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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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후의 미스터리] 여고시절을 통해 세상을 보아가는 성장담.

요즘 아이들은 꿈이 없는 세대라고 얼마 전 EBS의 모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었다. 그것은 꿈을 꾸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라 꿈을 꿀 시간이 없는 아이들의 생활을 역설적으로 빗대서 말하고자 꺼내 놓은 화두였다. 그만큼 지금의 아이들은 하나의 길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탈락이라고 할 만큼 초등학교에서부터 엘리트 스펙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외에 길은 마치 지금부터 사회에서 소외되는 길이라고 엄중한 충고 아닌 충고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을 걱정 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은 하지만 결국 나라에서 내어 놓는 정책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더욱 이런 사교육과 스펙에 골몰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얼마 전 <학교 2013>이란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들 흥분하고 또는 공감했다지만, 아직 아이들이 하는 말은공감하지만 아직도 현실보다는 판타지라고 하는 말로 답을 내 릴 수 있을 것이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어떻게 보면 저자의 학교 생활이 판타지처럼 묻어 나온 얘기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스토리가 펼쳐 지면서 여고시절의 혼란스러웠던 그 시절을 추억처럼 되새기는 미스터리한 사건과 사건의 뒤엉킴을 연작으로 풀어내고 있다.

집에서 조차 소외되는 여고 1학년채율을 둘러 싸고 벌어지는 다섯 가지의 에피소드는 학교비리를 들춰내는무는 남자 사건’, 미성년 임신과 불법 낙태를 보여 주는세유 사건’, 왕따 사건으로 두 사람의 공방을 보여 주는정효조 사건’, 총격 사건으로 다음의 에피소드를 연결 시키는 연결고리가 되어준작가 하리온 사건그리고 제자 연쇄 자살 사건의 미스터리를 보여 준하연준 선생사건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이채율을 중심으로, 엉뚱하지만 비로소 지금의 여고생들과 같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아기자기한 학교 생활과 이 사회가 보여주는 엉킨 얘기들의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주체들로 등장을 한다. 탐정대장윤미도’, 행동대장최성윤’, 감식반김하재’, 비서실장이예희이 엉뚱하지만 여고생다운 발랄함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마치 인생의 짐을 다지고 사는 것 같은 애어른채율을 변화시키며 사건들을 풀어나간다.

문제 있는 가정에 문제 있는 아이가 생긴다지만, 가정에서 조차 이 사회가 보여 주는 차별을 몸으로 겪는채율에게는 그 모든 것이 힘겹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우연하게 들어간 <선암여고 탐정단>과 함께하는 사건의 연속 속에서, 이 세상에 자신만이 짐을 지고 사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고 비로소 자기 연민에 빠진 자신만이 아니라 같이 있는 친구들을 보게 된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저자의 맛깔 나는 어휘 때문에 더욱 재미가 있는데, 예를 들면아가일 무늬 니트에 눈물 콧물을 비벼 댓다. 마치 유기 고양이들을 입양한 기분이었다.’ 라든가 정효조 사건에서 보여 주듯이, 유리미로에 비유한 여고 아이들의 복잡하고 깨질 듯이 위태로운 심리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어서, 하나 하나 에피소드 속에서 나오는 그 나이 때 아이들의 도발적이기도 하고 열정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여주기도 하는 위태 위태한 심리묘사를 고백처럼 잘 서술하고 하고 있다.

이런 사건이 연속되어 가면서 그 동안 꿈도 없이 그저 가족에 대한 반발로 무언가를 이루려 했던채율이 가지고 배운 것은 자신의 자존감과 바로 진정한 꿈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가는 이 현실에 대한 인식이고 힘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한 무지개 빛 미래는 아닐지라도 비로소 이제 자신의 것으로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선암여고 탐정단>은 우리가 익히 많이 들어온 여러 사회의 어두운 면과 교육현장을 둘러싼 음습한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 또래의 고민을 그들의 목소리로 얘기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에피소드처럼 더욱 사람 사는 세상의 아픔을 보여주려 한하연준 선생사건만을 빼면 풋풋한 아이들의 순진한 면과 어울려 나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들만의 모습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이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채율의 성장담이기도 한 <선암여고 탐정단>은 아직도 이 시대의 진행형인 이야기라 앞으로도 또 다른 에피소드를 이 탐정단을 통해 듣고 싶다. <선암여고 탐정단> 이 사회에 너희들이 정말 필요하다. 이런 꿈과 이런 마음이 죽은 사회에서 한국의 CSI(?)가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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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공간 - 남자는 가끔 행복한 혼자를 꿈꾼다
이문희.박정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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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공간] 을 읽고

지금의 3,40대 남자들은 아마도 거의 가부장작인 우리 사회가 가장 팽배 할 때 자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아버지세대도 전쟁을 겪으며 거의 생존이 중요한 시절을 보내다 보니, 지금의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기본적인 의, , 주가 가장 절실한 세대를 거치며 살아 왔다. 그런 시절을 보낸 아버지세대는 자신의 생존뿐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살게 되었고 가장의 책임이란 무거운 짐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말에 온 가족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여야 했고, 아버지의 권위는 모든 일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버지 아래 에서 자란 지금 3,40대의 남자들도 거의 대동소이하게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 아마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 했다고 하지만 적어도 그런 가장이란 책임감과 그런 중압감을 당연시 하며 살아 왔다고 할 수가 있다.

물론 개개인의 편차와 살아온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일반화 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와 남성이 주류가 되는 사회가 이 사회를 그 동안 이끌어 왔다는 것은 쉽게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우리 어린 시절은 남자라면 쉽게 감정을 들어 내지 않게 교육을 받아 왔고, 슬퍼도 외로워도 남자라는 그 말 앞에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남자답지 하다는 말을 들어왔으며, 어쩌다 친구와 싸워서 코피가나고 울게 되면 우는 것만으로도 지는 쪽이 되었으니, 그런 시절을 보내며 자란 남성성은 그런 은근한 마초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살아온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부터가 돼버렸다.

이 세대가 가정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는 90년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너무나 변했다는 것이 바로 그 말이다. IMF를 겪으며 가장들은 한없이 쪼그라 들 수 밖에 없었고, 가부장적인 책임감이란 어느새 온 가족이 함께해야 하는 말로 변했고, 그 시기를 넘어서 정신 없이 달려와 보니 이제는 급속이 이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해가며 100년동안 변할 사회가 단, 1년여 만에 변화는 사회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런 초 경쟁사회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온간 문명 물질의 사회가 바로 눈앞에 다가 온 것이다.

바로 이 세대 남성 가장들은 경쟁과 함께 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까지 떠 맡게 된 것이다.

하나의 예로 컴퓨터와 핸드폰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마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학생시절을 보냈다면 컴퓨터의 변화는 말 안 해도 알만 하겠고, 핸드폰이야 말로 90년대 중반에 아주 고가의 일부만 쓰던 제품이 지금은 아이들도 가지고 다니는 일상용품이 되었으니 더 말 할 필요가 없겠다.

변화단계도 그렇지만 이런 패러다임에 부적응자들도 사실 상당히 많은 세대가 지금의 이 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게 된 아이들은 또 우리와 다른 사고 방식과 다른 삶을 추구 하고 있는 것을 발견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구세대의 발상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온갖 미디어를 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자녀 세대는 어차피 빠르게 변화하는 세대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어른 세대를 고루하게 보고 많이들 갈등을 겪고 있다. 원래 언제나 세대간의 갈등은 존재 하였지만 그 간극이 크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상당히 벌어진 느낌을 보여준다.

지금의 아버지는 가정에서 가장보다는 친구가 되기를 강요 받고, 아이들은 소비의 당연한 주체가 되어서, 어느 때 보다 빠르게 바뀌어가는 이 세대의 온갖 것을 접하기 바라며 살고 있다. 그런 속에서 이 시대 가장들은 빠르게 소외감을 느껴가며 어느 날 문뜩 왜 이렇게 사나하는 허망감을 한잔의 술로 달래 보는 것이다.

<남자의 공간>이란 책을 무심코 펼쳤을 때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못하고 읽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 나 자신도 두 아이의 가장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공통 된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에게는 남자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 말이 그냥 가슴을 울리는 말이 되었다.

그간 이세상에 문득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거나, 과거의 괴로움에 집착처럼 잊지 못하고 나 홀로 말 못할 때도 있었고, 가장이란 책임감과 함께 남자라면 이런 일쯤은 삭이며 살 줄 알아야 한다며 가슴에 묻은 이들을 이끄는 이 말은, 그간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세대의 남자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그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라고 그간 부리던 허세도 필요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아픔과 만나는 시간 그리고 내 안에 숨은 자신의 감정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얼마 전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욱하는 성질로 누구를 죽였다더라, 알고 보면 평소에 친절한 사람이었더라라는 뉴스의 가십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자라온 세대의 굳어진 감성과 이 엄청나게 빨라진 시대와 간극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 이시대 가장들이 잃어버린 영혼은 치유 불가능 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각자 적절한 방법을 많이들 찾고는 있겠지만 한번 이런 모든 것은 두고서 조용히 자신만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자신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아무리 부정을 하여도 분명 아프고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아픈 자신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부장적인 권위와 그런 교육을 받고 살아온 세대의 특징은 자신은 안 그렇다고 부정하는 것이 일반이라는데, 아마도 내가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마음과 같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된다.

왜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안되지?

책은 남자의 눈물이 아름답고 말하고 있다. 이 끼여 버린 세대의 아픔을 말하고, 내려 놓고, 피하지 말라고, 위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느끼고, 절절히 슬퍼하고, 그런 상황에 공감을 하고, 바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성찰하며 나의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마이클 마호니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이렇게 자신을 만나보고, 다른 관계에서 오는 여러 가지 감정인 분노하고, 증오하고, 외로워하는 감정들이 자신에게서 비롯 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한번 자신에게서 출발해 보라는 것이다.

<남자의 공간>을 읽어보면 남성들의 기본적인 감성도 그렇다고 접근하고 있지만, 심리학적인 여러 사례들을 보면 아픔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이 되는 사항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라도 그런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위로해 보라는 것이다.

누구나 모두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좋은 방법도 있다. 바로 책이란 공간이고 그런 것이 허용 안되면 극장이란 좋은 공간도 있다. 얼마 전 ‘7번 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보고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 이런 공간은 다른 이를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감정에 충실해 질 수 있는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이건 만화 속에 캔디면 충분하다. 자신을 바라 보고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산다고 힘겨워하고 무거움에 깔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책이 주는 위로이다. 눈물의 정화 작용을 믿어보자. 남자의 눈물이 아름답고 한다. 그리고 외롭고 힘겨운 굳은 마음을 풀어보자. 책이 주는 골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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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당하고 설득하라
리처드 데니 지음, 이구용 옮김 / 큰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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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당하고 설득하라] 소통하라. 그리고 설득하라.

요즘 대선도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지만 한창 대선의 공약을 얘기 할 때 세대간의 소통, 정치권간의 소통, 등 소통의 관한 주제가 화두가 된 적이 있다. 작게는 어린 시절 옆에 앉은 짝궁과의 어색한 만남을 푸는 작은 소통부터 부모님과의 소통, 형제간의 소통, 시부모와 며느리간인 고부간의 소통, 그리고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소통, 사회 나와서는 동료와 직장 상사와의 소통 등 서로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는 더 말을 안 해도 충분히 알 만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통이 화두(話頭)처럼 얘기가 되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만큼 잘 안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리 멀리 얘기를 하지 않아도 대부분 자신의 생활 영역 안에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통이 불편해지면서 온갖 오해와 미움, 상처 등으로 얼룩지는 것을 많이 경험해 봤을 것이다. 또한 사회 생활 속에서 업무적으로 소통이 안될 때 불편함이란 정말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몸으로 정말 많이 느꼈을 것이다.

이런 소통 또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는 작던 크던 온갖 생활의 문제를 일으키고 불편함을 점점 가중 시켜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 중에 하나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의외로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안돼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우리 주변을 돌아 보면 의외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그렇게 그런 소통에 관한 불편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기에 아직도 수많은 소통에 관한 기술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득 당하고 설득하라>는 그런 소통의 시작을 사람간의 관계로 시작하여 사회 생활에서 자신을 보여주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서 상대방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다.

소통의 시작을 얘기 하면서 오히려 소통은 지식과 그리 큰 영향이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납득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납득 시킬 수가 없다는 것을 먼저 알라고 얘기하고 있다. 바로 지피지기(知彼知己)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후반에는 이런 소통을 업무에 이용하여 자신의 얘기가 다른 이들에게 잘 전달되고, 전달되어서 자신의 뜻을 알리는 기술을 프레젠테이션의 한 방법으로 까지 얘기를 한다.

1장은 사람간에 작은 교감을 얘기하지만 2장은 그런 교감으로 설득시키는 과정을 얘기한다. 이 책은 그간 많이 나온 업무서적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좀더 디테일한 소통 방식을 제시하면서 그 사례와 함께 그 다음으로 넘어가서 많은 사람 앞에 나서기가 두렵거나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자신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주장과 뜻을 전달하여 자신과 같이 공감하는 사람을 형성 시켜 사회 생활 속에서 힘이 되게 해준다.

그렇게 다양한 소통의 방법과 자신이 왜 소통 할 수 없는 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 이 책 <설득 당하고 설득하라>의 가장 큰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을 설득 시키려면 상대방이 잘 듣게 하고 내가 잘 듣는 것이 시작이기는 하지만 온갖 많은 이미지가 상대방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나마 알게 해준 책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소통이 안되는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을 탓하고 돌아보면 이 책 <설득 당하고 설득하라>라는 제목의 의미가 와 닿을 것이다.

그간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꼈지만 이 평범한 진리가 이제 더 확실해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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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리어 - 뼈와 돌의 전쟁 본 트릴로지 Bone Trilogy 1
피아더르 오 길린 지음, 이원경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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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리어] 처절한 디스토피아와 생존을 위한 투쟁

낯설지 않은 인디언 식의 이름이 첫 장에 보일 때 만해도 책의 표지만큼이나 강렬한 이야기가 전개 될 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더구나 갑자기 온통 털 달린 괴물과 등 짝을 갑주로 휘감은 괴물들이 나올 때만 해도 그저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물인가 싶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을 읽어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를 넘어서 자신의 종족들 조차도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거래하는 이들의 생활방식은 마음을 서늘하고 섬뜩하게 만들기 충분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 동안 디스토피아를 그린 여러 책을 보아왔으나 이렇게 날것을 드러내면서 인간이 가진 폭력성과 바뀌지 않는 본성을 경고하고 비판하며, 이렇게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는 슬픈 미래의 경고는 몇 안 되는 것으로 기억이 된다. 자연 속에서는 서로가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관계가 자연의 합리적인 법칙이고 순리라고 말하면서 마치 인간은 그 사슬의 고리를 탈피하고 최고의 정점에서 무관한 존재처럼 군림하고 살아왔지만 이 책은 인간을 가장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다시금 인간을 문명이전으로 몰아내버린다. 그리고 그들과 동일하게 생존의 대열로 서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비밀까지 존재를 한다.

얘기의 시기는 어느 때인지 이곳이 지금 우리가 살았던 그곳인지 모호하게 전개가 된다. 하늘은 루프라는 천정으로 덮여 있고, 정체 불명의 비행체인 글로브라는 것이 떠 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우리가 사는 지구처럼 해가지고 뜨는 것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인간종족으로 분류되어 있는 그들은 오로지 식량인 고기를 얻기 위해 하루 하루 살아간다. 그들이 아머백, 헤어비스트로 불리는 다른 종족도 오로지 먹이 대상이고 거래관계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인간종족도 부족에서 필요도가 떨어지면 먹이 거래대상으로 분류되어 교환되는 물품이 되어버린다. 그 관계는 부족의 생존을 위해서 남 녀 노 소 그리고 부모 자식도 예외가 아니다. 책은 인간부족의 윌브레이커’ ‘스톱마우스형제의 살아남기를 위한 투쟁과 어머니도 먹이로 내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그들의 생존기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 부족에게 떨어진 글로브에서 인드라니라는 미모의 여성이 등장하면서 이 거친 세계가 지니는 비밀과 또 다른 루프 밖의 세계에 일부의 의문스러운 비밀을 엿보게 한다.

저자인 피아더르 오 길린은 생존이라는 명제를 통해 인간이 가지는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는데, 종족의 보존을 위한 성욕, 식욕, 등을 말하면서 결국은 인간도 그 근본으로 가면 동물의 수준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인간이 가지는 또 다른 모습인 권력욕과 파괴욕 등을 첨가하여 변하지 않는 인간의 막장 같은 욕구를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와 중에 서로 말이 통하지는 않지만 어느덧 각자의 처지에 의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안게 된 스톱마우스와 비밀을 안고 있는 인드라니의 가슴 아픔 사랑도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그녀가 떨어진 루프 밖의 세계로 향하게 되면서 형제의 갈등은 인드라니와의 삼각관계를 통해 끝을 알 수 없게 돼버린다. 그리고 결국은 스톱마우스가 알게 된 진실은 생각보다 더 어둡고 더러웠다.

책을 덮고 느낀 것은 과연 인간의 파괴적이고 악의적인 본성, 그리고 자신만의 아집으로 파멸해나가는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동물은 자신이 배고프고 필요할 때만 사냥을 하고 상대를 죽인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편견과 아집에 의해 유희처럼 상대를 죽이고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

책의 전반에 걸쳐 나오는 인간형태의 종족과 자신의 종족도 거리낌없이 먹어대는 식인의 모습에서 어쩔 수 없는 혐오감이 생기기도 했지만 오히려 보면 볼수록 살아가기 위해 얻을 수 있는 식량이 그것 밖에 없는 세상임을 알게 되고 오히려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유희처럼 즐기고 있는 루프 밖의 인간들에게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마치 영화 트루먼 쇼헝거 게임그리고 얼마 전에 본 캐빈 인더 우즈를 합쳐 놓은 것처럼 롤프레잉 게임을 하듯이 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오만을 떠는 루프의 인간들도 결국은 또 다른 이기심의 인간이었고 인간이 갖고 있는 그 본성에서 별다를 것 없었다. ‘인피리어는 약자 또는 하위의 존재를 말하고 있지만 결국 누가 더 약자인지는 모르겠다. 상당히 방대한 지역에 다양하게 등장하는 생물 종에도 아주 흥미롭고 때론 공포스러웠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다양한 괴물들이 보여 질지 자못 기대가 된다.

인피리어는 이제 시리즈의 시작이다. 생각보다 상당히 묵시록적이고 얘기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 보이는 시작이다. 다음편이 본 트롤리지라고 하는데 안타까운 바바리안 스톱마우스와 루프인 인드라니의 로맨스도 더 기대가 되고 스톱마우스가 이끄는 새로운 부족과의 생존기도 궁금하다. 더 궁금한 것은 혹시나 루프인들이 만들어 놓은 신세계에 대한 궁금증이다. 새로운 생물 종을 만들고 조종하는 그들의 본 모습도 궁금하다. 그들은 인간종족의 이런 모습이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말하며 이들은 심판 받는 것이라 말하고 있어 더욱 궁금증을 더한다. 정말 다음편이 어떨지 기다려지는 책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식인이 잔혹한 것이 아니라 식인을 하게 만든 환경이 잔혹 할 뿐이다. 충격을 넘어 자연스러운 그들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 책에 다음이 기다려지는 이유라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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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 -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의 힐링에세이!
와타나베 가즈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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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자신을 조용히 돌아보게 합니다.

 

 

 

와타나베 가즈코수녀님의 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일본에서도 베스트 셀러에 오른 작품이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힐링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도 않고 그리 작지도 않으면서도 그녀의 담담한 자신의 얘기들은 마음의 울림을 준다.

 

누구나 자신의 삶이, 자신이 재단하고 계획한대로 한치의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우리에게 종교나 신을 믿는 행위는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렇게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족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보다 더욱 넘치는 욕망을 가지고 있어 바로 인간을 망치고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을 만들어 끝내는 그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또 한 해가 넘어가는 이 마지막 달을 바라보며 어느덧 시간에 표류하는 자신을 바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사람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행복의 기준을 만족 시키기 위해 또 한 해를 쫓아 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느 때는 자신이나 타인에게 분노하고, 어느 때는 다가 올 미래에 불안해 하며, 때로는 불평불만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을 되돌아보게 된다.

와타나베 가즈코 수녀님이 들려주는 자신의 얘기는 그녀가 종교인으로 깊은 신심(信心)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 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좌절과 불평, 불만, 분노, 그리고 삶의 고달픔을 위로하고 잘 다스려주는 힐링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어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 마음에 평안을 가지게 만든다.

요즘은 주변의 자기계발서니 아니면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라느니 하는 자신의 발전과 함께 자신의 행복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생각하고 기준으로 하는가를 얘기하는 책들이 주변에 많이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어느 때는 오히려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에서 오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에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 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가즈코 수녀님의 이야기는 자신의 지식을 드러내기보다는 그녀가 그 동안 기도하며 마음에 쌓아 두었던 그녀의 이야기를, 마치 옆에서 가만히 지켜 보며 따듯하게 같이 손잡고 나는 이럴 때 이렇게 살았다네, 그리고 내가 기도해주겠네?” 하듯이 따듯한 목소리로 담담히 얘기를 걸어 줄 뿐이다.

하지만 그녀의 소리를 듣고 그녀를 돌아보았을 때는 단순히 격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당신이 살아갈 이유가 있다고도 얘기를 들려준다.

가즈코 수녀님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우리나라에도 한 분 생각나는 분이 있다. 바로 이해인수녀님이신데 바로 그녀가 들려주는 목소리와 오버랩 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가즈코 수녀님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의미 없게 인생을 만든 자신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작건 크건 자신이 태어나 할 일이 있는 것인데 쉽게 포기하고 쉽게 좌절하고 쉽게 분노하는 자신에게도 이미 자신의 삶의 역할이 있음을 깨닫으라는 당부도 하고 있다. 길가의 잡초도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위해 애쓰는데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런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을 쓰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한 인생을 사는 동안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라 라고 할만한 답은 명확히 내릴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만의 할 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거기서 어떤 모양의 꽃이던 피운다면 스스로의 삶을 납득할 만 할 것이다.

이제 올 한해도 내일이면 다 가겠지만 내년에는 나도 어떤 나만의 꽃을 소망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해보며 마쳐본다.

Ps.책 속에 있는 갖가지의 꽃 그림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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