버지의 불꺼진 가구점 뿐이었다.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했다. 커피를 마신 종이컵, 누군가 운 흔적이 있는 침대.

수호는 피시방에서 주운 누군가의 지갑 속의 신분증으로 일자리를 구했다. 성실해 보여서인지 시급이 조금 높은 옥상 어린이 놀이공원으로 일터를 옮긴다. 그곳은 연주라는 한 여자가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모든 것을 연구하고 만드는 근무 외의 시간까지 열심을 다하는 연주가 있는 곳.

사실 민은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자신보다 어린 종우는 회사 후배였다. 종우팀이 작성한 회계 보고서로 인해 한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갑자기 일터를 잃은 직원들이 항의하기 시작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배후엔 회계 보고서 조작이라는 비리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된 종우는 그 사실을 폭로하고 싶어했다. 민은 자신의 약혼자인 종우를 보호하고 싶었다. 종우를 보호하려는 일은 결국 비리를 밝히지 못하는 방패가 되었고, 파업 중이던 근로자가 죽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종우도 지키지 못하고, 한 생명을 잃는 일이 되어버린 선의로 민은 종우를 잃었다.

30분의 인생을 살려 찾아간 곳에서 우연히 만난 한 노인과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도움이 필요한 한 청년. 그들에게 작은 선의를 베풀지만, 불편한 일까지 감내하기엔 그녀는 자신의 삶이 너무 버겁다.

누군가와 폐업한 가구점을 공유하며 서로의 존재를 깨닫고,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선의를 믿는 민. 마음을 내어준 사람에게 선의가 아닌 상처를 던진 수호. 둘의 여름은 어떻게 끝날까?

- 회계사의 서류는 중립적인 숫자들의 조합일 뿐, 거기엔 선의도 악의도 없었다. 그러니 일자리를 잃은 자의 좌절과 그 가족들의 현실적인 고통은 의도나 목적이 될 수 없었고, 그저 일의 파생적인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종우는 이사실에 불려가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썼고, 종우가 빼돌린 자료는 모두 회수됐다. 95p

-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노인이 되는 동안 결핍은 보안되고 상처는 치유되는 것, 혹은 삶이란 둥근 테두리 안에서 부드럽게 합쳐지고 공평하게 섞이는 것이므로 아픈 것도 없고 억을할 것도 없는 것, 그런 환상이 가능할까. 188p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 속 개별적 경험들, 타인의 모습은 나와도 닮아 나의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샐로판지를 통해 무지개를 만들듯 그들의 삶에도 무지개를 피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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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섬세함 - 이석원 에세이
이석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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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첫 책이 나온 배경을 알 수 있었고, 그렇게 치열하게 쓴 책이라 지금까지 작가로 지낼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부분을 읽으며 역시 작가님스럽네. 했다. 전작이 에세이인가? 소설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면, 요건 정말 딱 에세이스럽다.

#제로책방 #책리뷰 #책기록 #책추천 #에세이추천 #신간도서추천 #북스타그램 #가볍게읽기좋은책 #12월엔빨간책 #음흉빨강아니고밝은빨강입니다요.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39p

-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젊은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에 끌리고 나이 먹은 사람들은 멈춰 있는 것에 더 시선이 간다고 한다.
✅ 자 솔직히 체크합시다. 동적 vs 정적

-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보다는, 인간은 그렇게 한 가지 성품만으로 무 자르듯 판단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좋다고. 67p

- 나만의 섬세함
남의 하소연을 함부로 징징댐으로 치부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 남들과 대화할 때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주는 것. 누군가 아파 쓰러지면 무작정 일으켜 세울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를 봐가면서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
다시 말해서 주인공은 도움을 주는 내가 아니라 도움을 받는 상대라는 사실을 항시 잊지 않고, 따라서 내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고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내가 생각하는 섬세함이라고나 할까. 97p

- 한편 신뢰란 꼭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하고만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믿지 못해 자신을 오래도록 의심해 온 많은 이들을 보았고, 그게 얼마나 사람을 시들게 할 수 있는지 안다. 162p

명절날 차례상 차리는 일을 거드는게 싫어서 의대에 간 사람이 있단다. 커헙!
집안일 시키면 의대 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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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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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이 키건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 낸 작가다. <맡겨진 소녀>를 출간하고 11년만에 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맡겨진 소녀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분량은 적다. 하지만, 책이 던져주는 여파는 엄청나다.

아일랜드의 문화와 분위기 그들의 아픈 역사의 일부를 보게 하는 책.

겨울을 앞 둔 계절. 땔감을 판매하는 펄롱은 분주하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많은 이들이 힘든 시기에 바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내와 건강한 다섯명의 딸이 있는 펄롱.

펄롱은 16살의 미혼모에게 낳고 길러졌다. 미시즈 윌슨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윌슨은 엄마를 해고하지 않았고 두 모자와 함께했다. 펄롱이 12살이 되던 해에 엄마는 뇌출혈로 사망했지만, 여전히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글도 배우고 학교도 다녔다.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을까?
자신이 밖에서 바지런히 움직이는 동안 펄롱의 아내도 쉴 틈이 없이 집에서 움직인다. 이 안락함을 절대로 깨지 않으려는 노력처럼..

그런 펄롱의 큰 고객 중 하나는 수녀원이다. 학교를 운영하기도 하고 사회의 큰 영향력이 있는 그곳에 배달을 갔다가 도움을 처하는 아이를 만난다. 그저 이 담을 넘는 장소에 데려다 달라는 아이. 그 아이를 외면하고 돌아왔지만 계속 마음에 남는 펄롱은 아내에게 일장 연설을 듣는다. 우리에겐 책임이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다시 배달에 나선 펄롱은 창고에 갇혀 꽁꽁 언 상태의 아직 젖먹이 아이를 둔 한 소녀를 본다.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는 일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지만, 펄롱은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행동을 한다. 그 일은 많은 이들의 염려를 불러오지만, 펄롱은 계속 불편한 마음을 잠재우지 못한다.

새벽녘 타인의 집 문을 두들겨 뜨거운 물을 얻을 수 있는 정이 있는 동네. 작은 선의에 감사하고, 그 선의를 조용히 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 정과 사랑이 넘치는 동네인데 갖가지 뒷소문이 가득한 거대한 수녀원의 일은 누구나 조심하라고,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말라고 한다.

누군가의 선의로 길러진 펄롱은 어쩐지 수녀원에 갇혀 인간답지 않은 대우와 노동 속에 있는 아이들에 자신과 딸을 투영하게 된다. 자신의 주요 고객인 수녀원. 큰 능력이 없는 지킬 가족이 있는 한 중년의 남자. 그저 이 무거운 마음을 달래며 살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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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29p

-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뭔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4p

-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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