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걸 씨! 강의해주실래요? - 청중을 열광시키는 강의 비법 62
김홍걸 지음 / 작은씨앗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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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걸씨 강의해 주실래요?] 강의는 인생의 축소판이다.

김홍걸이분은 이름도 상당히 투박하지만 겉모습은 더욱 투박한 막걸리타입이라면 실례되지 않을까? 하는 분이다. 강사와의 인연은 몇 년 전인가 평소 같으면 가기도 싫은 어느 관공서의 행사장에서였다. 사실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강사의 강연이 재미있으면 얼마나 있겠나 싶기도 했지만 그날따라 과중(?)했던 업무의 스트레스에 쌓여 있는 것 보다는 차라리 거기라도 가서 하루를 보내는게 낫다 싶어 가게 된 자리였다. 어차피 회사와 관계된 인사치레가 우선이었기에 별 생각 없이 간 자리에서 정말 말도 안되게 두 시간 가량을 웃다가 나왔다. 그리고 그 강사 되게 재미 있게 하네하고는 또 하루 하루 자신의 일에 빠져 살며 잊고 지내다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모 세미나 장에서 또 김 강사의 강의를 듣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김 강사의 외모를 보고 요즘 노인어르신을 모아 놓고 이상한 건강식품 파는 그런 사람 아닌가 하는 선입견이 생길 정도로 장사꾼 같은 이미지의 다른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그의 강의가 진행되면서 어느덧 웃고 감동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앞으로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판단하는 우()를 법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정도였다.

김홍걸 강사의 강의는 사실 철 지난 유머도 있고 얘기도 그리 특별한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가 보여주는 강의 속에는 인생이 있고 진심이 있어서 마음이 열리고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웃음과 함께 강의 끝에는 아쉬움이 느껴지게 만드는 그만의 특별함이 있었다.

그때의 그 강의를 끝으로 더는 인연이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홍걸씨 강의해 주실래요?>라는 김 강사의 저서와 인연이 닿게 되어 기쁜 맘으로 읽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종종 프레젠테이션이나, 많지는 않지만 여러 사람 앞에 나서서 말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기에 이 기회에 그런 불편한 부담을 벗어보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평소 대중 앞에서 공적인 전문지식을 가지고 하는 사무적인 발표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서 하게 됐지만 항상 그럴 때 마다 부담스럽고, 긴장감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더구나 편한자리에서도 쉽게 딱딱한 모습을 벗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때의 김 강사가 보여 준 좌중을 부드럽게 만드는 몇몇 팁이나 주제의 핵심을 편하게 전달하는 시기 적절한 말솜씨는 지금도 기억에 남았었다.

그 때문에 그의 강의 스킬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으로 읽게 됐지만 다 읽고 나니 그의 펀 강의는 그저 눈대중으로 흉내만 내서는 그처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강의에는 그만의 철학과 동기부여와 그만의 콘텐츠가 있기 때문에 그만의 강의를 하고 좌중을 웃겼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저서에는 강의와 좌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말을 잘 하는 방법을 잘 안내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그의 인생담이 먼저 들어오고 그의 인생의 깊이가 먼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찌 보면 청중의 마음을 사로 잡는 그의 강의 속에는 그저 대중이 원하는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라 그만의 철학을 담고 있었기에 자신이 평소 못 느꼈던 사실을 깨닫고 그 말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첫 장을 넘기면서 기대 했던 것은 그의 대단했던 강의 스킬이었지만 그가 말하는 강의 노하우를 따라가며 느낀 것은 한마디로 그의 인생이고 그의 철학을 다시금 배우는 또 다른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왜 청중들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 할 수 있었고 그의 작은 몸짓과 몇 안 되는 지시에도 그렇게 웃고 즐겁게 강의를 들을 수 있었는지 알게 된 것이다.

<홍걸씨 강의 해주실래요?>를 다 읽고 마지막에 생각을 떠 올린 것은 오히려 그의 강의 방법이 아니라 그가 말하는 인간관계의 기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개인의 인간관계의 기술에도 기술이 필요 하지만 그가 보여준 좌중의 마음을 잡아두는 그만의 강의 기법이야 말로 인간관계의 집합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누구나 말을 잘하고 여러 사람 앞에 인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겠지만 지금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마음을 읽어내는 김홍걸 강사의 이 책은 말 잘하는 강의 기법이전에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그가 크게는 좌중을, 작게는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려줄 테니 말이다.

뚝배기보다 장맛이것이 김홍걸 강사에게 가장 걸맞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말을 잘하기 위해 어떤 기법을 배우기 이전에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신의 철학을 가지라는 강사의 말이 더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홍걸씨 강의해 주실래요?> 그의 자전적인 인생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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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고백
조두진 지음 / 예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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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고백]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이란 사람이 가진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인간이 동물처럼 본능에 의지하는 삶을 살았다면 당연히 지금과 같은 계속된 문화와 문명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단순히 사물의 경험이나 지식만을 쌓아 나가는 공간으로 기억이 활용된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가진 그 기억이란 공간은 사람이 가진 모든 감정들인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저장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이 가진 감정이란 것이 크게는 역사를 만들기도 하지만 작게는 한 인간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만큼 감정에 지배를 받기 쉬운 것이 인간이고 그로 인해 우리가 느끼는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론 그 감정의 기억 때문에 삶과 죽음이 결정 되기도 한다.

조두진의 소설집 <진실한 고백>에서는 바로 인간이 가진 기억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다. 단순히 그간 살아온 개인의 정보만을 담는 것이 기억이 아니라 인간이 살기 위해 어떻게 기억을 담아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우리도 살아오면서 즐거운 기억만이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추억을 하면서 회상해 보면 어떻게 그런 상황을 넘어 왔는지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은 기억에 불행의 기억 보다는 행복의 기억을 남기길 더 원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심리학의 트라우마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심리적인 상처를 얘기하기도 하고 무의식의 저편을 건드리는 최면술로 어두운 기억들을 또는 상처 받은 기억들을 끌어내어 자신도 모르는 아픔을 다시금 치료하여 심리적인 안정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런 기억이란 저장소에 자신이 구분하여 저장하고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가 망각(妄却)이라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몇몇 사람에게는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일이 상처가 되어 삶과 죽음을 선택하기도 하니 인간이 받은 망각이란 선물도 이럴 때 보면 그리 썩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한 개인이 일생을 살면서 이런 저런 일들을 겪지만 그 속에서 담아내고 싶은 좋은 기억들만 있다면 좋겠지만 한 인생을 좌우 할만한 어느 범위를 넘어서는 기억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냥 망각의 강물에 맡겨 버리고 그냥 이어진 시간 속에서 이것 또한 지나가리하며 살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 동물과 확실히 구분되어지는 경계가 이쯤인 듯 싶다.

조두진의 소설집에는 여섯 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잊혀진 죽음의 이면을 보여준 끼끗한 여자’, 시로 승화된 자신의 기억에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보여주는 시인의 탄생’,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무기수의 고백 속에 담긴 기억의 왜곡을 말하는 진실한 고백’,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엉뚱한지를 보여주는 어머니의 손맛’, 무의식 속에 가려진 상처가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지배 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정희 선생님’, 한 소년의 기억에 담긴 상징적인 이야기와 그 기억 속에 담긴 어두운 그림자의 진실을 보여준 뻐꾸기를 보다이렇게 여섯 가지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인간이 가진 기억이란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다른 면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게 작가가 보여주는 기억에 의존한 우리의 생각이란 것이 얼마나 인간들의 편리에 의해 왜곡되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반전으로 우리의 뒤통수를 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이미 우리 누구나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자기 방어 본능 인지도 모른다.

어느 선을 넘어 정신이 가진 상처에 함몰되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모르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발동되어 누구나 선뜻 이렇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나약한 심성이라고 말하기에 앞서 누구나 그렇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을 합리화 하면서 아픈 상처를 피하고 자신의 기억 속에 행복한 기억으로만 남기고 싶은 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기 본능이라고 말한다면 맞을까?

본능이라는 말에 조금 어폐가 있겠지만 조두진의 소설집에 나온 여섯 가지의 이야기는 기억이 가지는 자기왜곡, 혼란, 또는 엉뚱한 확신, 상처, 무의식 속의 기억 등을 얘기하고 있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좋은 것만 남기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한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렇게 얄팍한 기억의 저편에 항상 진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알 것이다. 이렇게 아무리 합리화 한다고 해서 아니 자신이 믿는 기억이 확실하다 믿는다고 해서 진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기억이란 여려 겹의 껍질 속에 자신을 가린다고 해서, 다른 이가 모른다고 해서, 지나간 사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마도 평생 곱씹는다 할지라도 아마 알 것이다. 자신만은 이미 진실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이순간 이 책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은 아마 자신의 마음속에 기억을 하나 둘씩 끄집어 내볼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꾸며 놓았는지 아니면 이제는 잊어버린 기억 저편으로 던져 놓았는지를.

조두진의 소설집 <진실한 고백>은 기억이란 주제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잊고 싶고 꺼내기 힘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본성과 그의 그림자를 들춰내니 얘기가 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흠칫 자신의 기억의 편린 속에 이런 이야기가 하나쯤 있지 않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조두진의 여섯 가지 이야기는 혹시 나도 그런 변명과 그런 도망침이 있지 않을까 다시금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조두진의 이야기 그대로 그런 마음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인간의 본성을 들춰 내는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다시 나를 돌아보게 만들고 인간을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이 가진 어떤 분노 속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다른 이를 보기보다는 나를 바라보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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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1
허영만 지음 / 월드김영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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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무사] 전 세계를 정복한 초원의 왕의 시작을 알리다.

허영만 선생님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초원의 제왕이자 중국의 광활한 영토를 비롯하여 유럽까지 공포에 몰아 넣은 칭기즈칸 테무진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테무진이 손쉽게 몽골의 초원부족을 통일하여 수많은 국가를 정벌하러 다닐 힘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많은 죽음의 갈림길을 오가며 삶보다는 죽음이 익숙한 굴곡의 세월이 더 많은 이라는 것은 그리 잘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칭기스 칸의 이름과 그의 엄청난 정복 사업에 더 중점을 둔 영웅담을 알고 있으나 사실 그 자리를 오기까지 이어진 피로 점철 된 그 길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은 칭기스칸 이란 상징적인 이름과 송나라를 무너트리고 원나라를 세운 칭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 더 익숙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무진이란 초원의 부족장의 아들이 칭기스칸이란 대칸의 이름을 얻고 초원을 통일하고 한족이 지배하는 중국을 정복하고, 심지어는 유럽을 정벌하여 지금까지도 아시아의 힘을 보여준 그의 일대기는 말무사에서 보여주는 그의 생존 싸움에서부터 시작하게 된다.

허영만 선생이 그의 일대기를 시작하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몽골의 초원을 살아가는 그들의 습성을 잘 말해주고 있는데, 원나라 쿠빌라이칸이 초원의 무사는 말 위에서 살고 죽음도 말 위에서 맞이한다는 말을 했다는데 그런 그들의 습성은 결국 원나라가 8대를 이어가지만 뿌리가 없는 그들의 문화로 인해서 중국 본토에서 실패하고 초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쩌면 그들의 자유로운 초원의 생활이 없는 중원의 답답한 생활은 그들을 못 견디게 만들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분열 된 초원의 부족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푸른늑대의 후손 칭기스칸 테무진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넓고 넓은 광활한 초원의 삶과 자유로움, 그리고 치열한 생존의 법칙까지를 체험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좁은 우리의 영토개념에서 그들이 느끼는 영토 개념을 비교하며 더 넓은 세상의 자유로움까지 만끽한다면 더 좋은 체험의 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아주 작은 자신의 일을 처리하기에 골몰하며 살아 왔을 것이다. 하지만 테무진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작은 일보다는 더 큰일과 더 커다란 미래의 일을 두고 호방하게 처리하는 테무진과 그의 행보 속에서 통쾌함을 느낀다면 현실의 답답함에서 오는 위축되는 자신에게 작은 대리만족이 될 것이다.

이제 1권을 시작으로 완간이 되었으나 1권의 소개로나마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와 장차 아내가 되는 보르테그리고 의형제인 ‘’자무카와의 관계가 흥미로워 보인다.

이제 테무진의 발자취를 따라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시작해 보려 한다. 그가 과연 어디까지 가서 모든 것을 성취 할지 1권의 끝을 덮으며 다음 권을 기다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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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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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요]그래픽 노블의 또 다른 감성을 보다.

우리에게 그래픽 노블이라 하면 확실히 익숙한 분야는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접해 온 만화책이라면 쉽게 이해가 갈 수 있을 것이다. <코믹스>와는 또 다른 형태로 발전해 온 <그래픽 노블>은 마치 소설처럼 장편의 얘기와 완결된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이야기책인데, 하나의 책에 또 다른 삽화가 첨부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겨 보는 만화책 형태의 책으로, 주로 성인 대상의 얘기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자전적인 얘기를 그리고 있는 크레이그 톰슨 <담요>도 그런 그래픽 노블 중에 하나로 자신의 어린 시절의 방황과 성장기, 그리고 사랑, 애증 등의 여러 가지 경험담을 매우 감성 깊은 언어로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보여 주고 있다.

어린 시절의 엄격한 아버지와 종교에 심취해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이런 저런 정서적인 혼란에 휩싸이며 그런 트라우마를 안고 커온 크레이그 앞에 어느 날 사랑이 찾아온다.

하지만 어린 시절 겪었던 친구들로부터의 따돌림과 계속된 여러 상처들은 결국 크레이그에게는 어두운 자신의 그림자로 남아, 모든 것에 소심해지고 부정적이고 엄격해진다. 거기에 종교적인 영향 앞에 자신을 더욱 그곳으로 내몰지만 크레이그 앞에 구원은 더욱 더 없어 보이고 요원해 진다. 그런 중 만난 레이나는 그런 그를 이해해 주는 구원자요, 천사요, 사랑의 뮤즈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삶의 상처 속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를 위로 하고 청춘 남녀가 그렇듯이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청춘만큼이나 짧았던 그들의 만남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서로의 먼 거리만큼 천천히 사랑 앞에 놓인 그들만의 삶의 무게를 벗지 못하고 담담히 좋은 추억으로 세월 속에 묻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남은 것은 레이나가 선물로 준 조각 천을 잇대어 만든 퀼트<담요>가 남아 서로의 아픈 마음을 하나씩 보듬고 수놓아 가던 그때를 회상해 보게 된다.

크레이그의 <담요>는 이렇게 크레이그의 성장과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그곳에는 자기 성찰이 가득 묘사되어 있어 매우 환상적인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이나 뭉크절규처럼 그의 어린 시절의 혼란과 상처를 자유로운 그만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 그가 어린 시절 느꼈던 아픔의 고통을 독자들에게 고백하듯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었던 동생과의 즐거운 회상, 그리고 종교적인 갈등과 회의(懷疑)를 판타지처럼 그려내면서 성장 후에 자신이 담담히 고백하게 되는 과정까지의 심리적인 굴곡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가장 아름답게 묘사된 레이나와의 만남은 사랑이기도 하고 가슴 아린 아련한 추억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가 가진 상처를 씻어내고 한 사람의 어른으로 성장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 중요한 때이기도 했다.

<담요>에서 크레이그는 자신의 얘기를 입을 열어 어떤 말로 전하는 묘사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심중의 얘기를 마치 독백하듯이 그림으로 주로 그려낸다. 그만큼 그가 그림으로 자신을 그려내고 그가 혼란스러웠던 그때의 상처와 아픔 그리고, 사랑까지. 침묵의 언어인 그림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어 더 담담하거나 더 가슴저린 안타까움을 보여주고 있다.

레이나와 사랑 이후는 더욱 담담히 그려나가고 있는데, 그럴 수록의 그가 성장하는 속에서 그의 아픔을 감내하고 이겨나가는 성장 된 자신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청년이 된 크레이그 앞에 이제는 무서움도 두려움도 혼란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그렇게 두렵게 느끼고 보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조차도 평범하고 오히려 이제는 초라해 보이기까지 그려진다. 그리고 결국 그 자신이 이제는 하나의 추억과 또 다른 자신의 인생을 쌓아 갈만큼 성장했음을 알게 된다.

사람이 커간다는 것은 어린 시절 어려움과 두려움에서 자신을 책임 질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크레이그가 아무리 불행한 어린 시절과 가슴 아린 사랑을 했더라도 그것은 그가 커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픔은 그만큼 자신을 계속 바라보게 했고 그 가운데 고통, 외로움, 혼란, 회의, 사랑, 등은 그를 키워주는 자양분이 되어, 이제는 하얀 눈 위에 찍힌 자신의 긴 발자국들의 모습만큼이나 모든 것에서 벗어난 뒤안길을 보여준다.

크레이그가 보여주는 자유로운 그림체는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그의 마음을 따라가느라 독자도 혼란스럽지만 그가 보여주는 그만의 따뜻한 감성은 하얀 눈이 내려 앉은 코넷티컷의 숲처럼 평온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가 성장하며 겪는 여러 일들을 같이 마음에 담다 보면 저절로 마음에 힐링이 되면서 평온해지고 푸근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레이나'와 서로를 보듬어 나가는 모습은 소설이기는 하지만 그림을 가득 담은 <그래픽 노블>만이 보여주는 감성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추운 겨울에 마음을 적시는 크레이그에 또 다른 로맨스를 그리며 그의 다른 작품을 찾으러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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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 우리 시대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인문 지식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1
주현성 지음 / 더좋은책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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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 읽다 보면 저절로 정리가 된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우리 실생활과는 별로 상관 없거나 고리타분한 책상물림의 학문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미 우리의 생활 속에서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있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관계로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인문학을 뚜렷하게 어느 학문처럼 시작을 하려 하면 의외로 그 범위가 만만치 않아 무엇을 먼저 알고 무엇을 먼저 손대야 할지 막연하게 느껴지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돌아 보면 이미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오는 동안 겪는 일 대부분이 이 인문학의 부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에 어느 정도 큰 틀을 그리다 보면 그리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인문학을 분류하면 정치, 경제, 철학, 예술, 역사, 종교의 모든 분야가 망라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나지만 생각보다 가깝게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더 쉬울 수가 있는 것이 또 인문학일 것이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TV프로그램 속의 내용에도 거의 이런 인문학의 지식이 녹아 있다. 아이들이 접하는 게임이나 심지어는 교과서나 아이들이 잘 보는 그리스로마신화를 주제로 만든 만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이미 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지식의 체계적인 접근은 앞서 말 한대로 쉽지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미 알고 있지만 정리된 지식으로 아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인문학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동안 상식처럼 두서 없이 접하던 지식을, 그래도 어느 정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알고 싶은 욕구가 있었지만, 학문서로 접근하면 어렵고, 그렇다고 상식백과나 어느 한 분야만을 찾아보기에는 전체의 맥이 안 잡히는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은 어느 정도 너무 한 분야에 치우쳐, 깊지도 않으면서도 전체적인 흐름과 인간이 가지고 있던 지적 욕구 흐름의 변천까지를 잘 정리해주고 있다.

책의 서두에 있는 심리학은 요즘 우리가 잘 쓰는 말 중에서 트라우마라는 말을 낯설지 않게 해준 프로이트, , 등을 들어 이런 심리학의 기본의미가 우리가 자주 접하는 소위 막장드라마라 하는 곳의 인물에서 얼마나 잘 표현 되는지를 알게 해주고 있다.

우리가 한때 아이들의 만화학습서로 돌풍을 일으킨 그리스로마신화 속에 겉보기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역사가 얼마나 이 신화 한 가운데 은유적인 묘사로 표현되었는지를 알게 해준다면 그 다음부터는 르네상스와 인상파회화로 이어지면서 그 속에 연관되어 보여지는 정치 경제 문화 인물의 연관성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여섯 가지의 주제가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하나의 주제 속에서 다음 주제로 파생되어 가는 단계 속에서, 인물과 그 당시의 이런 지식이 어떻게 부합이 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고, 또 우리가 아는 종교와 정치 경제 문화가 어느 시대를 통해 하나의 단순한 이슈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우리 생활 속에서 거듭 되 살아나는 트렌드로 재생산되는 것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우리가 아는 비 실용적이다 라는 명제는 이미 이 책을 읽는 순간 의미를 잃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 같은 인스턴트 시대에 이렇게 지식과 생각의 사유를 요구하는 인문학은 얼마 전 마이클 샌델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비로소 우리 실생활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그의 철학적 접근 방법과 그에 따른 복합적인 인문학의 지적 유희가 또 다른 재미와 트렌드로 인식 되어져서 인문학의 관심과 욕구가 높아진 상태이다.

아직은 먹고 살기 바쁜데 왠 인문학이냐 할지 몰라도 인문학은 어차피 인간이 중심이 된 인간 학문이기에 삶의 메마름이 느껴진다면 오히려 더 인문학의 역할은 메마른 삶을 채워주기에 더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삶의 건조함이 느껴진다면 과감히 어느 책이든지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욕구가 느껴진다면, 그때 가서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으로 그간 알고만 있었던 지식의 단편들을 정리해본다면 의외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에 놀랄 것이고 또 몰랐던 퍼즐 같은 빈자리가 메워지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뭐든 시작이 중요하니 지금 이순간 바로 START 해보기를 권해 본다.

의외로 삶이 풍부해지는 느낌이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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