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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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김민섭 작가는 『대리사회』를 통해 사회를 ˝타인의 운전석˝에 비유하며 천박한 욕망을 강요하는 세태를 비판했다. 그를 무척 흥미롭게 읽은데다 내가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의 추천사가 있어서 기대감에 도취되어 『훈의 시대』를 읽었지만,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의 반복적 서술에 지나지 않아 아쉬웠다.

작가는 학교, 회사, 개인의 사유와 행동을 규정짓는 ‘훈‘이 어떤 방식으로 얼만큼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근대 이후 도태되거나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개인은 적극적으로 시대의 변화와 욕망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액체화된 몸˝이 되었다. 당위성을 가진 ‘훈‘은 세뇌와 강요로 개인의 생활, 사고, 신념을 잠식시키고 나아가 사회와 시대를 다스린다. 작가는 자신의 전작 『대리사회』를 언급하면서 자신 또한 흐물흐물한 ˝액체화된 몸˝이었음을 고백하며, 독자에게 ˝액체화된 몸으로 타인을 좀비로 전염시키고 자신의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내는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주체성을 지켜나가기를 독려한다.

˝선언만 반복하는 개인은 그 어떠한 변화를 추동할 수 없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는 작가의 말이 크게 와 닿았다. 어떤 책을 읽거나 학습을 통해 ‘~한 삶을 살아야지‘라고 다짐해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다른 얼굴로 둔갑하는 모순들은 쉽게 발견된다. 신념과 실천의 완전한 일치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나 역시도 그렇다. 이와 같은 간극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마치 증인을 만들기라도 하려는 것처럼)독서모임에서나 지인들에게나 자꾸만 이런저런 내 생각을 말한다. 액체화된 몸의 좀비가 또 다른 좀비를 만드는 것처럼, 나는 단단한 몸으로 주변인들과 물음표와 느낌표를 주고받으며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사고의 주인이 나라는 확인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으로, 개인적 선언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 낼 힘이 따라오리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말의 힘은 굉장한 것이어서, 발화 권력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사용할 수만 있다면 변화의 주체는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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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예능 - 많이 웃었지만, 그만큼 울고 싶었다 아무튼 시리즈 23
복길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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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지 않은지 수 년째다. 특별히 보고싶은 프로그램이 없는데다가 TV가 가진 속성때문에 한 번 시작하면 계속 보게되니 그 시간들이 아깝다. 게다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이 TV를 대체하고 있어 그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TV 예능이 사회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지표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작가는 상당부분를 할애하여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김제동, 신동엽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인들에 대해 논한다. 내가 막연하게 생각을 가졌던 부분들, 그러니까 남성 중심의 한국 예능 프로와 예능인들을 작가 나름의 통찰력으로 깊이 있게 분석했다. 솔직히 좀 반했다.

여성들의 시청 권력 투쟁이 본격화되면서 남성 예능인들로만 구성된 예능 프로는 ˝알탕 예능˝으로 조롱받았다. 긴 세월동안 남성들로 이루어진 예능판은 여성 예능인이 설 자리를 밀어내며 자신들만의 연대를 공고히 했다. 간혹 출연하는 여성 연예인은 숭배와 찬양을 받거나 반대로 제대로 망가지는 이분화된 역할을 답습했다.

이영자와 박나래가 연예대상 시상자와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장면은 한국 예능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다. 내가 감동해 울컥했던 것 처럼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들이 대상을 받긴 했지만 그들 만큼이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 예능인이 많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송은이다. 송은이는 팟캐스트를 통해 직접 이슈를 만들고 이미지를 생성했다. 후배들과 함께 걸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고, 후배들의 부캐 활동을 지원했다. 후배 여성예능인들을 위한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따라올 수 있도록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말 그대로 증명해냈다.

이 밖에도 연예인 생활 밀착 예능이 유행함에 따라 고가의 PPL이나 연예인의 호화스러운 집과 생활을 모든 집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계속해서 부를 갈망하게 만들고, 빈곤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세상에서 탈락시키끔 만든다. 예능에서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송출하며 그런 아빠를 슈퍼맨이라고 칭송하지만, 매일 독박 육아를 하는 여성들의 삶은 예능 거리가 되지 못 한다.

‘TV 볼 때는 좀 편하게 보자!‘는 말이 빠지면 섭섭하다. 그래 좀 편하게 보자. 남연예인들만 독식하는 TV 프로 너무 식상하다. 심지어 재미도 없다. 여자, 성소수자, 장애인도 출연시키면 안되나?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성을 무시하고 비장애인 헤테로 남성이 디폴트인 한국 예능을 보는게 오히려 불편하다. 아, 내가 TV를 안보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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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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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까운 사람일 때
당혹감은 차치하더라도 상대가 무안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실수일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별 일 아닌 척 해야 했다.
2. 단체 내/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일 때
계속 마주해야하는 사람과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억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3. 잘 모르는 사람일 때
돌발행동을 할까봐 공포에 떨었다. 상황에서 벗어나기위해 최대한 비위를 맞춰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해야만 했다.

누구는 동지라는 이름을 앞세웠지만 정작 동지를 지워버렸고, 누구는 사람의 껍데기를 벗고 발정난 짐승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경험들은 나를 잡아먹지 않았지만, 결코 지워낼 수는 없었다. 살면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한 경험, 또는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은 여성이 얼마나 될까.

당숙에게 강간당한 제야는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물론 친인척조차 ‘피해자답지 않은‘ 제야를 의심하며 책임을 묻는다. 작가는 제야를 통해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특정할 수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는 점을 말한다. 성폭력은 나쁘거나 이상한 사람들에 의한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남성중심주의가 기본값인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상이라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성폭행의 원인을 제야에게 전가한다. 비상식의 일반화다.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 어떠했느냐˝는 성폭력사건에서 가해자를 보호할 가장 중요한 근거로 자리한다. 이는 곧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사건은 어떠한 추문으로 폄훼되고 소문으로 증발한다. 피해자가 일상의 단절을 경험할 때 가해자는 단단한 연대의 카르텔 안에서 지지와 응원을 받는다.

섣부른 위로보다 목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작가는 일기로 구성된 구조와 내용으로 제야의 목소리를 집중 조명한다. 가해자에게 일말의 서사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피해자 중심주의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주변인들에 대한 양가감정을 느끼며 자기혐오에 빠지는 제야. 인생이 망했다는, 끝났다는 제야를 둘러싼 어른들의 수근거림. 제야는 어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살아내기를 결심한다. 동시에 성폭행 피해 경험은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피해자에게 수치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입다물기를 강요하지 않도록, 더 이상 사라지는 피해자들이 없도록, 그렇게 세상에 변하도록.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이제야 쓰고 말하기를 시작한 소설 밖 제야들과 나란히 서는 것이 그 시작이다.

p.116 저항하면 죽을 것 같았다고 제야는 소리 질렀다. 강간이 잘못이지 반항하지 않은 게 어떻게 잘못이냐고 발을 구르며 소리 질렀다. 경찰이 제야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학생 말하고 행동하는 거 보면 전혀 피해자 같지 않아. 
피해자가 뭔데.
p.133 어째서 내가 의심받는가. 어째서 내가 증거를 대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설명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사라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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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교양 (반양장) - 지금, 여기, 보통 사람들을 위한 현실 인문학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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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라는 큰 꼭지들을 중심으로 그와 얽혀있는 이해관계들을 소개하고 설명한다. 원론적으로 접근한다는 느낌이었지만 읽다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빈민을 양산하는 교육제도와 국가 그리고 정치적 무관심을 초래하는 저임금 등은 악순환하며 반복된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작가가 인용한 ˝가난한 이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지식인의 말을 뒷받침한다.

작가는 세상의 구조에 대해 이해하는 능력을 ˝교양˝이라고 말하면서 ˝시민의 합리적인 선택을 위한 세상의 구조화˝가 이 책의 목적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나의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계급의 이익을 대변하고 사회의 이익을 고려할 책임˝을 시민에게 요구한다. 자본가는 언제나 똘똘 뭉쳐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치/사회/경제 활동을 한다. 그러나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은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비난한다. 자본가와 달리 노동자는 자신이 속한 계급을 모른다. 매 선거 때 투표 결과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모든 사회현상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냥 생겨나는 것은 없다. 양비론적 시각과 이분법적 사고는 오랜 시간 주입된 한국 교육의 병폐일 뿐 세상을 보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 책은 그야말로 ˝시민의 교양˝을 위한 책이다. 이를 통해 삶에 기본이 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시민이 갖춰 할 최소한의 교양을 겸비하자. 시민이라면, 앞서 언급한 지식인의 말에 갸우뚱하며 ˝그럼 내일을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되는 것 아닌가?˝하고 반문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사회의 내일을 선택하는 것은 시민이니까. 시민이 주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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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속으로 -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원도 지음 / 이후진프레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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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작가의 『아무튼 언니』를 만족스럽게 읽고 난 뒤 구입해 읽었다. 경찰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을 가진 나였기에 미심쩍은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매일 같이 발생하는 사건 속에서 인격적 모욕과 직업인으로서의 모멸감을 동시에 받는 일화들은 나로 하여금 혀를 차게 만들었다. 경찰로서 경험한 비상식적이고 가슴아팠던 일들을 읽으니, 나도 계속해서 경찰과 관련한 경험들이 떠올랐다.

시설보호요청이 들어오면 병력이 투입된다는 것은 알지만, 마치 자본가의 사설 용역과 같은 모습으로 전면에 나서 노동조합과 대치하고 있는 경찰의 모습을 숱하게 봐온 나로서는 경찰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다. 그래도 늘 경찰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곱씹으며, 문제를 개인화시키지 않아야한다고 스스로 믿어왔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참석했을 때, 사람을 향해 물대포가 무자비하게 난사됐다. 이미 쓰러져 움직임 없는 사람에게 경찰은 계속해서 물대포를 쏴댔고, 그 사람을 병원으로 이송하려하는 앰뷸런스 차량과 의료진에게도 물대포를 쐈다. 그 사람은 故백남기 농민이었다. 나는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했다. 최루액이 섞인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았을 때의 그 고통보다 공권력의 남용과 폭력적인 진압으로 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울 수 밖에 없었다.

내 기억 속 경찰은 일관되지만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기억한다.

체불임금을 받기위해 사장 집에 찾아갔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을 향해 테이저건을 쏜 뒤 뒷수갑까지 채우는 과잉진압을 한 경찰을 기억한다.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소성리 할머니들을 밀치고 표적연행을 한 경찰을 기억한다.
집회 참여와 관련해서 경찰조사를 받았을 때 사건과 관련없는 질문에 항의하는 내게 묻는 말에나 답하라며 윽박을 질러대던 경찰을 기억한다.

순경에게 처한 곤란한 상황에 순식간에 1억이 넘는 돈을 모아 준 일화에서는 약간의 절망과 희망이 교차됐다. 이 사람들 정의가 뭔지 아는구나!

작가가 말한 경찰의 비겁함. 그 비겁함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영화 명량, 이순신 대사 변형- 얼마나 좋을까? 거대한 경찰조직의 한 사람으로 무언가를 바꿔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편하고 쉽기때문에 폭력은 언제나 약자에게 향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겁함을 용기로 바꿀 불씨가 되지 않을까. 그래 그들은 경찰이기 전에 사람이니까.

나는 기대한다. 간절히 소망한다. 권력의 허수아비가 되지 않는 경찰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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