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쟁은 사회 제도나 조직의 목적, 그것이 나누어 주는 재화, 그리고 영광과 포상을 안겨주는 미덕에 관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을 만들 때 이런 문제에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지만, 좋은 삶의 본질을 논하지 않고는 공정성을 말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8강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 아리스토텔레스 - P289
우리는 누구나 특정한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으로서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해한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거나 딸, 또는 사촌이거나 삼촌이다. 나는 이 도시나 저 도시의 시민이며, 이 조합 아니면 저 조합의 회원이다. 나는 이 친족, 저 부족, 이 나라에 속한다. 따라서 내게 이로운 것은 그러한 역할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이처럼 나는 내 가족, 내 도시, 내 부족, 내 나라의 과거에서 다양한 빚,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 이는 내 삶에서 기정사실이며 도덕의 출발점이다. 또한 내 삶에 도덕적 특수성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하다.(매킨타이어)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11
자아를 서사적으로 보는 관점과 명확히 대조되는 입장이다. 내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공동체의 이야기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를 안고 태어나는데, 개인주의자처럼 나를 과거와 분리하려는 시도는 내가 맺은 현재의 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다.(매킨타이어)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12
자연적 의무와 달리 연대 의무는 보편적이지 않고 특수하다. 그 의무에는 우리가 떠안아야 할 도덕적 책임이있다. 이 책임은 상대를 이성적 존재가 아닌, 역사를 공유하는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나 자발적 의무와 달리, 합의에 좌우되지는 않는다. 이 책임에 담긴 도덕의 무게는 소속된 자아라는 도덕적 고민에서, 그리고 내 삶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포함된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14
어떤 나라든 인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으며, 그러려면 기근·박해•강제 이주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때 능력껏 이들을 도와야 한다. 이는 같은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의무를 느껴야 한다는 칸트식 논리에 따른 보편적 의무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18
애국심이 도덕에 기초를 두었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우리에게는 동료 시민의 행복을 추구할 특별한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면, 의무의 세 번째 범주인, 합의가 필요 없는 연대 의무나 소속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25
연대와 소속 의무는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로도 향한다. 내가 사는 특정 공동체에서 나오는 특별한 의무 가운데 일부는 같은 공동체 사람에 대한 의무다. 그러나 나머지는 내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다. 이를테면 독일인이 유대인과의 관계에서, 미국 백인이 미국 흑인과의 관계에서 부담해야 하는 책임이다. 역사적 부당 행위에 대한 집단적 사죄와 보상은 연대 의식이 내 공동체가 아닌 다른 공동체에도 도덕적 책임을 지게 하는 좋은 예다. 내 나라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보상하는 일은 내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한 방법이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26
자부심과 수치심은 정체성을 공유한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도덕 감정이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27
소속감에는 책임감도 따라온다. 내 나라의 과거를 현재로 끄집어내 도덕적 부채를 해결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 나라와 역사에 진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28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더 큰 삶의 일부로 이해하고 감당하는 기질이다. 그것은 시대의 요구다. 나를 특별한 삶으로 끌어들이면서 그 특별함을 인식하게 하고, 다른 여러 요구와 더 넓은 지평에도 눈을 뜨라는 요구다. 인격을 갖춘다는 것은 (때로는 서로 상충하는) 여러 부담을 인식하며 산다는 뜻이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30
선을 고민할 때 우리 정체성의 근거지인 공동체의 선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면, 중립을 갈망하는 태도는 잘못되었을 수 있다. 좋은 삶을 생각해보지 않고 정의를 고민하기란 불가능하거나 어쩌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36
가능하지도 않은 중립을 가장한 채 중요한 공적 문제를 결정하는 행위는 반발과 분노를 일으키는 지름길이다. 중요한 도덕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정치는 시민의 삶을 메마르게 한다. 그런 정치는 편협하고 배타적인 도덕주의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건드리기 두려워하는 곳에는 근본주의자들이 몰려든다.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 충직 딜레마 - P337
결혼의 본질은 출산이 아니라 이성이든 동성이든 두 사람 사이의 독점적인 사랑의 약속이다.
10강 정의와 공동선 - P358
마셜은 이 문제에서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면서 동성애는 이성애와 마찬가지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혼인을 이성애에 한정한다면 "동성애는 이성애에 비해 천성적으로 불안정하고 열등한 관계이며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는 유해한 고정관념을 공식 승인해주는" 꼴이다.
10강 정의와 공동선 - P360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좋은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하고, 으레 생기게 마련인 이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10강 정의와 공동선 - P361
정의는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하다.
10강 정의와 공동선 - P362
도덕적 이견에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상호 존중의 토대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동료 시민이 공적 삶에서 드러내는 도덕적·종교적 신념을 피하기보다는 때로는 그것에 도전하고 경쟁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경청하고 학습하면서,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어려운 도덕 질문을 공개적으로 고민한다고 해서 어느 상황에서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거나, 심지어 타인의 도덕적·종교적 견해를 평가할 수 있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도덕적, 종교적 교리를 더 많이 알수록 그것이 더 싫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해보기 전까지는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10강 정의와 공동선 - P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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