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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공간 - 남자는 가끔 행복한 혼자를 꿈꾼다
이문희.박정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남자의 공간] 을 읽고
지금의 3,40대 남자들은 아마도 거의 가부장작인 우리 사회가 가장 팽배 할 때 자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아버지세대도 전쟁을 겪으며 거의 생존이 중요한 시절을 보내다 보니, 지금의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기본적인 의, 식, 주가 가장 절실한 세대를 거치며 살아 왔다. 그런 시절을 보낸 아버지세대는 자신의 생존뿐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살게 되었고 가장의 책임이란 무거운 짐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의 말에 온 가족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여야 했고, 아버지의 권위는 모든 일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버지 아래 에서 자란 지금 3,40대의 남자들도 거의 대동소이하게 그런 모습을 보고 자라, 아마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 했다고 하지만 적어도 그런 가장이란 책임감과 그런 중압감을 당연시 하며 살아 왔다고 할 수가 있다.
물론 개개인의 편차와 살아온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일반화 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가부장적인 문화와 남성이 주류가 되는 사회가 이 사회를 그 동안 이끌어 왔다는 것은 쉽게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우리 어린 시절은 남자라면 쉽게 감정을 들어 내지 않게 교육을 받아 왔고, 슬퍼도 외로워도 남자라는 그 말 앞에 그런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남자답지 하다는 말을 들어왔으며, 어쩌다 친구와 싸워서 코피가나고 울게 되면 우는 것만으로도 지는 쪽이 되었으니, 그런 시절을 보내며 자란 남성성은 그런 은근한 마초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살아온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부터가 돼버렸다.
이 세대가 가정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는 90년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너무나 변했다는 것이 바로 그 말이다. IMF를 겪으며 가장들은 한없이 쪼그라 들 수 밖에 없었고, 가부장적인 책임감이란 어느새 온 가족이 함께해야 하는 말로 변했고, 그 시기를 넘어서 정신 없이 달려와 보니 이제는 급속이 이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해가며 100년동안 변할 사회가 단, 1년여 만에 변화는 사회로 변모하고 말았다. 그런 초 경쟁사회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온간 문명 물질의 사회가 바로 눈앞에 다가 온 것이다.
바로 이 세대 남성 가장들은 경쟁과 함께 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까지 떠 맡게 된 것이다.
하나의 예로 컴퓨터와 핸드폰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마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학생시절을 보냈다면 컴퓨터의 변화는 말 안 해도 알만 하겠고, 핸드폰이야 말로 90년대 중반에 아주 고가의 일부만 쓰던 제품이 지금은 아이들도 가지고 다니는 일상용품이 되었으니 더 말 할 필요가 없겠다.
변화단계도 그렇지만 이런 패러다임에 부적응자들도 사실 상당히 많은 세대가 지금의 이 세대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게 된 아이들은 또 우리와 다른 사고 방식과 다른 삶을 추구 하고 있는 것을 발견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아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구세대의 발상처럼 여겨지게 되었고 온갖 미디어를 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자녀 세대는 어차피 빠르게 변화하는 세대의 흐름을 못 따라가는 어른 세대를 고루하게 보고 많이들 갈등을 겪고 있다. 원래 언제나 세대간의 갈등은 존재 하였지만 그 간극이 크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상당히 벌어진 느낌을 보여준다.
지금의 아버지는 가정에서 가장보다는 친구가 되기를 강요 받고, 아이들은 소비의 당연한 주체가 되어서, 어느 때 보다 빠르게 바뀌어가는 이 세대의 온갖 것을 접하기 바라며 살고 있다. 그런 속에서 이 시대 가장들은 빠르게 소외감을 느껴가며 어느 날 문뜩 ‘왜 이렇게 사나’ 하는 허망감을 한잔의 술로 달래 보는 것이다.
<남자의 공간>이란 책을 무심코 펼쳤을 때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못하고 읽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 나 자신도 두 아이의 가장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공통 된 사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에게는 남자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 말이 그냥 가슴을 울리는 말이 되었다.
그간 이세상에 문득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거나, 과거의 괴로움에 집착처럼 잊지 못하고 나 홀로 말 못할 때도 있었고, 가장이란 책임감과 함께 남자라면 이런 일쯤은 삭이며 살 줄 알아야 한다며 가슴에 묻은 이들을 이끄는 이 말은, 그간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이 세대의 남자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그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라고 그간 부리던 허세도 필요 없고 오로지 자신의 아픔과 만나는 시간 그리고 내 안에 숨은 자신의 감정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결국은 얼마 전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욱하는 성질로 누구를 죽였다더라, 알고 보면 평소에 친절한 사람이었더라’ 라는 뉴스의 가십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자라온 세대의 굳어진 감성과 이 엄청나게 빨라진 시대와 간극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 이시대 가장들이 잃어버린 영혼은 치유 불가능 한 것인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각자 적절한 방법을 많이들 찾고는 있겠지만 한번 이런 모든 것은 두고서 조용히 자신만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자신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아무리 부정을 하여도 분명 아프고 괴로워하고 외로워하는 아픈 자신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가부장적인 권위와 그런 교육을 받고 살아온 세대의 특징은 자신은 안 그렇다고 부정하는 것이 일반이라는데, 아마도 내가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마음과 같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된다.

왜 남자가 눈물을 흘리면 안되지?
책은 남자의 눈물이 아름답고 말하고 있다. 이 끼여 버린 세대의 아픔을 말하고, 내려 놓고, 피하지 말라고, 위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느끼고, 절절히 슬퍼하고, 그런 상황에 공감을 하고, 바로 그런 나를 바라보고 성찰하며 나의 마음의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끼라는 것이다.
심리학자 마이클 마호니는 ‘자기 성찰’을 통해 이렇게 자신을 만나보고, 다른 관계에서 오는 여러 가지 감정인 분노하고, 증오하고, 외로워하는 감정들이 자신에게서 비롯 됐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시 한번 자신에게서 출발해 보라는 것이다.
<남자의 공간>을 읽어보면 남성들의 기본적인 감성도 그렇다고 접근하고 있지만, 심리학적인 여러 사례들을 보면 아픔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이 되는 사항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지금 이라도 그런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위로해 보라는 것이다.
누구나 모두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좋은 방법도 있다. 바로 책이란 공간이고 그런 것이 허용 안되면 극장이란 좋은 공간도 있다. 얼마 전 ‘7번 방의 선물’이란 영화를 보고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 이런 공간은 다른 이를 의식하지 않고 나만의 감정에 충실해 질 수 있는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이건 만화 속에 캔디면 충분하다. 자신을 바라 보고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산다고 힘겨워하고 무거움에 깔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책이 주는 위로이다. 눈물의 정화 작용을 믿어보자. 남자의 눈물이 아름답고 한다. 그리고 외롭고 힘겨운 굳은 마음을 풀어보자. 책이 주는 골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