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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 포토넷 / 2010년 1월
평점 :
한때 카메라에 미쳤던 적이 있었다. 동시에 길에 미쳐있었다.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젊음의 상태에 취해있었고, 그렇게 방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내 비극적 운명인양 단정했었다. 그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었고, 우린 서로를 자신의 카메라에 담는 방식으로 깊어졌다. 그렇게 서로의 사진 속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표정과 모습으로 남았다. 뜨거웠던 20대가 지나자 모두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실망한 탓일까. 연락도 끊어지고, 1년에 1번 만나기도 힘든 사이가 돼버렸다. 이제는 가끔 컴퓨터 하드에 담아둔 사진을 꺼내보며 추억할 뿐이다.
<윤미네 집>의 작가 전몽각 선생의 전시회를 먼저 다녀왔다. 집이 있는 파주에서 한미미술관이 있는 올림픽공원 쪽까지는 사실 어마어마한 거리였다.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있었고, 쌀쌀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던 날. 나는 폐점시간에 가까스로 세이프한 사람의 심정으로 한미미술관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관람동선을 고민하며 한 점 한 점 사진에 시선을 주었다. 갈수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 이런 사진이라니. 이렇게 사랑했던 증거로서의 사진이라니.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찍히고 싶다거나 나도 누군가를 이렇게 오래오래 찍어주고 싶다는 마음은, 사랑받고 싶다는 사랑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다행히 전시회장에 사람이 나 혼자 뿐이라, 촉촉해져오는 눈가를 부끄럽지 않게 닦아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첫째딸. 개구쟁이 아이에서 새초롬한 소녀로, 그리고 여인내 나는 처녀로 변화하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신기하고 뭉클하다.
가장 마음이 찌릿했던 사진은, 딸 윤미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남자친구와 데이트하는 장면이었다. 나무 옆에 앉아 무릎베개를 해주는 딸과 그 연인의 모습을 몰래 숨어서 찍었을 아버지의 심정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딸이 이제 자신의 품을 떠나게 되리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모습은 사진 속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표지에 쓰인 저 사진 이후로) 마지막 부분에서 윤미의 결혼식 장면에서 등장하는데, 이럴 수가. 윤미가 자라는 동안 아빠는 청년에서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백발이 성성하게 왠지 몸도 구부정해진 전몽각 선생이 윤미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사진이다. 사진이 흔해진 세상이지만, 사진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오래 기다리고, 먼저 와서 준비하고, 연출하지 않고,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사진가가 되어야 하고 되고 싶다. 나도 오래오래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찍어주고 싶다. 사진은 기록하는 방식이자 사랑하는 방식이다.
이 책은 언제라도 꺼내보고픈 그런 책이다. 오래오래 책장에 두고 빨간 책등을 가끔 쳐다보다 마음이 울컥할 때에야 꺼내보는 그런 책이 될 것이다. 자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애상은 가끔이면 족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