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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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까운 사람일 때
당혹감은 차치하더라도 상대가 무안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실수일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별 일 아닌 척 해야 했다.
2. 단체 내/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일 때
계속 마주해야하는 사람과 불편해지는 것이 싫어서/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억지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3. 잘 모르는 사람일 때
돌발행동을 할까봐 공포에 떨었다. 상황에서 벗어나기위해 최대한 비위를 맞춰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해야만 했다.

누구는 동지라는 이름을 앞세웠지만 정작 동지를 지워버렸고, 누구는 사람의 껍데기를 벗고 발정난 짐승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 경험들은 나를 잡아먹지 않았지만, 결코 지워낼 수는 없었다. 살면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당한 경험, 또는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하지 않은 여성이 얼마나 될까.

당숙에게 강간당한 제야는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물론 친인척조차 ‘피해자답지 않은‘ 제야를 의심하며 책임을 묻는다. 작가는 제야를 통해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특정할 수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는 점을 말한다. 성폭력은 나쁘거나 이상한 사람들에 의한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 남성중심주의가 기본값인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상이라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신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성폭행의 원인을 제야에게 전가한다. 비상식의 일반화다.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 어떠했느냐˝는 성폭력사건에서 가해자를 보호할 가장 중요한 근거로 자리한다. 이는 곧 많은 사람들이 사건을 이해하는데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결과 사건은 어떠한 추문으로 폄훼되고 소문으로 증발한다. 피해자가 일상의 단절을 경험할 때 가해자는 단단한 연대의 카르텔 안에서 지지와 응원을 받는다.

섣부른 위로보다 목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작가는 일기로 구성된 구조와 내용으로 제야의 목소리를 집중 조명한다. 가해자에게 일말의 서사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피해자 중심주의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주변인들에 대한 양가감정을 느끼며 자기혐오에 빠지는 제야. 인생이 망했다는, 끝났다는 제야를 둘러싼 어른들의 수근거림. 제야는 어른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 살아내기를 결심한다. 동시에 성폭행 피해 경험은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피해자에게 수치감과 부끄러움 그리고 입다물기를 강요하지 않도록, 더 이상 사라지는 피해자들이 없도록, 그렇게 세상에 변하도록.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이제야 쓰고 말하기를 시작한 소설 밖 제야들과 나란히 서는 것이 그 시작이다.

p.116 저항하면 죽을 것 같았다고 제야는 소리 질렀다. 강간이 잘못이지 반항하지 않은 게 어떻게 잘못이냐고 발을 구르며 소리 질렀다. 경찰이 제야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학생 말하고 행동하는 거 보면 전혀 피해자 같지 않아. 
피해자가 뭔데.
p.133 어째서 내가 의심받는가. 어째서 내가 증거를 대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설명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사라져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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