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디지털 상품은 은근슬쩍 우리를 점령하는 최면 시스템이 되어간다. 현실감 상실은 어디라 가릴 것 없이 우리 일상의 곳곳에서 진행형이다. 인간에게 ‘현실‘의 가장 중요한 보증은 아날로그의 상대방,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 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타인의 존재이다. 인간 사이의 대부분 만남을 중재해주고 통제하는 권력을 디지털 기업이 장악했다는 사실,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는 만남이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현격히 줄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현실감 상실이다.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 현실감 상실이다. 더는 몸을 쓰지 않고, 아바타로 자신을 대체하는 우리의 현주소, 초등학생이 몸을 다룰 줄 몰라 공중제비를 더는 넘지 못한다는 안타까운 사실, 이 모든 것이 현실감 상실이다. - P180

트랜스휴머니즘의 핵심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약점을 보는 깊은 혐오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약점을 트랜스휴머니즘은 주어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노골적인 반감부터 품는다. 인간은 컴퓨터처럼 빠르게 계산할 수 없다, 툭하면 병에 걸린다, 늙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하는 따위가 트랜스휴머니즘이 싫어하는 약점이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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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스템이 우리의 도구로 쓰여야지, 우리가 디지털 시스템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소비를 하는 최면 상태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도 아동과 청소년이 너무 일찍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제도를 정비하여 초등학교 5학년부터 체계적으로 디지털 기술의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 디지털 기술에 끌려다니며 내가 ‘현실감 상실‘이라 부른 고통을 당하지 않고 아이들과 우리가 인생의 주인으로 주권을 회복해 스스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를 차지하는 시스템 배후에는 이 시스템을 차지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숨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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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아는 돌에 새겨진 게 아니라, 생애 초기에 형성된 자아 씨앗을 평생에 걸쳐 키워야 하는 것이다. 자아를 정보 저장고에 빗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아는 일종의 사회적 장기이며, 기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엇이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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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빼고 오버하지 않는 게 왜 이토록 어려운지 오래 생각했다. 내가 찾은 답은 ‘내가 나를 믿지 못해서‘였다. 확실히 했다는 믿음, 틀리지 않고 제대로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 자꾸 ‘조금 더‘를 생각했다. 그건 베이킹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일을 할 때도 대체로 그랬다. 나를 믿지 못했다. - P88

‘지난번에 이렇게 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때처럼 하면 돼‘라는 경험에서 나오는 믿음도 필요했다. 과거의 성공이 늘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믿음은 가지고 가야 한다. 선생님이 "힘을 빼는 게 어렵죠? 시간이 필요해요"라고 말한 건 나를 믿고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다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의미였을지 모른다. 멈춰야 할 때를 아는 좋은 베이커가 되기 위해, 성공의 경험을 위해, 나를 좀 더 믿어주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 P89

누구에게나 공기가 필요하고, 나도 누군가에게 공기를 넣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되면 예쁘게 부풀어 폭신하고 부드러운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기 같은 한마디.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당시엔 알 수 없다. 오븐에 들어가봐야 그 말이 공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언제 누군가의 공기가 될 지 모를 말들을 아낌없이 해주려고 노력 중이다. 좋은 건 충분히 좋다고 알려주고 잘한 건 충분히 잘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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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취향과 욕망을 갖고, 주체적으로 즐기고, 소비하고, 섹스하는 여성은 공포의 대상이다. 가부장제적인 권력 자체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음에도, 여전히 그런 관계 안에서만 여자와 남자 간의 관계를생각할 수 있는 남성들은 자신에게 주도권은커녕 관심조차 없는 여성과의 관계에서 박탈감과 분노(나를 무시했다!)를 느낀다. 그러나 무엇이 이들로부터 박탈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이들의 부모 세대도 가부장/남성으로서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박탈은 상상적 박탈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가짜 기원으로 삼으면서 동시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을 가장 쉽게, 그러나 부적절하고 정의롭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다. 그러나 이 향수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을 향하고 있으며, 당연하게도 해결책으로서도, 참조할 만한 것으로서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무책임한 반동일 뿐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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