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한 배에 탄 승객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달의 뒤편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생의 축소판인 여행을 통해, 환대와 신뢰의 순환을 거듭하여 경험함으로써, 우리 인류가 적대와 경쟁을 통해서만 번성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달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지구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것과 그 푸른구슬에서 시인이 바로 인류애를 떠올린 것은 지구라는 행정의 승객인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서로에게 보여준 신뢰와 환대 덕분이었을 것이다. - P148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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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식>

《대화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2018년 6월에 시작해 11월에 끝난 시즌1, 그리고 2019년 3월 시즌2까지 나왔었던 프로그램. 나는 TV가 없어 꽤 최근에야 유튜브 클립 영상으로 알게 되었다. 지코가 나왔던 회차를 제외한 모든 클립 영상들을 봤고 몇 편은 구매해서 볼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대화의 희열》 시즌2까지 여러 분야의 게스트들이 출연했는데 그중에서 시즌2에 나왔던 배철수 씨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이 젊을 때가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는데, 당시 배철수 씨는 음악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몰랐었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그 시기를 뒤돌아보면서 그때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아선 안 됐었구나 생각했었다고. 그래서 아직도 본인은 그때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에게 부채의식이 있다고 했다.

2008년의 어느 날 종로3가역 환승통로를 지나다가 독거노인 지원단체에서 후원자를 모집하기 위해 세워둔 독거노인들의 생활 모습이 담긴 사진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한 적이 있다. 이는 외할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2006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는 중풍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그나마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지팡이를 짚으시면서 움직이시는 정도였고 손수 반찬도 해주시곤 했는데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는 아예 일어나지 못하시게 되었다. 당시 사춘기였던 나는 할머니가 귀찮았고 친구들과 한창 놀 시간에 집에 돌아와 밥을 챙겨드려야만 했던 게 너무 싫었었다. 그 당시 철없던 내 모습에 대한 죄책감과 할머니에 대한 부채의식이 독거노인 후원 용지에 사인을 하고 오게 했던 것이다.

또 요새는 부쩍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다에서 나오는 쓰레기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담배꽁초라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되면서 적어도 내가 피운 담배는 하수구나 길바닥에 함부로 버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여분의 담뱃곽을 갖고 다니면서 내가 피운 담배를 빈 곽에 모아 한꺼번에 처리하고 있다. 어려운 것도 아니고, 습관을 들인 후에는 다른 것도 해보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역시 환경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나의 모습에 대한 반성과 부채의식인 것이다.

최근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활동가 4명이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하다가 법원에 의해 선고받은 벌금 4440만 원으로 인해 교도소에서 노역을 살게 된 적이 있었다. 벌금을 내느니 차라리 노역을 살겠다며 교도소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그분들의 벌금을 대신 내주었고 4일 만에 교도소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이 역시 부채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본다.

지하철에 있는 엘리베이터, 그리로 저상버스 등을 이용하며 조금이라도 편하게 이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전장연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노고를 알지만 선뜻 그 활동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벌금을 대신 내준 것이고 말이다.

5년 전 촛불집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명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산 쇠고기파동, 용산참사, 4대강 사업,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및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의 사망 등 여러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국민들의 마음에 대표자를 잘못 뽑았다는 죄책감과 부채의식을 갖게 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최순실 태블릿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2016년 연말, 촛불에 불을 지폈던 것이다.

누구에게든 ‘옳은 것‘에 대한 부채의식이 남아있다면 언젠가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2016년의 어느날처럼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드는 것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을 시작한다던가, 길에 보이는 쓰레기를 하나 줍는 작은 실천의 모습으로 발현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작은 것들이 모이면 더이상 작은 것들이 아니게 될 것이고, 어쩌면 더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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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 P24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 P51

기억이 소거된 작은 호텔방의 순백색 시트 위에 누워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힐 때,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설 에너지가 조금씩 다시 차오르는 기분이 들 때, 그게 단지 기분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 경험해본 사람은알 것이다. - P68

무슨 이유에서든지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은 현재 안에 머물게 된다. 보통의 인간들 역시 현재를 살아가지만 머릿속은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에 하지 말았어야 할 말부터 떠오르고, 밤이 되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뒤척이게 된다.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데려다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 P81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 이렇게 읽을 수 있다. 만약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것, 즉, 그림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조차 신경쓰지 않는 것들, 그러나 잃고 나면 매우 고통스러워지는 것들. 그 그림자를 소중히 여겨라. 하지만 만약 그것을 잃었다면, 그리고 회복하기 위해 영혼까지 팔아야 한다면, 남은 운명은 방랑자가 되는 것뿐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면 굳이 그림자가 없어도 된다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소설의 결말을 다시 읽어보면,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있다. 단지 돈이 그림자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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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작가SF단편모음집
파출리 외 지음 / 온우주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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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에 다 읽어서 좀 뜻깊다. 이 단편소설집에 실린 모든 소설들을 재밌게 읽었고, 그 중에 치킨과 맥주가 가장 충격적이고 재밌었으며, 토요일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듯해졌고, 기사증후군에서 피식거렸다. 하지만 거의 모든 소설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의 삶을 고민한 흔적들이 보였고 또 어떤 면에서는 현재의 남성중심 사회에 저항하는 부분도 읽혔다. 앞으로도 여기에 작품을 실은 모든 작가들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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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 가갸날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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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좀 지루했지만 점점 나혜석이란 인물에 대해 궁금해진 책. 지금 읽으면 분명 조금 빻은 부분도 있지만 쓰여진 시대를 생각해봤을 땐 무척 깨어 있었고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여성을 관찰하였으며 나혜석 화가의 조국과 조선 여성에 대한 연민이 많이 드러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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